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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넴의 글 Oct 10. 2021

동물 윤리, '내일'이 아니라 '내 일'처럼 받아들여야

[칼럼] 할말,잇슈(issue)다! 여섯 번째 시간

*본 게시글의 원문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artinsight)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4154


 오늘날 우리는 반려동물을 가족이나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들 이른바 ‘펫펨족’(애완동물을 의미하는 ‘pet’과 가족을 의미하는 ‘family’의 합성어로 반려동물을 자신의 가족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1 한국 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국내 ‘반려 가구’와 ‘반려인’은 각각 전체 인구 중 약 30%에 해당하는 604만 가구와 전체 인구 4명 중 1명꼴인 약 1448만 명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곧 반려동물이 우리의 삶, 우리 사회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익숙한’ 존재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반려동물 관련 시장 및 산업을 일컫는 국내 ‘펫코노미’(Petconomy) 시장 역시 지난 2018년 이미 분유 시장 규모를 넘어선 데 이어 코로나19 장기화로 소비 심리가 위축된 지난해에도 약 3조 원에 달하는 규모를 기록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의 사료 및 간식이나 장난감에서부터 펫 유치원, 펫 호텔, 펫 테마파크, 펫 장례서비스 그리고 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한 ‘펫 테크’(Pet-Tech)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며 기업계는 물론, 정부 지자체의 관심 속에 대표적인 미래 유망 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출처 : 기획재정부)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서도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동물훈련사 강형욱 씨를 비롯한 여러 반려동물 전문가들이 출연해 반려동물 교육 방법을 가르쳐주고 교정해주는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대단하다. 프로그램 제목이기도 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EBS)나 ‘개는 훌륭하다’(KBS)를 모토로 삼으며 반려동물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전문가들의 모습은 반려인과 비(非)반려인 모두에게 인간과 반려동물 간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것은 물론, 반려동물 관련 직업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에서 반려동물을 비롯한 동물들이 여전히 ‘주변적’ 존재에 머무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길고양이 학대 논란과 반려동물 간식 테러에 대한 각종 언론 보도들, 해마다 증가세를 보여주며 최근 10년간 무려 1000% 이상 폭증한 ‘동물보호법’ 위반 사례들 그리고 지난해 기준 하루에 약 3명꼴로 발생하는 등 끊이지 않는 반려동물 관련 사건 사고 사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군다나, 코로나19 이후 반려동물 수요가 늘어난 틈을 타 살아있는 애완동물을 택배 상자에 담아 판매하거나(중국) 암시장을 통해 불법적으로 밀거래하는(독일) 등 동물 학대 사례들이 적발되고 있으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유기하려는(영국) 사례들도 반복되는 것이 우리 그리고 우리의 동물들이 처한 현실이다. 


(출처 : 아시아투데이)

 

 이에 동물권행동 카라(Korea Animal Rights Advocates, KARA)를 비롯한 국내 동물보호단체 측에서는 전문성과 체계성을 바탕으로 수사권을 발휘할 수 있는 동물 전담 경찰단을 꾸려 동물 학대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하는 한편 ‘동물보호법’ 관련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보다 세분화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를 제외한 다른 지자체에서는 아직까지 동물 전담 경찰관 제도 도입 계획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고 올해 초 농림축산식품부 주도로 개정된 ‘동물보호법’마저도 대부분의 처벌이 벌금형에 그치는 등 법 적용에 있어 낮은 실효성을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더 나은 동물 윤리를 갖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각고의 움직임들이 난항에 부딪히고 있다.


