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집

in my dreams

by 조은영 GoodSpirit

유년의 집은 20여 년 전 재개발로 철거됐다.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그 집을 영영 떠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염원이었으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집은 아직도 내 기억에서 선명하다. 제멋대로 개조된 한옥은 겉에서 보면 양옥처럼 보였지만 내부는 대들보와 서까래가 남아 있었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볼 때마다 흰색 회반죽 아래로 불거져 나온 나무 서까래는 마치 거대한 물고기의 뼈 같았다. 나는 무시무시한 포식자의 뱃속에 있는 것 같은 으스스함을 느꼈다.


본디 고풍스러운 한옥이었던 그 집은 건축 설계에는 문외한인 아버지의 마음대로 개조된 탓에 나중에는 흉물스러워졌다. 마당 자리에 본래 있었던 유선형의 연못도 호두나무, 앵두나무, 감나무 등의 과실수도 모두 베어지고 직사각형 창고가 지어졌다가 열대어 어장 비닐하우스로 개조되었다가 결국은 아빠의 공장들처럼 그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사라지곤 했다.


결혼을 하고도 꽤 오랫동안 유년의 그 집은 내 꿈속 배경이었다. 꿈속에서 난 여전히 고향집에 살고 있었다. 그 집에서 겪은 어두운 장면들이 곧잘 새로운 버전으로 연출되었다. 어린 나는 꿈속에서 무기력하게 슬프고 두려운 마음을 느꼈다. 그 집에 가본 일도 없는 남편과 아이들까지 꿈에 나오기도 했다. 그 집은 마치 공포영화의 세트장처럼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은 채 내 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집이 몇 해 전부터 나오지 않는다. 이제 내 꿈의 배경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이다. 이제 유년의 집은 나를 떠났다. 아니, 아니지. 마침내 내가 그 집을 떠난 거다. 이제껏 떠나지 못하고 꿈속에서나마 찾아간 그 집을... 꿈속 자아는 유년의 집의 지박령이었던 것이다. 해결해야 했던 마음의 감정들.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할 때 영향을 미쳤던 유년의 기억들. 그것들이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을 때 나는 그 집을 떠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즈음 왜 그 집이 생각나는 걸까? 이제는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그 집에 가보고 싶다. 겨울 배웅하는 이른 봄꽃들처럼 그 집의 좋은 기억들이 하나둘 피어오른다. 그 때마다 겨울눈 녹듯 아픈 기억들이 하나둘 녹아 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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