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날카롭게 느껴진다면
내가 있었던 곳은 유난히 추웠다.
봄과 가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고,
긴 겨울이 오면 어두운 밤 속에서
슬며시 외로움이 찾아왔다.
겨울바람이 피부를 넘어 뼛속까지 파고들 즈음,
그 추위는 마치 호흡기를 찌르듯이 시렸다.
이상하게도 사람은 힘들고 나약할 때,
주변의 색감과 온도를 유독 선명하게 느낀다.
비슷한 예시로, 나는 피아노를 꽤 오래 쳤다.
손이 따라주지 않거나, 내 재능에 무력함을 느낄 때면
그 흑백의 대비가 그렇게 뚜렷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순간,
건반의 검은색과 흰색은
마치 내 마음을 고무찰흙처럼 눌러버릴 것 같았다.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면,
그때가 바로 나 자신을 돌봐야 할 신호였던 것 같다.
가을은 겨울의 스포일러다.
가을 끝자락에서 찬 겨울의 향이 느껴지면,
그건 곧 다가올 추위의 신호다.
장장 다섯 달의 긴 겨울이 지나야 만
비로소 새싹이 돋고, 꽃봉오리가 맺힌다.
우리는 수십번의 겨울을 맞이해도, 그 겨울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가을이라는 미리보기를 경험해도, 겨울은 낯선 추위의 연속이었다.
나의 인생은 스포일러가 없다. 그럼 더더욱 낯설겠지.
우리 모두 공평하게 스포일러 없으니까,
서툰거에만큼은 익숙해질 때도 됐다.
나는 지금, 그 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때의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