 사실 그동안 동물이라는 존재는 인류와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 인간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쓰일 수 있는 물건으로 여겨졌다. 이성에 근거한 ‘계층적’ 질서 그리고 유일한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 존재를 강조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각종 고대 법체계, 기독교 성서에 이르기까지 인간중심주의라는 강력한 사회 질서 아래 인간은 동물의 존재론적 지위를 무시했고 동물 학대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특히, 근대 사회에 들어서는 중세 이후로 더욱 강화된 기독교 질서와 함께 계몽주의의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인간과 동물 간 존재론적 차이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물론, 고대부터 내려온 상류층의 반려동물 문화가 이어지며 개와 고양이 등 일부 동물에 대한 개인적 관리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인간의 취미 활동 혹은 단순한 흥미를 위한 ‘도구’로서 이용될 뿐이었다. 오히려 동물들은 부족한 인력을 대신해 산업현장에 활용되거나 다시금 조명을 받게 된 해부학 분야에 활용되는 등 인간의 탐욕에 따라 좌지우지될 뿐이었다. 데카르트(Rene Decartes)는 동물이 신의 은총 아래 영혼을 부여받은 인간 존재와 다른 ‘기계적’ 존재라고 주장했으며 상대적으로 동물 그리고 동물 보호에 대한 관심을 보였던 칸트(Immanuel Kant)나 로크(John Locke),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인간의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인간을 위해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출처 : 녹색아카데미)

 

 그러나, 18세기 들어 과거 상류층에게만 허락되었던 애견문화가 중산 계층 이하에게도 확대됨에 따라 동물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1822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동물 학대 방지를 위한 법률인 ‘마틴 법’(Martin law)이 제정된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동물 보호를 위한 법이 제정되는 등 과거와 달리 ‘동물 보호’를 중심으로 한 동물 윤리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다. 다만, 여전히 동물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우월성을 기반으로 ‘시혜적’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결국 신경학과 같은 의학 분야 전문가들에 의해 동물들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20세기 중반에 다다라서야 일부 윤리학자들과 동물 연구가 집단을 중심으로 이전보다 적극적인 차원의 동물 윤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동물권 담론으로는 단연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Albert David Singer)가 1975년 <동물 해방>(원제 Animal Liberation)에서 보여준 ‘동물해방론’을 이야기할 수 있다. 쾌락(이익)의 ‘절대적 총량’에 주목하며 ‘소수 아닌 다수’의 이익을 강조했던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 영향을 받은 싱어는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즉, ‘쾌고감수능력’(limit of sentience)에 근거해 동물에 대한 실천윤리학적 입장을 주장했다.


 싱어에 따르면, 동물 역시 쾌고감수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지각적’ 존재라는 점에서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인간이든 동물이든 각자의 이익을 위배하는 고통은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 아래 위치한다. 이때, 그는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이 인간과 동물 간 ‘동등한’ 도덕적 지위 혹은 도덕적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싱어에게 있어 인간은 ‘양심’이나 고통에 대한 ‘예측’과 같이 쾌고 경험에 있어 ‘자의식’을 갖출 수 있는 존재인 반면 동물은 쾌고 경험에 있어 자신만의 ‘주관성’ 그리고 ‘연속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 두 존재는 결코 도덕적으로 평등한 관계에 놓일 수 없었다.

 

 싱어는 쾌락의 최대화와 고통의 최소화를 추구하는 입장 아래에서 ‘소수에게 피해가 가더라도 다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그리고 방법론적으로 ‘유일하고 불가피할 때’ 동물 활용이 제한적으로나마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단순히 개인적 기호를 해소하거나 경제적 욕구를 충족하는 행위와 같이 ‘개별적’(또는 부분적) 쾌락을 취하려는 경우와 달리 인류 전체의 생존이나 불치병 연구와 같이 ‘보편적’(또는 확장적) 쾌락을 취하려는 경우에는 동물 활용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이익에 대한 ‘평등한 고려’가 도덕적으로 ‘평등한 처우’로 직결되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오히려 인간과 동물 간 ‘이질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출처 : 좌측부터 Baku magazine, amazon)


