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고향

by 가영

나 김민자는 1941년12월27일(음력 11월10일) 父 김주락, 母 차인원 부부의 큰딸로 평남 평원군 동성면 군자리 23수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김석련, 할머니 차명희, 작은삼촌 부부, 셋째 삼촌 부부, 고모 한 분. 대가족이 한집에 살았다. 앞마당이(대문 밖) 넓었고, 울타리는 기와가 얹혀 있었고, 집 대문은 무거운 나무 대문. 문 열 때마다 “삐거덕”하며 큰 소리가 났다. 뒷대문도 있었다. 토방이 높고 기와집이며 안채 밖엔 할아버지가 기거하시는 사랑채가 있었고, 마당 한켠엔 다락방 같은 이층루도 있었다.

내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인물이 출중했고, 면장을 하시어 항상 손님이 많았고, 그런 할아버지를 난 부모님보다 더 좋아했다. 사랑채 나가면 할아버지가 경옥고 같은 검은 약을 한 숟가락씩 떠주며 먹으라 했다.

언젠가 안동 하회마을 구경 갈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고향의 내 집 구조같이 된 집을 보고 너무 가슴 설레고 감격했던 기억도 있다.

어렸을 때 난 무용도 잘 하고 노래도 잘 불렀는지 면에서 행사가 있을 땐 내가 단위에 올라가 재롱을 부리면 많은 사람들이 박수치며 “면장님 손녀딸”이라 하면서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살고 있는 집 말고 한참 떨어진 곳에 과수원이 있었다. 그곳엔 노할머니가 사셨다. 연세가 많으셔도 정정했었다.

언젠가부터 우린 고향집을 떠나 평양에서 살았다. 커서 알게 되었지만 해방 후 많은 분들이 고향을 등지고 월남을 했는데 우리집은 서울로 오지 않고 평양에서 머물게 된 것 같다.

난 선교리란 곳에서 살며 제15 인민학교에 다녔다. 그때 난 키가 너무 작아 엄마가 만들어준 가방을 메고 학교 갈 때는 내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가방만 보였다고 한다. 그 당시 학교 칠판 위에는 김일성 사진과 스타린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어 수업 시작 전에는 꼭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공부를 시작했던 것 같다. 고모도 같은 학교에 다녔는지는 기억이 없다.

학교에서도 소문이 나 저녁 군인들 위문공연을 자주 가 재롱을 떨며 인기를 얻었다. 그땐 위문공연이 자주 있었던 것 같고 밤늦게야 혼자 집에 가며 무서워했던 것도 같다.

우리집은 당시 동대원(비행장 앞)이란 곳으로 이사를 해 난 꽤 먼 거리를 전차를 타고 학교에 갔다 왔다 했다. 고모는 그때 여중학교에 다닌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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