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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Mar 06. 2024

벽화

나무인간 72

설 전 사업하는 친구 부탁으로 김해에 갔다. 대형 키즈카페 공사인데 공간마다 연출을 달리 해 구성한다고. 나는 아이들 낚시하는 공간 벽면에 물고기와 바닷속 풍경을 그렸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종종 했던 일이라 어렵진 않았다. 다만 한창 시공 중이라 분진, 기계굉음, 시너 냄새가 어색했다. 보통 공사가 거의 끝날 무렵 벽화 작업을 하기 마련인데 시간이 넉넉지 않아 불가피했다. 인테리어 막일은 작년 잠깐 승화 형 요청으로 경험하고 두 번째였다. 익숙하지 않은 오감 속에 나흘을 보냈다. 크게 힘든 건 없었다. 쉬었던 손은 곧 숙련되었고, 일이 끝나면 따뜻한 저녁과 소주를 마셨다. 때문에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는 게 조금 벅찼다. 잘 몰랐는데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은 일이 끝나면 언제나 쨍한 술을 곁들인다. 그것도 많이. 나도 매일 세 병 정돈 마신 것 같다. 그래도 즐거웠다. 숙소에 돌아오면 술기운 오른 지친 몸으로 양말만 겨우 벗고 기절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아침이 왔다. 내가 즐거웠던 이유는 그들의 호의도 있지만 내가 가진 오래된 불안과 고독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색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예술하러 김해까지 내려간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 그들은 만족해하는 듯 보였다. 그뿐이었다. 그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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