 이는 곧 ‘종 차별주의’(Speciesism)에 대한 비판이라는 싱어의 핵심 주장으로 이어진다. 싱어에게 있어, 동물이 단지 ‘호모사피엔스’라는 인간의 종(species)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간의 지위만을 인정하려는 ‘우월성’의 논리와 함께 다른 종에 대한 ‘배타성’의 논리를 내세우는 ‘종 차별주의’는 동물의 가치를 ‘원천적으로’ 무시하고 일종의 수단이나 도구로서 ‘지배’하려는 힘을 의미했으며 결국 ‘인종차별주의’(Racism)이나 ‘성차별주의’(Sexism)와 함께 타파해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논의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의 가치를 동물의 그것보다 높게 평가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가치의 ‘절대성’을 전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무조건적으로’ 인간의 이익이 동물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과격한 인간중심주의’에 대응하는 현실적인 논의로써 동물 윤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한편,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철학자 톰 리건(Tom Regan)이 1983년 <동물권의 사례>(원제 The Case for Animal Rights)에서 보여준 ‘동물권리론’은 동물의 쾌고 감각 그 자체 혹은 쾌고 감각 총량과 같이 생명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후천적’ 성격의 평가 기준이 아니라 생명이 자체적으로 갖는 ‘본래적’ 가치 다시 말해, ‘생득적’ 성격의 ‘권리’(rights)에 주목한다. 리건에 따르면, 인간 그리고 동물과 같이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삶의 주체’(subject of a life)로서 생명권과 같은 기본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 포함될 뿐만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에서 ‘공통된’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리건에게 있어, 동물 학대 금지나 동물 보호 등의 동물 윤리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도덕성을 위해 실천하려는 ‘간접적’ 의무가 아니라 동물이 그 자체로 갖는 고유한 권리에 대해 인간이 존중하고 마땅히 따라야만 하는 ‘직접적’ 의무로서 다뤄져야 한다. 물론, 그의 논의는 동물의 범위를 1년 이상 된 포유동물로 제한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인간과 동물에 대한 도덕적 고려에 있어 어떠한 ‘특수성’이나 ‘우월성’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전의 논의들보다 한층 더 ‘급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출처 : 좌측부터 Rainer Ebert, amazon)


 결과적으로, 싱어와 리건의 논의는 동물 윤리 논의 전반에 있어 하나의 ‘트리거’(trigger)로서 작용했다. 실제로, 두 사람의 논의 이후 동물 착취와 같이 동물을 하나의 ‘재산’으로서 바라보려는 인식(혹은 그를 기반으로 하는 권리)을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동물 소유권 폐지론’이나 유인원 등 인간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갖는 존재에 대해 ‘범인격’ 형태의 자유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기본적 자유권론’과 같이 ‘수정 보완적’ 논의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시도는 동물 윤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계기이자 기존의 인간중심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대안적’ 차원의 동물 윤리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 대다수의 유럽 국가를 비롯해 EU 등의 초국가적 국제기구에서 보여주고 있는 ‘동물복지론’(Animal Welfare) 또한 쾌고감수능력 개념에 대해 고민했던 두 사람의 논의를 기반으로 형성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인간에 의한 동물의 수단적 활용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동물복지론’의 경우 끊이지 않는 동물의 ‘인격성’-‘물건성’ 논쟁 즉, 동물의 지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고 그들에게 어떠한 권리를 어떻게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하나의 ‘현실적’인 대응책으로서 인정을 받으며 일부 국가의 정책으로 채택되고 있다. 실제로, 196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농장 동물에 대한 동물복지 관련 정책은 유럽평의회 주요 협약으로 추진된 한편 2000년대 들어서는 EU 헌법 창설을 위한 조약에 포함되는 등 한 국가나 한 지역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The Daily Star)

 

 그렇다면, 앞으로의 동물 윤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첫 번째, 우리 삶 속에서 인간과 동물 간 깊고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는 ‘상관성’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 반려동물 관련 사건 사고와 같이 ‘동물 학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뿐만 아니라 의료나 식품 분야와 같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동물 활용’의 사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문화 산업’에서 이뤄지는 동물 활용 사례에 대해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우리의 일상생활과 ‘직접적’ 연관성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이룩한 문화 산업이야말로 ‘인간중심주의’가 가장 잘 스며들어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는 ‘동물 활용 축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난 2018년 생명다양성재단이 발표한 <국내 동물 이용 축제 현황 조사 연구> 및 문화체육관광부 연도별 지역축제 현황 자료에 따르면, 매년 전국에서 진행되는 축제 중 동물을 활용하는 축제는 해가 거듭될수록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그 비율은 전체의 약 10%에 달한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문화관광축제’로 지정된 몇몇 축제들의 경우에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속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출처 : 동물구조119)


 그러나, 동물보호단체 측에서는 동물 활용 축제가 동물의 생태 및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동물을 학대하고 학살하는 행위들로 점철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언론 보도 및 정부 지원을 통해 축제 자체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초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에도 종종 소개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화천 산천어축제’에 대해 ‘생명 경시’를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으며 진주 등 일부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문화로 시작해 오늘날 하나의 축제로서 자리 잡게 된 ‘청도 소싸움축제’에 대해서도 ‘사행성’과 ‘폭력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거듭해서 제기되어왔다.


