우리 엄마 시집가네.

by 이슬


어미 우렁이가 새끼들에게 제 살을 떼어 먹이고

빈 껍질이 되어 둥둥 떠내려가면 새끼 우렁이들이 "우리 엄마 시집가네!" 한다던

엄마 이야기가 가끔 생각난다.


엄마가 젖어오는 눈빛으로 들려주시던 그 이야기는

어미 된 자의 숙명을 이야기한 듯하다.


빈집 되어 물살에 휩쓸려가는 어미를 보고

철없는 자식들이 "우리 엄마 시집가네!" 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코끝이 아리다.

어느새 6월 초, 여름이다.

선홍빛 햇살이 창가에 서성이는 시간, 책을 읽다 설핏 잠이 들다 깨었다.

그럴 때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영혼 속으로

아릿한 슬픔이 밀려온다.

마치 청보리밭에 일렁이는 푸른 물결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고 또다시 밀려왔다 사라지곤 한다.


잠결에 카톡을 보니 남동생이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윤기 나는 백발의 엄마가 허름한 의자에 앉아

사진 찍는 아들을 놀란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장면이다.


깊이를 알 수 없이 말려 들어간 눈동자,

자글자글 주름진 피부, 살이란 살은 다 빠져서 거죽과 뼈만 남은 얼굴이

"누구세요?" 하며 묻고 있는 듯했다.


마치 길을 잃어버린 어린아이 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자 "흑"하고 울음이 터졌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엄마를 찾아 집을 나섰다.

길을 걷는 동안에도 전철에 올라서서도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20251213_160710[1].heic 루이즈 부르주아 (거미)

우리 엄마는 우렁이 엄마다.

남편 때문에 편한 밥 한번 먹지 못했고

오 남매를 키워내느라 잠 한번 제대로 자지 못했다.


엄마는 평산신 씨 종갓집 맏손녀로 태어나서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랐다.

외할머니께서 열셋을 낳으셨지만

겨우 셋을 건졌을 뿐이었는데,

첫 번째로 건진 맏딸이었으니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겠는가!

하지만 시대적 상황은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웠다.

일제 말부터 해방을 거쳐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엄마가 성장하자 할아버지는 땅굴을 파고

그 속에 엄마를 은신시켜 가며 지켜내셨다.

열아홉 되던 해 이웃 마을에 양반 자손 하나 있다는 말을 듣고

달랑 보따리를 안고 밤 중에 류 씨 집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참 알 수 없는 것 같다.

금쪽같은 섬김을 받으며 살던 이 처자는

시집이라는 것을 오자마자 전쟁터로 떠난,

아직 얼굴도 낯선, 신랑마저 없는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20251213_161236[1].heic 루이즈 브르주아 (붉은 방)

6년 만인가 돌아온 신랑과 부모님 모시고 살다

시골살이를 청산하고 서울로 상경하였다.

상경 후 엄마는 이른 새벽 일어나

연탄불에 밥을 지어 자식들 먹여 학교 보내고

시장으로 달려가 장사를 했다.


어디서 그런 힘과 용기가 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가 삶의 의욕을 잃고 몸져눕자,

엄마는 세상 무서운 것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병든 남편, 눈망울 초롱초롱한 오 남매를 생각하면

엄마는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맨몸으로 세상과 맞서 남편을 지키고 자식을 키워낸 엄마는

살을 떼어 먹이는 우렁이처럼 살았다.


아버지의 유공훈장을 찾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으련만 안타까웠다.

아버지가 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을 때

엄마 나이 마흔일곱이었다.

엄마가 마주한 세상이 얼마나 혹독하였을까?


어린 시절 하얀 옷을 입고 초파일이면

섬진강 변에서 진도 아리랑을 목청껏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젊고 어여뻤던 엄마의 모습이 눈에 어린다.


그 시간은 엄마가 자신의 한을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엄마의 진도 아리랑을 들으면 절로 눈물이 났다.

구성진 목소리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엄마는 여장부였다.

장사도 잘하였고, 부동산으로 큰 수익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딸들 가슴에 멍이 들었다.

고루 손이 갈 수 없는 상황을 견디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들과 딸을 편애하는 엄마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금쪽같은 오빠 그늘에 살던 내 마음에는

오빠에 대한 질투와 시기, 엄마의 편애에 대한 반감이 쌓였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엄마가 필요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림의 떡이었다.

거리상으로도 멀었고 오빠의 애들을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51213_160637[1].heic 루이즈 브루즈아 (거미)


그래서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면서도

맘속으로 엄마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엄마,

그런 엄마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척 괜찮은 척하며 살았다.


그렇게 살았다.

오빠를 잃고 혼절한 엄마를 보며 조금 고소해하기도 했던 나,

그런 내 맘 때문에 괴로웠다.

난, 마치 카인의 후예처럼 겉돌았다.



동생 집에 도착해서 엄마를 보자마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엄마는 “누구여~어? 나는 생각이 안 나 야” 한다.

윤기 나는 백발로 쪼그라져서 한 줌밖에 안 되는 몸으로

이제는 혼이 나가버린 허깨비 같은 엄마 모습이

속 빈 우렁이 어미처럼 어딘가로 떠나가는 듯 여겨졌다.


“엄~마, 어~엄~마~아~아”

어딘가로 떠나가는 엄마의 영혼을 불러내듯

아픈 손가락 같던 딸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그렇게 불렀다.


희미하게 남겨진 시간 속으로

꽃잎처럼 떠내려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우리 엄마 시집가네”라는

우렁이 새끼처럼 어리석고 무심했다는 자책으로 오열했다.


거친 삶의 언덕에서

자신도 모르게 상처 준 딸에게 엄마는 언젠가 미안하다고 했다.

너를 잘 챙기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그 말을 듣고도 풀리지 않았던

내 맘을 이제는 내려놓는다.


한참을 목청껏 엄마를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그 울음 속에 어쩌지 못했던,

어쩌지 못하는 모녀간의 아쉬웠던 순간들을 흘려보냈다.


딸로, 아내로, 어미로 산다는 것

그것이 여자의 일생이다.

엄마는 딸로서는 행복했고,

아내와 어미로서는 헌신했다.


여자의 일생 중 어미로 산다는 것은 숭고한 소명의 길이다.

태내에 새 생명을 품는 순간,

여자였던 것도,

딸이었던 것도,

아내였던 것도 잊고 살게 된다.


어미라는 이름보다 더 숭고한 소명이 또 있을까.

나도 여자로 태어나 딸로, 아내로, 어미로 살았다.

제 살을 떼어 먹이듯 키워낸 자식에게 아픔을 주었다는 것도 잊고,

살아온 세월도 비워내며, 무(無)로 돌아가는 엄마

모습에서 다가온 나의 내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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