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할말,잇슈(issue)다! 여덟 번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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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전 국민 투자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투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저금리 기조에 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의 변동성까지 더욱 커지면서 2030 젊은 세대들에서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거래가 활발해진 것이다. ‘주린이’라고 불리는 주식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나 서적들이 앞다퉈 나오기 시작했고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매도세로 인해 급락하는 주식시장에서도 적극적으로 매수세를 이어가며 맞서 싸우려는 투자자들의 모습은 ‘동학개미운동’이라고 불리며 해외 언론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주식시장이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의 안정을 되찾자 투자자들의 눈은 디지털 자산 시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고위험-고수익의 투자처로 여겨지는 시장으로의 ‘머니 무브’(money move)가 시작된 것이다. 금융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의 월별 가입자 수는 4개월 새 10배가 넘는 급증세를 보이며 국내 주식시장 규모를 뛰어넘는 거래 대금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총 누적 가입자 수는 무려 60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화폐 시세가 요동치기 시작한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5대 시중은행의 예·적금 해지 건수의 증감 추이가 가상화폐 시세의 변동성에 따라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최근 들어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변심’과 중국발 규제 강화 소식에 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부정적 평가까지 잇따른 악재에 이전보다 가상화폐의 오름세가 주춤해진 것은 사실이다. 한동안 고공행진을 이어갔던 주요 가상화폐들의 가격은 출렁였고 급기야 그간 가상화폐 시장에 몰렸던 유동 자금들은 다시 금이나 달러 등 안전자산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얼마 전에는 가상 자산 사업자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 개정안이 갑작스럽게 입법 예고되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블록체인 전문가들과 국내외 증권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단기적인 사태일 뿐이라며 결국 가상화폐가 더 높은 가격과 함께 다시 성장세를 보여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가상화폐 부상 이후 동산 자산에 이어 부동산 자산에 이르기까지 ‘자산의 디지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이미지, 음악, 텍스트, 비디오 등 어떤 형태의 자산이더라도 쉽고 빠르게 디지털화할 수 있는 NFT(Non-Fungible Tokem, 대체불가능토큰)이 주목을 받고 있다.
흔히 알려진 ‘비트코인’(Bitcoin)이나 ‘이더리움’(Ethereum)과 같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데이터를 생성하고 보관하는 토큰 중 하나인 NFT는 말 그대로 같은 종류의 다른 개별 자산으로 ‘교환할 수 없는’, 고유한 인식 값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을 의미한다. 기존의 가상화폐가 현실에서 사용되는 화폐와 같이 1개당 ‘동등한’ 가격으로 교환, 거래가 가능했다면 NFT는 디지털에 기록될 수 있는 무언가라면 형태와 무관하게 그것만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NFT의 특성상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출처와 발행시간, 소유자 목록, 거래 이력 등 관련 정보들이 명시되어 복제와 위조의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며 디지털 신원 신뢰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프라이버시 유출 문제와 신뢰 기준의 불명확성 문제 역시 한 번에 해소할 수도 있다. 또한, ‘N분의 1’과 같은 형태의 ‘부분적’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NFT 기술이 거래 방식과 소장 형태에 있어 다소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이었던 시장에 유동성을 불어넣음으로써 시장의 분위기 자체를 바꿔버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지난 2017년 자신만의 고양이를 수집하고 육성하는 게임인 ‘크립토키티’(CryptoKitties)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NFT는 2020년 기준 전년도 대비 무려 4배 이상 성장하며 점차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작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거래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아트 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은 미국 유명 경매 업체 크리스티(Christie's Auction)에서 무려 6930만 달러(한화 약 785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낙찰되었는데 이는 최초의 NFT 경매 작품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생존 작가의 작품 중 역대 세 번째로 높은 경매가를 기록하며 미술품 경매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게임 업계에서도 NFT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근 들어서는 사용자가 3차원 가상공간의 아바타를 이용해 다른 사용자와 교류하는 가상세계 플랫폼을 이르는 메타버스(Metaverse)가 유행하면서 NFT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 세계 4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할 만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미국의 메타버스 게임 ‘로블록스’(Roblox)가 대표적인 사례. 개발자로서 직접 게임을 만들거나 다른 사용자의 게임에 참여할 수도 있는 로블록스 세상 안에서 사용자들은 ‘로벅스’라는 자체 가상화폐를 통해 게임 개발, 아이템 구매, 아바타 꾸미기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자신이 모은 자금을 현금화할 수도 있다.
