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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넴의 글 Oct 02. 2021

교육 불평등, 아이들에게 '썩은 동아줄'을 내어주다

[칼럼] 할말,잇슈(issue)다! 두 번째 시간

*본 게시글의 원문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artinsight)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3002


 ‘불평등’. ‘불평등’이라는 단어만큼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있을까? 지역, 소득, 젠더, 의료, 정보, 교육 등 다양한 범주에 걸쳐 있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들은 마치 ‘고질병’처럼 쉽게 나아지지도 않을뿐더러 일상 속에서 우리를 매일 괴롭히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와의 불편한 ‘동거’가 길어지면서 사회 곳곳에선 각종 제약과 제한으로 굳게 닫혀버린 일상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와 함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교육 기회의 ‘공정성’과 교육 환경의 ‘공평성’, 교육 과정의 ‘투명성’ 등 교육 전반에 걸쳐 있는 ‘교육 불평등’의 문제 역시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다. 다양한 연구 자료와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교육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교육 불평등이 단순히 특정 교육 시스템의 균열이나 부재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랜 기간 이어져 오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은 소득 불평등과 연관된 ‘고질적’인 위험이라는 데에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전후(戰後) 격동기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우리 사회는 그동안 부(富)의 ‘절대적’ 축적에만 관심을 보였을 뿐, ‘상대적’으로 어떻게 나누어지며 공정하고 투명하게 서로의 몫만큼 분배되는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결국,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가 더욱 가속화됨에 따라 극단적 형태의 사회 구조, 일명 'K자형 사회' 모델의 모습을 띠게 된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 없이 ‘불균형적’이고 ‘불평등한’ 누군가의 삶들이 처한 현실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사태 이후 학교 시설 폐쇄 및 장기화 그리고 온라인 비대면 수업으로의 전면적인 전환이 이뤄지면서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그리고 교육 시스템 기반에 이르기까지 교육 시스템을 구성하는 교육 주체들의 혼란이 야기되었다. 전인교육과 돌봄 교육의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던 학교라는 교육적 장(場)은 굳게 닫혀버렸고 갑작스럽게 생겨버린 공백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또 다른 교육적 장(場)인 가정에서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가정 내 부주의로 인한 사고 등 각종 안전 문제들이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 시설 간 정보 인프라의 차이, 교사의 온라인 수업 활용 역량 혹은 자세의 차이, 학습자의 기자재 부족 등 예상하지 못했던 ‘디지털 격차’까지 더해지면서 교육 불평등의 양상은 이전보다 심각해졌다.  


(출처 : JTBC Insight)

                                                            

 실제로, 올해 2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초중고 학생을 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생각함' 설문조사에서는 코로나 사태 이후 교육 격차가 심해졌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의 80%를 차지했으며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사교육비 지출이 더 심해졌다고 응답한 비율도 과반을 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지난 9월 학술교육학술정보원이 전국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COVID-19에 따른 초·중등학교 원격교육 경험 및 인식 분석’ 조사에서도 역시 앞서 언급했던 조사 결과와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는 곧 교육 시스템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교육의 장(場)인 ‘가정’과 ‘학교’의 동시적 ‘붕괴’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 사태가 개선되지 않는 한 교육 불평등의 문제가 계속될 수도 있다는 ‘사회적 공포심’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사실 교육 불평등 문제는 지난 2006년 당시 참여 정부가 대대적으로 교육 격차 해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을 수립해나갈 것임을 공식화한 이후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서 본격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출범했던 정부에서도 교육 정책의 주요 목표이자 하나의 방향성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또한, 코로나 사태 해결과 일상으로의 회복이라는 임무를 안게 된 이번 정권에서는 방역 시스템 강화 및 정기 점검, 기간제 교원 충원, 환경 검체 검사 확대 등 학교 수업 정상화를 위한 방안들과 함께 맞벌이 부부들을 위한 긴급 돌봄 서비스와 같이 보육 기능을 지원하는 방안들을 계속해서 수립, 시행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교육 불평등 해결을 위해 수립되었던 정책들은 ‘역시나’ 매번 정치적 영역으로 편입되어 악용되었을 뿐 선거철마다, 집권 여당 혹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정책의 기조 탓에 되려 교육 불평등에 대한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사교육 열풍은 더욱 심해졌다. 또한,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응도 최선책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지만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가능성과 백신 접종의 안전성 논란 등 여전히 ‘불확실성’의 요소들이 남아있는 위기 상황이라는 점에서 당장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교육 불평등의 완화를 꿈꿀 수 있는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미래는 아직까지도 요원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출처 : 유튜브 채널 씨리얼)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 현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교육 불평등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있어 학교는 단순히 교과 과목을 배워 ‘학업적’ 능력을 기르는 곳이 아니라 또래 집단과 함께 ‘인격적’, ‘도덕적’ 소양을 기르는 곳이다. 다시 말해, 학교는 그들에게 있어 가족이 아닌 진정한 타인과의 만남 즉, 최초의 사회적 만남을 기반으로 하는 상호작용을 제공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꿈꿀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토양’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 불평등 현상은 아이들의 세계에 있어 성적에 이어 소득이라는 또 하나의 기준을 부여하고 이를 정당하고 자명하며 변하지 않는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결국,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서로에 대한 ‘필터링’의 사고 속에서 서로를 감시하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취약한 누군가를 무시하는 등 ‘분열’의 기제를 내면화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 불평등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우선, 교육 불평등 현상을 엄연히 하나의 ‘구조적’이고 ‘다층적’인 위기라고 인식하는 것과 함께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이 아닌 교육 과정의 ‘주체’로서 바라보려는 인식이 요구된다. 지난 2007년 미국의 ‘헤드 스타트’(Head Start)와 영국의 ‘슈어 스타트’(Sure Start) 사업 모델을 본떠 정부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한국형 빈곤 아동 지원 프로젝트 ‘드림스타트’ 사업의 경우 지역사회의 자원 연계를 통해 저소득층을 비롯한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통합적’이고 ‘예방적’ 차원에서의 지원을 제공하는 맞춤형 서비스라는 점에서 기존 저소득층 지원정책과 차별성을 보여주었다.



