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설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까치설 날 동요다.
130여 년 전부터 국제사회와 발맞춤을 하기 위해 태양력을 사용했지만,
대한민국의 시계는 여전히 생활력(태음력)으로 회귀한다.
겉으로는 태양력, 속은 태음력, 이중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설날은 농경사회의 유물이다.
수백 년 절기를 따라 생활했던 DNA가 음력 설날이 지나야
비로소 새해로 인식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2026년 1월 1일이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새해는 시작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설날이 있다.
설날은 설렘과 기다림으로부터 온다.
설날이 가까워질수록 엄마의 손길은 바빠진다.
명절날 쓰는 모든 음식은 물론 가족들 설빔준비, 침구 세탁 등등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어른들의 낮은 이야기소리를 듣고
설날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
설날 당일보다 오기 전 일주일이 더 좋았다.
꽃향기로 화들짝 놀란 봄 들판의 나비처럼 마음이 들뜨고
뭔지 모를 신남이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낡고 해진 옷 속으로 파고드는 찬 바람마저도 정겨웠다.
흥겨운 목소리는 발걸음보다 한 뼘 먼저 나갔다.
처마 밑 양지에서 매일 하던 구슬치기도,
고무줄놀이도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즐거웠다.
나뿐만 아니라 술렁거리는 마을 전체가 마치 새색시를 맞이하는 듯 달큰했다.
명절이면 엄마는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중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유과 만들기다.
유과는 찹쌀을 발효하고 쪄서 말린 바탕을 기름에
튀겨내 조청을 묻히고 그 위에 겉옷을 입혀서 완성시키는 전통 과자다.
유과 만들기의 가장 극적인 과정은 바탕을 튀기는 장면이다.
일반적으로 기름을 쓰지만 엄마는 깨끗한 자갈을 번철 위에 놓고 벌겋게 달군다.
뜨거운 자갈을 퍼서 바탕 위에 올리면,
그것들은 깜짝 놀라 몸을 뒤틀며
이팝나무꽃처럼 하얗게 톡톡 비명을 지르며 소담하게 피어올랐다.
그 모습이 신기한 바라보다 어지러워 쓰러지고 말았다.
"아니, 얘야!"
다급한 엄마가 허둥거리며 나를 안고 서늘한 문간방으로 달려가셨다.
동치미 국물을 떠다 입에 흘려 넣고 자꾸만 내 이름을 부르면서 흔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나를 근심스럽게 지켜보던 엄마의 눈과 마주쳤다.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품에 꼭 안았다.
섣달그믐날은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어른들이 일러주셨다.
수세라고 하는 이 의식은 맑은 정신으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이다.
온 집안에 불을 환히 밝히고 밤새워 윷놀이를 하며 잠을 쫓았다.
잠이 들다 깨다를 반복하다,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어른들 말씀이 떠오른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밀가루를 찾아들고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잠든 언니, 오빠, 동생에게 다가갔다.
눈썹에 밀가루를 묻히는데 잠결에 눈썹을 꿈틀거리기라도 하면
들킬까 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다음 날 아침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
" 어~ 형, 눈썹이 하얗게 됐어." "너도 그런데." 시치미를 뚝 떼고
"그러니까 섣달그믐날 누가 자래?"
능청스러운 내 말을 듣고 모두
"네가 그랬지.? 하며 폭소를 터뜨렸다.
그 철없던 장난이 설날 아침의 첫 웃음꽃이 되어 따뜻한 새해를 열었다.
설날 아침은 소담 바람이 옷섶으로 파고드는 듯한 떨림으로 온다.
참새처럼 콩콩콩 마루를 지나 세수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설빔을 입는다.
눈이라도 내린 날엔 미처 달아나지 못한 어둠을 쫓아내며
축복하듯 내려 쌓인 흰 눈을 밟고 큰 집으로 향한다.
그 이른 시간에 벌써 옷을 차려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큰 댁 어른들께 세배한다.
큰아버지는 “올해도 건강하고 복 많이 받아라.”는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신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은 동전 오 원 하나,
내게는 동전 일원 세 개를 주셨다.
누나인 나보다 동생에게
더 큰돈을 주신 것을 보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세배를 마치고 옆방에서 아침상을 기다리는 동안 남자 동생에게 말했다.
“○○야, 누나 돈 두 개랑 네 돈 한 개랑 바꿀래?"
어린 동생은 좋다고 하며 바꿔 줬다. 정말 신났다. 누나의 샘난 거짓말을 믿고 바꿔 준 동생을 만날 때마다 그 일을 말하면서 웃는다.
설날이 오기를 엿장수를 기다리듯 기다렸던 나,
해진 옷에 바람이 스미는 것도 정겨웠던 유년의 내가 내게로 달려와 안긴다.
이팝나무 꽃으로 피어나던 유과를 바라보다,
잠시 쓰러졌던 촌극이 못내 그립다.
섣달그믐날 잠든 가족들 눈썹을 하얗게 만들던 일은 하년의 팬터마임 같다.
설빔을 차려입고 세배드리러 가던 새벽길,
살을 파고들던 짓궂은 바람의 장난까지도,
기억을 텃밭에 소롯이 새순으로 돋아난다.
고향을 떠나기 전, 어느 해 설날은 온 가족이 만든 핑크빛 요람처럼 따뜻했다.
이렇게 정겨운 이야기들이 엮어져 오는 설날을
태양력의 1월 1일이 되기 어려운 까닭인 듯하다.
“까치 까치설 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세 돌맞이 손녀가 파랑새처럼 노래한다.
손녀는 나의 미래다.
그 해 설날 온 가족이 만든 한 편의 단막극처럼,
손녀가 맞이하는 설날도 희망과 기쁨으로 달뜨는
행복한 가족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파랑새가 되어 푸른 우주를 향해 날개 짓하는 어린 손녀가 훨훨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 위 사진 자료는 네이버에서 활용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