 동물 활용 축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스페인을 비롯해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을 경험했던 일부 중남미 국가에서는 ‘투우’와 ‘투계’, ‘투견’ 등 도박성 경기에 동물을 이용하는 전통문화의 존폐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스페인 카탈루냐와 같이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문화 폐지를 주장하는 동물보호단체의 손을 들어주며 국가적 차원의 규제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그마저도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생존권 문제가 불거지자 불과 몇 년 만에 기존 판결을 번복하는 등 아쉬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동물 활용 축제뿐만 아니라 동물원과 수족관 그리고 최근에 등장한 야생동물 카페이나 실내 동물원과 같은 ‘동물 전시 공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멸종위기 동물 보전 및 교육적 가치 실현이라는 목적 아래 운영되어왔던 동물 전시 공간 역시 동물 활용 축제 못지않게 오랜 기간 존폐 논란을 겪어왔다. 다행히 과거에 비해 일반 대중에 이어 정치권에서도 동물 윤리에 대한 논의를 수용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말에는 동물원과 수족관을 현행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이에 대한 관리 가이드라인을 신설하는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발의되었다.


 그러나, 찬성 측에서는 이번 조치를 통해 동물 전시 공간 내 사육(및 야생) 동물의 서식환경과 일상 복지의 개선을 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 전시 공간을 생물 다양성 보전 및 연구 기관으로서 활용, 동물 윤리에 대한 기존 제도권의 수용력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입장을 밝힌 반면 일각에서는 갑작스러운 조치가 결국 야생동물들의 거취 및 불법 입양 문제를 낳는 것은 물론, 자영업자나 대기업에 경제적 타격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며 또 다른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이는 결국 동물 활용에 대한 정책적 논의에 있어서 여전히 인간의 삶이 우선시 되는 ‘현실주의적’ 사고에 대한 의견 수렴 및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나아가, 이는 동물 윤리 논의의 전 지구적 확장 및 보편화를 위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와 같은 ‘단편적’인 수준에서의 변화를 넘어서 거대하고 다양한 사회조직 및 체계와 같은 ‘복합적’인 수준에서의 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대상적’ 차원에 머물렀던 동물의 역할에 대한 재논의를 통해 동물 윤리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해보고 한편 인간 중심적 사고로부터 ‘점진적’으로 벗어나려는 실천적 노력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 예시로 ‘육식’(肉食) 문화는 물론,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인간 중심적 사고의 ‘전환’을 대표하는 ‘비거니즘’(Veganism) 운동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본래 ‘비건’(Vegan)은 협의적으로 육류나 생선, 낙농 제품 등 동물성 식품의 섭취를 피하는 채식주의를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간과 동물 간의 관계에 주목했던 싱어의 ‘종 차별주의 폐지’ 논의에서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 간의 상호작용에 주목하려는 ‘생태주의’(Ecologism)를 기반으로 공장식 축산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동물 학대 문제를 비롯해 기후 위기 및 환경오염 문제, 인수공통전염병 발생 문제, 식량 위기 문제 등 전 지구적 위기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지속 가능한 소비’(Sustainable Consumerism) 그리고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erism)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출처 : Pixabay)