국내의 경우 NFT 아이템의 가상화폐 연동과 현금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행성’ 문제를 둘러싸고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와의 갈등에 부딪히며 아쉽게도 NFT 기술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지난 3월 이른바 ‘확률형 아이템 조작 사건’으로 인해 곤욕을 치렀던 만큼 업계 내에서는 블록체인 투자와 기술 개발, 공급망 확충을 통해 NFT 기술을 게임에 접목시킴으로써 게임 내 디지털 정보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게임 내 결제 시스템의 수익 구조를 대신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내 아이템 조작을 원천적으로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NFT 기술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 역시 적지 않다. NFT 기술을 통해 아티스트는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은 물론, 중개자 없이 창작물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팬들 역시 아티스트가 직접 제작한 창작물과 한정판 굿즈를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소통의 장이 이전보다 다양해지고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스포츠 분야 역시 특정 경기나 시합 영상뿐만 아니라 게임 속에서 사용할 수 있게끔 실제 선수를 카드의 형태로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미국프로농구 NBA의 경기 명장면을 담아낸 ‘NBA Top Shot’와 국내 프로축구리그 K리그의 선수들을 자신의 게임에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선수 카드’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폭발적인 관심만큼이나 NFT가 갖는 문제점들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중에서도 NFT가 가진 최대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유권 증명을 비롯한 법적 논의가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 꼽히고 있다. 일례로, 지난 3월 블록체인 회사 인젝티브프로토콜 관계자들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라피티(Graffiti) 아티스트 뱅크시(Banksy)의 판화 작품 중 하나인 ‘멍청이들’(Morons)를 NFT로 전환한 다음 원본을 불태우는 과정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데 이어 ‘홀로’ 남아버린 그들의 NFT가 원본의 4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면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NFT를 통해 취득한 소유권이 결국 실물 원본의 온전한 보존을 장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독창성’을 갖는 원본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행위를 낳을 수 있는 ‘반쪽짜리’ 데이터 집합으로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NFT의 ‘보안성’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발행에 있어 별도의 저작권이 필요하지 않은 까닭에 원작자의 동의 여부나 원본 작품의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채 무단으로 도용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이번 6월 초만 하더라도 국내 유명 화가 이중섭·김환기·박수근의 NFT 작품을 경매하는 과정에서 경매 업체가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소유권자의 동의만을 구하게 되었고 결국 저작권자의 요청에 의해 경매가 취소되는 일이 있을 정도로 위조나 조작을 원천적으로 막아내고 공식적으로 진위 검증을 담당할 기술적 안전장치가 부재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소규모의 개방형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개인 거래나 일부 중개 플랫폼의 경우 더욱 취약한 보안 탓에 자금 세탁, 테러자금 조달 등 불법 행위에 노출될 수 있다는 문제를 떠안고 있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NFT 제작 과정에서 특별한 시간이나 비용이 필요하지 않아 수요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공급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튤립 뿌리 하나가 수도 암스테르담의 고급 집 한 채 값에 팔릴 정도로 심각했던 지난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튤립 버블’(Tulip Bubble)을 떠올리기도 한다. 과거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네덜란드가 점차 유럽의 새로운 금융 중심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투자처를 찾던 거대 자본들이 튤립 시장으로 쏠리며 발생했던 무분별한 투기들과 그로부터 비롯된 경제 위기를 이르는 ‘튤립 투기 광풍’은 일확천금을 노렸던 인간의 헛된 욕망과 과도하게 유동적이었던 시장이 불러온 최악의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한편, NFT가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은행 등 금융기관이 중개하여 거래가 이뤄지는 일반적인 금융 거래 방식과 달리 별도의 중개 기관이 없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경우 안정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게끔 모든 거래 내역을 암호화해놓는데 그 내역을 계산해 하나의 장부인 블록을 형성하는 과정 다시 말해,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에너지 소모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비교적 하드웨어 제조업체와 근접하고 전기료가 낮다는 이유로 전체 가상화폐 채굴 시스템의 대부분이 화력 발전 중심의 중국에 위치한 까닭에 ‘지속가능하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은 물론, ‘에너지 부정의’의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시간이 갈수록 채굴의 난이도가 높아짐에 따라 더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는 작업 증명(Proof of Work, 해당 화폐의 채굴 과정을 무수히 반복함으로써 해당 작업에 참여했음을 증명하는 합의 알고리즘)의 방식을 대신해 상대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적은 지분 증명(Proof of Stake, 해당 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지분율에 비례해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합의 알고리즘) 방식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환경에의 부정적 영향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구체적으로 제공하고 작품 판매가 확정되었을 때와 같이 필요한 경우에만 NFT 거래를 진행하는 등 거래량 자체를 제한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NFT를 비롯한 가상화폐가 앞으로 정치, 경제, 환경,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요구된다. 특히, 지난해 말 중국이 별도의 블록체인 기술 없이 자국 통화인 위안화와 일대일 가치를 갖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중앙집권적 기축통화 시대를 넘어서 글로벌화를 중심으로 하는 탈기축통화 시대로의 전환 이른바 ‘화폐전쟁 2.0’의 서막을 올린 가운데 최근에는 엘살바도르가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의결하며 가상 자산이 기존의 금융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문예비평 분야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학평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 본래 어떤 영적인 기운을 의미하는 종교적 개념이었던 '아우라'(aura)의 개념을 문예이론에 적용해 확립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그는 일찍이 사진 기술과 영상 기술의 발달이 그간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문화예술 분야의 민주주의와 대중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하긴 했으나 원본과 복제본 간의 구분을 불명확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아우라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벤야민의 말대로 아우라의 부재가 곧 작품성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았으나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진이나 영상 나아가, 20세기 후반 등장한 디지털 아트라는 장르들까지 그동안 대중문화 장르는 철저히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NFT가 대중문화의 성공을 가져올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와 멀게만 느껴졌던 ‘디지털 신화’(神話)가 우리의 ‘새로운 이야기’(新話)로서 다시 쓰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NFT의 ‘활약’을 기대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