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취업을 했고 우여곡절 많은 연애사를 끝내고 결혼을 했다. 이쯤 되면 나도 해피엔딩이고 싶다. 그런데 삶이라는 게 참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때 또다시 깨달았다.
결혼식을 몇 달 앞두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찰떡같이 믿었던 엄마의 지인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엄마가 지금까지 투자 명목으로 갖다 준 돈 뿐만 아니라 어리석게도 엄마에게 맡긴 나의 결혼자금, 오빠가 매달 엄마에게 보내던 곗돈 모두 날려버렸다. 체면을 몹시도 중요하게 여긴 엄마는 어떻게든 다시 빚을 얻어 내 결혼식을 마친 것 같다. 그렇게 나의 결혼은 시작부터 바닥에서 출발해야 했다.
나는 몹시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 좁아터진 동네에서 한집 건너면 그 집 사정을 훤히 알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연애를 했기에 엄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나는 묘하게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부모에게 굉장히 순종하는 스타일인데 무엇인가 꽂히면 고집을 꺾지 못한다. 대학이 그랬고 결혼이 그랬다.
풍비박산 난 집에서 혼수를 해가지고 온다는 게 참 기막힌 일이었다. 신혼집에 들어갈 때 도배도 할 돈이 아까워서 그런지 동네 지엽사에서 벽지와 풀을 사다가 밤새도록 도배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냉장고랑 TV며 신혼가구를 사러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 다녔다.
정말 악착같이 10년을 버티며 살았다. 외벌이에 아이 둘. 친정을 외면한 채, 끊임없이 일이 생기는 시댁의 뒤치다꺼리에 나는 그래도 살아남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사준 옷은 속옷이 전부인 듯 했다. 그래도 책 욕심이 있어 아이 돌반지를 팔아 전집을 구매했다가 아직도 남편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그 시절 내가 부렸던 최고의 사치였던 것 같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남편과 처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몇 달 후 아버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한 달을 입원해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병원비, 장례식비 이후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속문제에 대해 결국 나와 남편의 몫이 되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탓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몇 년 전 시댁에 큰 화재가 나서 집이 모두 소실되었다. 새로 집을 지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해 나는 그동안 모아놓았던 적금을 모두 해약해서 아버님 집을 지어드렸다. 그런데 유산정리를 하다 보니 장롱 속에 먹고 죽을 돈도 없다고 말씀하시던 아버님의 통장에 버젓이 돈이 들어있었다. 남편 변명으로는 선산묘지 이장 비용을 쓰지 않고 두신거라는데 나는 아직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죽은 조상을 위한 돈은 고스란히 장롱 속에 모셔놓고 살아있는 나는 죽어라고 그 돈을 마련하고 살았으니. 그렇게 버티다가 진짜 그만 살고 싶었다. 죽자니 무섭고 살자니 돈이 없고.
그때 이혼하기 위해 돈 벌러 나갔다.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이혼하려고 돈 번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때 나의 목표는 독립이었다. 뒤치다꺼리에 신물이 났다.
3년 바싹 벌었더니 이혼소송비용과 1년 치 양육비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사람마음이 참 간사하게도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어갔다. 그래도 상황이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비상금으로 꼭꼭 숨겨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