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수십대의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에 나타나더니 꽝꽝 소리를 내며 폭격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집으로 뛰어 들어가 뒷문을 열고 보니 비행장에 폭탄을 퍼붓는 비행기의 모습이 몹시 무서웠다. 불길이 치솟고 담벼락이 폭음소리 들릴 적마다 부슬부슬 떨어지는 것이었다. 전쟁이 난 것이란다.
우리 식구들은 서울 과수원으로 갔다. 과수원에서의 생활은 나는 어려 큰 어려움은 없었고, 고모와 난 사과나무 밑을 돌며 달래도 캐고, 땅콩도 캐고, 똥참외도 따먹고, 개암도 송충이 쏘여가며 따먹고, 사과도 까치가 파먹은 것만 골라 따먹고(고모가 나무를 잘 탔다. 나와는 5살 차이 난다. ). 과수원에서의 나의 생활은 평온했었다. 집에는 노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엄마, 아버지, 작은엄마, 동생, 사촌동생이 있었다.
사과나무 밑에 깔개 펴고 누워있느라면 비행기가 쉴 새 없이 떠다니며 꽝꽝하고 어딘가에다 폭격을 해 대곤 했다. 그 와중에도 할아보지와 엄마는 사과나무에 약을 뿌리곤 했다. 아버지, 삼촌들은 없었던 것 같다.
가끔 밤이 되면 할아버지가 엄마, 작은엄마, 우리들을 불러 놓고 조명탄이 비쳐져 밝은 밖을 보시며 전쟁 이야기 말조심하라는 등의 심각한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다.
잠결에 들으니 밖에서 “면장님 계십니까?”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나가려고 옷을 챙기는데 할아버지가 먼저 “뉘시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면장님, 회의가 있으셔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예”하는 할아버지 소리도 들었고
“에미야, 회의 갔다 오마”하는 할아버지 음성도 난 들었다.
“예” 엄마는 방에서 대답했다.
아침이 밝았다. 밖이 웅성거리며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다.
“아버님이 어젯밤에 회의하러 가셨다가 안들어오셨네요” 엄마의 걱정 섞인 말에 할머니는 “그래” 하시곤 말씀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남자 손님 한 분이 숨 가쁘게 찾아오셨다. 엄마에게 어제 할아버지가 읍내 경찰서로 끌려가시면서 길가에 살고 있는 당신 집에 들려 “나 지금 경찰서로 끌려가니 집에 소식 좀 전해달라”고 하셨다며 한 20리나 되는 길을 아침 일찍 달려 나와 알려준 것이다.
엄마는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어 갖고 20리나 되는 읍지 서에 할아버지 면회를 가셨다. 밤이 늦어서야 엄마는 돌아오셨는데 할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었단다.
옛날 우리가 큰집에 살 때 와서 일도 도와주고 도움도 많이 받았던 사람의 아들이 기도를 서고 있었는데 엄마가 면회하길 사정해도 “면장님 안계신다”고 딱 잡아 떼고 몰라라해 만나 볼 수 없었단다. 들리는 소리로는 그날 밤 앞산에서 사람들 울부짖는 소리, 총소리가 수도 없이 들렸다고 한다.
할아버지 소식 백방으로 알아보는 것 같았지만 영 알길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 난 너무 슬프고 무서웠다. 한참 동안은 인민군이 과수원에 와서는 닭도 잡아달라 하고, 밥도 해달라 하더니, 한참 지나니 코 큰 미국 사람이 과수원에 자주 오고, 물건도 가져가고,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지만 한날은 찦차 한 대가 과수원에 들어왔다. 군복을 입은 미군과 한국 사람이 같이 타고 있었다. 코 큰 사람 보니 고모와 난 무서워서 숨었다.
한국 사람은 통역관인데 우리 셋째 삼촌 작은 어머님 오라버닌데 할아버지한테 인사차 들린거란다. 그간의 사정을 들은 그분은 며칠 후 다시 와서 아버지를 태우고 가셨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할아버지 시체를 찾게 해주려고 시체가 많이 쌓여있는 우물, 연못, 산 이런 데를 같이 다니며 고생했으나 결국 못 찾고 아버진 거지같은 몰골로 돌아오셨다. 명주 바지 저고리 입으신 옷으로 찾으러 성천까지 갔었으나 고생만 하고 돌아오신 거다. 모든 사람이 슬퍼할 새도 없었다.
또 한가지 기억은 저녁이 다 되어 가는데 할아버지가 마부를 데리고 마차에 뒤지 하나를 태워가지고 들어오셨다. 평양에서 마부랑 밤낮을 새워가며 걸어서 오셨단다.
엄마가 “고모랑 마부랑 너랑 옆집 과수원집에 가서 말 먹이를 좀 얻어 오라”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옆 과수원집에 다녀왔더니 마차 위에 있던 뒤지가 땅에 놓여있는데 열쇠는 잠겨있는데 뒤지 뒷벽이 터져있고 뒤지 안에는 물이 흥건히 있어 하도 이상해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왔다 갔다 하니까 “민자야 뭐하니? 얼른 저녁 안 먹고” 그 뒤로 난 이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뒤지 속에는 작은아버지가 인민군에 끌려가다 도망쳐 평양집에 숨어 있는걸 할아버지가 가셔서 마차에 짐같이 실고 오신거란다.
그 후 나에게는 의문이 한가지 생겼다. 방에서 자고 깨면 농 뒤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고 가끔 기침 소리 같은 소리도 들리고 영 궁금해 밖으로 나가 굴뚝도 살펴보고 농문도 열어보고,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엄마 농 뒤에 귀신이 있나 봐”하고 이야기하면 엄마는 못 들은 척하곤 했다.
한 날 밖에 나갔다 온 나는 방에 작은아버지가 앉아계셔서 놀랐다. 작은아버지는 얼마나 자상한 분이냐면 큰 기와집에서 같이 살 때 나에게 엿같은 간식거리를 줄 때도 꼭 손으로 안 주고 입에 물고 입으로 건네주곤 하던 끔직이도 날 귀여워 해주던 분이다.
그런 작은아버지를 갑자기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반갑고 놀랬을까? 이유인즉, 평양에서 할아버지가 뒤지를 마차에 싣고 왔을 때 그 뒤지 속에는 인민군 끌려가다 도망해서 평양집에 숨어있던 작은아버지를 싣고 오셨던 거였다.
“민자야, 나 여기 있다는 소리 아무한테도 하면 안 돼.”
엄마와 작은아버지는 나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또 한 사람의 삼촌이(할머니 오라버니 아들) 작은아버지랑 같이 숨어있었다. 후에 작은아버지, 셋째 삼촌이 같이 입대하게 되고.
어느 추운 날 저녁 밥솥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즈음 “중공군이 쳐내려온단다. 나팔 불고 꽹과리 치며 내려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인단다.” 하며 피난 가야 한다고 야단이 났다. 아버지가 할아버지 시체 찾으러 다니시다 못 찾고 돌아온 지 한 3일 지나서인 것 같다.
“저녁밥이고 뭐고 어서 서둘러, 평양집에 한 3일 가 있다 오면 괜찮을 거다.” 라며 재촉하는 바람에 엄마, 아버지, 작은엄마, 고모, 동생, 조카 등 7명이 노할머니와 친할머니는 남겨둔 채 밤에 평양으로 피난길을 떠났다.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남으로 가야 산다니-평양집을 목표로 어린 나이에도 불평 없이 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