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성이 있다. 겨울에는 딸기, 여름 팥빙수처럼. 그 도시를 여행 가면 만두를 먹으려고 한다. 비 오는 날에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클래식 방송 신청곡 순위 안에 든다. 항상은 아니지만 모두에게 그런 느낌이 있다.
성가번호도 그렇다.
반주자 성가책은 크다. 노안 대비는 아니겠지만 음표가 크니 두껍게 보여 치기 편하다. 나중을 대비해 미리 사두었다.
크다 보니 왼쪽 오른쪽에 한 곡씩 들어가 있다. 1번은 왼쪽 2번은 오른쪽 이렇게 말이다. 긴 곡들도 있지만 자주 접하는 곡들은 대부분 이렇다.
몇 십 년을 치다 보니 연습 없이 갈 때가 가끔 있다. 99번과 100번을 펼쳐 놓고 기다린다.
중간에 짧은 강의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남을 돕다 되려 늦어버렸다는 이야기다. 다 아는 이야기다. 강의자는 이 말을 지킨 선배를 봤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그 선배가 멋져 보였단다. 그래서 선배와 같은 직업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작은 행동이 남의 인생을 바꿀만한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나도 그런 경우가 있는지 생각을 하며 악보를 봤다. 가사가 어울리는 100번을 치기 시작했다.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안 부른다.
그제야 노래하는 사람을 보니 눈이 동그랗다. 벽에 붙어 있는 번호판을 보려 몸을 앞으로 숙였다.
99번.
이번 노래는 99번이었다. 혼자 생각에 잠겨 100번을 냅다 쳤다니.
방금 99번이라고 들었었다.
남들이 다 99번이라고 해도 나의 마음은 이미 100번이라 우기고 친 거다.
이미 실수는 했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혀가 메롱하고 나온다. 이 또한 아니다.귀여움이란 있을 수 없다. 이제 실수해도 메롱 따위는 하지 않는다. 굳은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99번을 다시 치면 된다.
이미 시간은 지나고 있다. 그 순간으로 끝나는 음악이다. 주최자들에게 끝나고 사과를 한다. 정신없게 해서 물 흐르듯이 해야 할 반주자의 본분을 잊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