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능에 직접적으로 어필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파시즘이다. 그렇기에 ‘좌익’파시즘이 이미 나치 독일에서부터 존재했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극과 극은 언제나 통하기 마련이다.
2025년, 대한민국 진보는 명백히 파시즘으로 전락했거나 본디 그러했다. 그들은 모든 진보적 의제를 선점하고 정치적 방향성이 다르면, 아니 자기를 지지하지 않으면 그 의제에 반대한다는 프레임을 씌운다. 그렇게 모든 협상의 다리를 불태우고 나서 약자의 대변인을 넘어 약자 그 자체가 된다. 그 과정에서 ‘진짜’ 약자들은 지하 벙커로 내몰려 투쟁을 강요당한다. 진짜 약자들에게는 그 가소로운 가스라이팅마저 치명적이다.
진보파시스트 다수가 대중예술을 평가하는 자리에 있다는 건 큰 비극이다. 그들은 선점한 의제를 성배로 여겨 모든 것에 그 잣대를 들이댄다. 그렇게 다른 평가 기준을 타자화, 악마화시켜 대중예술의 대변인을 넘어 대중예술 그 자체가 된다. 그 과정에서 진짜 ‘예술가’들은 마찬가지로 지하 벙커로 내몰린다.
진보파시스트가 이 일련의 행위로 금전적 이득을 취한다는 게 가장 큰 희극이다. 다시 한번 자본주의는 언제나 파시즘의 든든한 후원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