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는게 어떤거라고 생각하세요?”
S생명보험설계사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강사가 질문을 던졌다. 돈이 무엇이지.
“솔직히 말하면 돈이란 예쁜 색종이죠.”
단 한 번도 돈을 예쁜 색종이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당황스럽다.
‘돈’이 은행에 있으면 동그라미 몇 개가 그려진 숫자에 불과하고 현물로 있으면 예쁘거나 혹은 지저분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고. 그럼 그 가치를 어떻게 정의 내리는지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나는 건 그 이후에 이야기가 아니라 예쁜 색종이라는 말만 생각이 난다.
나에게 있어서 돈이란 생물과도 같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같이 느껴진다.
돈이 가진 힘을 온몸으로 이겨내기도 하고, 굴복해야 하는 순간들도 적잖게 찾아왔다.
돈은 그렇게 나에게 어떤 의미보다는 나의 신체 일부로 야금야금 내 속안에 스며들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 때 가장 큰 위기감은 주거의 불안정이였다. 4년 내내 어디에서 살 것인가가 나의 큰 고민거리였다. 집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고등학교 내내 집에서 벗어나는 게 제일 큰 숙제였다. 막상 대학을 다닌다는 명분으로 집을 벗어나긴 했지만 늘 쪼들리게 보내오는 용돈은 편안하게 누워서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우리 부모님이 딱히 무슨 의도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의 1학년 대학생활은 조금 이상한 곳에서 시작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1학년 때 기숙사에 탈락을 했다. 나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친구들도 다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나만 탈락을 했다. 첫 시작부터 운이 좋지 않았다. 결국 차선책으로 찾아낸 것이 친분이 있던 분의 조카를 맡아주는 조건으로 그 집에 더부살이 하는 것이었다. 주인집 부부는 교감승진을 위해 시 외곽 사택에서 생활을 하고 주말에만 집에 왔다. 안주인의 여동생은 이제 막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맹랑한 아이였는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큰언니가 데리고 있었다. 나는 방을 값싸게 지내는 대신 그 아이를 돌봐야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한 상황이지만 그땐 그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침밥 차려주고 저녁 차려주고 나는 나대로 학교생활하고. 이제 막 스물이 된 내가 독립도 아니고 그냥 보모로 취업한 기분이랄까. 그렇게 1년을 버티고 부부는 다시 시내학교로 전근을 왔고 나는 그 집을 나왔다. 식구도 아닌데 식구인척 하면서 1년을 살다보니 다시 진짜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싫어서 나온 집을 다시 기어들어가다니 그 마음이 나약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방학 때면 바싹 아르바이트를 해서 월세를 얻을 만큼 열심히 돈을 벌었다.
나에게 있어서 취업은 최악이었다. 불과 졸업 전까지만 해도 호황이던 경제상황이 갑자기 꼬꾸라져서 직장을 다니던 사람도 실업자로 길거리에 나앉는 시련이 닥쳐왔다. 지방대에 특별히 뭔가 내세울 것도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졸업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하고 시험 준비도 했지만 결과는 늘 좋지 않았다. 어찌어찌해서 계약직 직원으로 들어가 3년을 버텼다. 일은 별로 힘들지 않았지만 월급이 너무 적었다. 이직을 준비하려니 나이가 너무 많았고 경력은 미미했다. 그래도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