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밥 같이 먹어볼래요
리틀포레스트에서 여주인공이 고향으로 내려온 이유를 변명하듯 말할 때 진짜 밥을 먹고 싶어서였다고 말한다.
편의점 도시락을 데워 한술 입에 넣자마자 곧 뱉어버린다. 그리고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이건 음식이 아니라고.
그녀는 임용고시에서 낙방해서라기보다 진짜를 찾아서 고향으로 낙향한 것이다.
음식이건 사람이건 그녀가 머물렀던 도시는 가짜였다. 심지어 사랑마저도.
두주동안 심한 감기에 걸려 집안일은 제쳐두고 밥 먹는 것조차 힘겨웠다. 입안은 가슬거리고 몸은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삭신이 쑤시고 아팠다. 병원 갈 힘조차 없어 집에서 굴러다니는 감기약을 먹으며 버텼다, 말 그대로 약을 먹고 자고 하면서 내 몸이 그 시간을 버틴 것 같다. 너무 아픈 순간엔 그냥 이대로 잠들어 깨어나지 말았으면 했다.
대충 만들어진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다가 정말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 시원하게 끓인 동태탕이 먹고 싶어졌다.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인지 남편에게 부탁했다.
“나 동태탕 먹고 싶어.”
남편은 퇴근하고 와서 다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동네 어물전에 가서 대구를 한 마리 사왔다. 동태가 모두 팔려 비싸지만 그냥 생대구탕을 끓여주겠다고.
누워있는데 콧구멍 속으로 정말 맛있는 냄새가 풍겨져 들어왔다. 밥 먹자는 소리에 몸이 발딱 일어나 식탁에 앉아 코를 박고 국을 두 그릇 마시듯 퍼 먹었다. 밥알은 여전히 모래알 씹히듯 넘어가지 않는데 국은 정말 술술 넘어갔다. 밥해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 마무리 정리인 설거지를 하는데 손이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근육통이 왔다. 그냥 대충 마무리 하고 또 약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그전보다는 조금 몸이 나아졌다. 세수하고 장을 보러 갈 정도의 힘이 생겨 어물전에 가서 아귀를 샀다. 이번엔 아귀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남편에게 또 해달라기 염치가 없어서 문자로 저녁 뭐 해 먹을까 보냈더니 아귀를 먹자고 한다.
신나서 아귀를 사서 냉장고에 잘 넣어놓고 또 누웠다. 지독한 감기가 바깥바람 잠깐 쐬었다고 또다시 도져버렸다.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아귀찜을 해준다고 한다. 가만히 누워서 밥 받아먹기 미안해 콩나물 대가리를 다듬었다. 한참 후에 맛깔나는 아귀찜이 한상 차려졌다. 아직도 밥알은 모래알 같아 넘어가지 않는데 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찜은 술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제대로 된 밥을 몇 끼 먹고 나서는 감기가 소강상태가 되어서 집안일을 할 정도까지 체력이 올라왔다.
“저녁 뭐 먹을까? 아귀탕 먹고 싶은데 아귀가 너무 작아.”
“그럼 닭도리탕 해먹을까.”
신장개업한 정육점에서 닭을 3마리에 만원한다고 점원이 나와 큰소리로 호객행위를 한다.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얼른 닭을 사고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사골이 눈에 띄었다.
기름기 걷어내기도 귀찮고 한겨울 하루 종일 가스 불 켜놓고 끓여야 하는 번거로움에 사골 국 끓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커다란 사골과 잡뼈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물에 콩 나듯 사용하는 솥단지를 꺼내 뼈에 핏물을 우려낸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뭔 일인가 싶어 한다.
“나 진짜 사골국 먹고 싶어. 그래서 사왔어.”
아무 말 없이 솥에 담겨진 뼈의 핏물을 헹궈 베란다에 놓아둔다.
그리고 닭도리탕을 맛있게 조리해준다. 이제 입맛이 돌아와 밥을 먹어도 목구멍으로 제대로 넘어간다.
다음날부터 사골을 끓이기 시작했다. 기름을 걷어내고 잡뼈에 붙어있는 살점을 떼어내고.
국물을 거르고 다시 물을 부어 끓이고 기름을 걷어내고. 서너 번의 사골을 우려냈다.
용기에 소분해 놓고 냉동고에 얼려놓으니 마음이 뿌듯했다. 쌀독에 쌀도 그득하고 냉동고엔
사골국물이 가득하니 부자가 따로 없는 듯 했다.
내 가슴속에 리틀포레스트 여주인공의 마음이 조금씩 스며들어왔다.
나 역시 진짜 밥을 먹고 싶었던 것이다.
죽을 정도로 아프고 나니 스스로 삶에 대해 조금 깨달은 점이 생겨났다.
번거롭고 귀찮고 심지어는 하찮게 생각하는 일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귀한 일은
진짜 밥하는 일이다.
오늘도 난 장을 보면서 진짜 귀한 일을 한다고 스스로 다독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