 나아가, 육식에 대한 논의는 ‘심화된 종 차별주의’ 다시 말해, 동물 간에 따라 다른 수준, 다른 정도의 윤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닿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복합적인 시각이 요구된다. 최근 다시금 주목을 받기도 했던 개 식용 문화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자.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해당 논쟁은 기본적으로 개라는 동물이 갖는 법적 지위의 충돌(‘축산법’, ‘축산물 위생관리법’) 그리고 현행 ‘동물보호법’ 적용의 모호성에서 비롯, 동물보호단체와 자영업자 간의 극명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때, 우리는 ‘가축이기도 하지만 가축이 아니기도 한’ 개와 다른 가축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가족에 가까운’ 개와 다른 가축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들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물론, 개 식용 문화에 대한 찬반 의견 모두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 근거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통해 맞춰가려는 것이 공동의 목표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지점이야말로 우리가 ‘심화된 종 차별주의’의 시각에 잠식당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열린 마음으로 동물 윤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할랄(halal, 이슬람 율법에 따라 만든 음식으로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을 지칭)이나 코셔(kosher, 유대교 율법에 따라 만든 음식으로 엄격한 기준에 따라 구분된 일부 육류 및 어류를 지칭)와 같은 ‘종교적 도살’이나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이뤄지는 무차별적 ‘사냥’ 등과 같은 사례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 : BBC News 코리아)

 

 세 번째, 동물 윤리의 ‘담론화’ 과정에서 새롭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비거니즘’의 경우 비단 ‘탈육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화석연료 체계에 기초한 개발 중심 성장제일주의로부터 발생한 ‘생태 위기’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패션 산업은 ‘원료’의 문제(플라스틱 재활용), ‘과정’의 문제(동물 학대 금지), 그리고 ‘유통’의 문제(공정 무역 거래)에 이르기까지 전 범위에서 동물 윤리를 비롯한 녹색 담론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는 노력들을 이어나가며 이른바 ‘입는 비거니즘’으로의 대대적인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 역시 거대 소비자본주의라는 체제 아래에서 이뤄지는 소비라는 점에서 언제든지 또 하나의 ‘상업주의’로 기울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스스로 인간 이외의 존재들을 ‘자원화’하고자 했던 기존의 인간중심주의라는 위험의 ‘재출현’에 대해 언제나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 동물 윤리와 관련된 사회적 운동 방식의 ‘적합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에 공포감을 심어주었던 ‘에코 테러리즘’(Eco-terrorism)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지구환경 파괴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단체들이 환경 보호라는 명목 아래 의해 자행하는 과격한 폭력 및 범죄를 이르는 ‘에코 테러리즘’은 사소한 차원의 반달리즘(vandalism, 예술 및 문화와 같이 공공 재산 혹은 사유 재산에 해당하는 자원들을 고의적으로 파괴하고 해를 끼치는 행위)에서부터 시설 폭파, 방화, 태업, 네트워크 해킹 등의 잔혹한 행위들을 통해 환경 파괴에 대한 ‘응징’을 주장했다.


 주요 단체 중 하나인 ‘동물해방전선’(ALF, Animal Liberation Front)은 앞서 언급했던 피터 싱어와 톰 레이건의 환경 철학을 기반으로 한 급진적 동물복지 운동으로 유명 대학 내 실험시설, 공장식 농장, 거대 다국적 기업 등 환경 파괴와 동물 학대를 일삼는 집단 시설에 과감한 공격을 펼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들은 1998년 영국 뉴 포레스트 지역 농장에 불법 잠입, 약 6000여 마리의 밍크를 풀어주는 이른바 ‘뉴 포레스트 밍크 해방 작전’을 시도했는데 이를 계기로 영국과 미국의 모피산업이 크게 위축되었다는 평가가 있을 만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출처 : 수유너머104)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행동이 과연 누구를 위한 ‘과업’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과오’에 불과했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다. 단지 동물을 위한다는 이유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들의 행동이 동물이라는 ‘먼 타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를지언정 그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이라는 ‘가까운 타자’를 외면해버렸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행동이 각각의 동물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가는 생태계에 대한 충분한 고려 또한 거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동물들을 ‘구원’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주장했던 진정한 의미의 동물해방 역시 달성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어쩌면 ALF를 비롯한 에코 테러리즘 조직들이 보여준 모습은 우리가 과거 동물 윤리 논의에서 미흡했던 부분들에 대해 반성하고 오늘날의 동물 윤리에 대한 고민을 끝없이 이어나가야 함을 경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와 더불어, ‘동물권’ 담론을 중심으로 하는 동물 윤리의 ‘법제화’에 대한 문제도 남아있다. 올 3월, 정부가 현행 민법상 ‘물건’에 해당하는 반려동물의 지위를 ‘비물건’으로 분류, 법적으로 ‘재물’이 아니라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민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 그간 국내에서 ‘동물권’ 담론은 동물의 성질을 둘러싼 ‘물건성’-‘인격성’ 논쟁과 성질 간 ‘우선성’ 논쟁, 그리고 권리의 ‘파생성’ 논쟁 속에 여전히 법적, 제도적으로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철학적’ 의제에 불과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에야말로 ‘동물권’ 담론이 진전될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만약 예정대로 민법이 개정된다면 반려동물은 인간도, 물건도 아닌 제3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법 전문가들과 동물보호단체 측에서는 반려동물이 더 이상 법 해석에 있어 ‘물건’으로 분류되지 않게 됨에 따라 ‘당사자능력’(민사 혹은 형사 소송에서 당사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에 대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 학대 및 동물 간 물림 사고나 의료 사고에 있어서도 더욱 강화된 처벌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출처 : 스브스뉴스 SUBUSU NEWS)