(출처 : 아동권리보장원)

                                                     

 물론, 시행 과정 중에 업무 지속성의 문제, 업무 지원 환경의 문제 등 미흡한 부분과 보완할 부분이 나타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 성과와 관련된 각종 보고서와 연구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교육자(전문가)-피교육자(아동) 간 정서적 유대감의 형성뿐만 아니라 아이들로 하여금 협력과 협동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의 구성 등 교육 불평등 해소에 있어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 산하 사업으로 정식 채택, 제도적으로도 무사히 정착하며 사회적 인정 또한 받고 있다. 특히, 함께 교육 과정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아이들의 ‘자유’와 ‘의지’를 존중하고 독려함으로써 불평등 극복에 대한 적극성과 도전 의식을 심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사회적 주체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선사해 왔다는 점에서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추구해야 할 교육의 기본 원리이자 미래 교육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성’과 ‘혁신성’을 기반으로 한 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지원 정책 역시 필요하다고 보인다. 일례로, 복지 선진국이자 교육 강국 핀란드에서는 ‘이노스쿨’(InnoSchool) 프로젝트를 비롯해 ‘미래학교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적 차원의 혁신 교육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추진되었던 ‘이노스쿨’ 프로젝트는 ‘학습 공간 구성’, ‘혁신적 교수 방법’, ‘놀이 중심의 학습 환경 구성’, ‘교육 서비스 혁신’ 이렇게 총 4개의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축을 구성해 운영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자국의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미래 세대의 교육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뤄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출처 : Andreas Meichsner / finland)

                                            

 나아가, 2015년 총선 이후 유하 시필라(Juha Sipila)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새 정부는 앞선 이노스쿨 프로젝트보다 더 혁신적이고 더 세분화된 장기 프로젝트 ‘Finland 2025’를 추진하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의 경우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를 비롯해 일반 사기업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교육개발업체 ‘Scool’을 중심으로 새로운 학습 환경과 디지털화 그리고 예술과 문화에 대한 강조라는 목표로 구상된 프로젝트이다. 다시 말해, 기존 정부가 갖고 있던 통제력과 영향력을 투명하게 유지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도와주되 단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기업 운영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획일적이고 정형화되어있는 기존의 학습 시스템이 아닌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미래학교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온 사회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마지막 부분에서 호랑이로부터 쫓기던 오누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굳센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 무사히 도망치게 된다. 반면, ‘썩은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려다가 떨어지고 만 호랑이는 아파하며 오누이를 잡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보이고 만다. 누군가에게 있어 이 이야기는 악(惡)으로 상징되는 호랑이가 ‘당연하게’ 벌을 받는 권선징악의 결말이 올바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만약, 호랑이 대신 오누이에게 ‘썩은 동아줄’이 주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 글을 통해 필자는 지금 현재 우리가 아이들에게 내어주고 있는 ‘동아줄’이 과연 교육 불평등이라는 위기 상황에 놓인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희망’과도 같은 ‘굳센 동아줄’이 맞을지, 아니면 그 상황 속에서 따라가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자책감’과도 같은 ‘썩은 동아줄’은 아닐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군가의 일부가 누군가의 전부를 결정하지 않도록, 그들의 오늘이 그들의 내일을 결정하게 하지 않도록 당신은 든든하고 질긴 동아줄이 내어줄 마음을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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