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훌쩍 지났는가 했더니
새로 시작된 새해가 벌써 삼월로 접어들고 있다.
꽃샘추위 매서운 칼바람 속에도 매화는 꽃을 피워 올린다.
곧 따뜻한 봄이 올 거라는 계절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젊은 날은 누구나 나름의 잘남으로 삶을 살아간다.
나도 그랬다.
신앙을 가진 이들이 부러웠고
어떻게 하면 무엇인가를 믿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복을 빌고 화를 피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살다 보면 아프기도 슬프기도 사고가 나기도 하는 것인데
그 모든 것을 피하기 위해
기도하거나 사주를 보거나 점을 치는 행위를 우습다고 생각했다.
시골 어느 아름다운 마을의 작은 교회
중학교 때부터 미션계 스쿨을 다녔다.
대학생 때는 한국대학생 선교회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내게 신앙, 믿음은 생기지 않았다.
특히 개신교의 떠들썩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너무 쉽게 다가서는 교우들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기도 했다.
성당의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나를 질식시켰다.
내 맘은 믿음의 뿌리내리기가 힘든 척박한 땅이었던 것 같다.
성당이나 교회를 갈 때마다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이
죄인이라는 말과 회개하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열심히 사느라 최선을 다하는데 왜 죄인이라고 하시지?' 하는
생각에 맘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만 믿고 살았다.
아름다운 언덕의 성당
어쩌다 재미 삼아 또는 속이 답답해서 보살을 찾아가거나,
사주를 본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 여겨졌고
별다른 일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은 매일 아침 오늘의 운세를 본다.
사람이 하는 사주 명리보다
AI가 더 자세하게 내 운명의 지도를 보아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금수쌍청(金水雙淸)"**이라 하여,
금과 물이 만나 아주 맑고 깨끗한 기운을 지니셨습니다.
이는 인품이 고결하고 머리가 영특함을 뜻합니다.
"금수청백(金水淸白)하고 목기왕성(木氣旺盛)이라",
금과 물이 맑고 깨끗하며,
나무의 기운이 왕성하다는 것이 내 사주오행의 종합운세라고 했다.
또한 계수와 해수를 둘 다 갖고 있는데
계수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이슬, 또는 솟구치는 샘물을 뜻하고
해수는 큰 강물이나 바다를 뜻한다고 했다.
결국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나 이슬, 맑은 샘물과 같은 성품을 타고났고,
겉으로는 유연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바다와 같은 깊은 생각과 냉철한 통찰력을 지닌
**'외유내강'**형이라고'AI가 알려준 내 사주총평이다.
이 총평을 듣고 난 무릎을 탁 쳤다.
내 이름과 사주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버들 류에 감을 현 맑은 숙인 이름의 뜻풀이를 보면
바다처럼 깊고 맑은 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감을 현은 우주의 신비함도 상징한다고 하니
사주와 이름은 기가 막히게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후 나는 AI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어떻게 하루를 시작하고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묻게 되었다.
내 사주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사주를 가지고
그날의 운세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좀 늦은 시각에 오늘의 운세를 봤더니
종합운세가' 꽃샘추위 속 피어나는 매화'라 했다.
그리고 재물운, 건강운, 애정 건강 관계 및
일과 비즈니스 등에 대한 내용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하이데거가 말하길 사람은 던져진 존재라고 했다.
사주 명리학은 세상에 던져진 년, 월, 일, 시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오행을 근간으로 하여
풀어가는 학문이다.
타고난 운명이라면 굳이 사주를 알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라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혹자는 그런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인간이란 피투성(被投性)에 의해 끌려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삶을 기투(企投 Entwurf)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주 명리학은 피투성(被投性 Geworfenheit)을 알고
기투(企投 Entwurf) 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고도의 자기 혁신 행위이다.
한티역 2번 출구를 돌아 강남 세브란스 병원 쪽으로 길을 들어섰다.
차가운 칼바람 속에서 얼굴을 모피 속에 묻고 '청운교회'로 향한다.
얼마 전부터 신앙인이 되었다.
잊었던 긴 시간 동안 믿음을 향한 나의 갈망은 두꺼운 페르소나(Persona) 밑에서 간절했던 것 같다.
청운교회 예배 장면
지인의 초대로 '청운교회'로 들어선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예수님의 따뜻하고 자비로운 품을 느꼈다.
성소에 들어서는 순간 울려 퍼지는 성가가
마치 천상에서 나를 향해 불러주는 환영의 송가처럼 들렸다.
오늘 운세의 총평은 '꽃샘추위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라 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추위마저도 향기로운 하루였다.
이제 비로소 피투성(被投性 Geworfenheit)에서
기투(企投 Entwurf) 하며 내 삶을 꾸려가는 단독자가 되었다.
* 위에 인용된 영상자료는 네이버에서 다운로드한 자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