 그러나, 이는 20세기 중반부터 동물의 지위를 물건성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존엄성을 국가 최고 법에 명시하는 한편 국가적 차원의 동물 보호를 법적으로 규정하고자 했던 전 세계적 흐름에 비해 어디까지나 뒤처진 시도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1988년 권리의 주체인 인간, 권리의 객체인 물건과 함께 동물의 지위를 동등한 관계 위에 올려놓은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1990년 민법 개정을 통해 동물을 물건과 인간의 ‘중간적’ 위치로 인정한 독일, 2015년 자국 동물보호법 아래 제한적으로 동물의 ‘감성’을 인정한 프랑스와 같이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물 윤리의 법제적 기반을 마련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번 조치를 통해 반려동물의 ‘당사자능력’이 인정되더라도 ‘권리능력’(권리의 주체로서 권리를 향유하고 의무를 부담할 수 있는 자격) 인정의 문제를 비롯해 반려동물의 권리를 인간의 그것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 단순히 인간의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와 같이 기존 법과의 ‘정합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과정이 남아있다. 나아가, 동물 윤리의 법제화 과정 중 혹은 법제화 이후 기존의 ‘사회적 약자’(라고 통용되는) 집단이나 계층에 대한 사회적 고려와의 병치 문제 역시 남아있다.


 결국, 동물 윤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협의가 결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농장 동물 복지 개선 및 실험동물 학대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영국,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 동물 학대 범죄 데이터를 관리하고 시민들을 중심으로 범죄자 신상공개 운동을 벌이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 가정동물·전시동물·실험동물에 이어 산업동물에 대한 사육 및 보관 기준을 규정하고 축종별 동물복지 관련 지침을 보급하고 있는 일본까지. 물론, 이와 같이 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동물 윤리 논의 역시 완전하지 않으며 완벽할 순 없다. 하지만, 동물 윤리와 관련해 의식적, 물질적 차원의 변화를 동시에 그리고 꾸준하게 이어나가고자 하는 ‘자발성’이 담긴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배워야만 할 것이다.  


(출처 : 영화 '옥자' 스틸컷)


 지난 2017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Okja, 2017)는 세간의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이미 <설국열차>(Snowpiercer, 2013)를 통해 ‘봉테일’이라는 그만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상황 속에서 극장가가 아닌 넷플릭스(Netflix)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선택했다는 점 역시 새로웠지만 동물 윤리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그리고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점은 더욱 새롭게 다가왔다. 육식과 채식, 자본주의와 반(反) 자본주의, 그리고 인간과 동물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했던 이야기는 어느 하나도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마음에 밀려 들어온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과 동물이 여전히 반대편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그런 ‘살아있는’ 현실로 돌아온 지금. 어쩌면 법과 도덕, ‘있는 법’과 ‘있어야 하는 법’ 사이에서 인간은 언제나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남아있다. 동물권을 비롯한 동물 윤리에 대한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불가피’하다는 말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이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살아가는’ 현실을 꿈꾸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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