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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일상 一想

by 조은영 GoodSpirit

나는 자전거를 혼자 배웠다. 초등학교 6학년쯤이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는 자전거 한 대를 끌고 왔다. 보조바퀴가 없는 어른용 자전거였다. 누구든 타라는 것이다. 청소년이 된 언니 둘은 중고 자전거 따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은 탈 엄두조차 못 냈다.


나는 세워놓은 자전거 시트에 걸터앉아 보았다. 페달이 겨우 발에 닿았다. 페달을 힘껏 돌리려면 다리를 뻗고 서서 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빠나 엄마에게 자전거를 가르쳐달라는 말은 못 했다. 내 기억으로 부모님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일이 없거니와 항상 무언가로 바빴기에 그저 나 혼자 배워야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은 다 자라지 않은 아이 혼자 어른 자전거를 배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출발이 중요한데 육중한 자전거의 균형을 잡고서 페달을 돌리는 2가지 행위를 동시에 해낼 수 없었다. 수도 없이 넘어지기를 반복하다가 퍼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리막길에서 타볼까?'


일단 균형만 잡으면 페달을 힘주어 굴리지 않아도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오는 것은 문제가 없으리라. 나는 끙끙거리며 오르막길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그리고 숨을 고른 뒤, 뒤로 돌았다. 이제는 반대로 내리막길이 된 길을 향해 자전거를 똑바로 세우고 올라탔다. 페달을 돌릴 필요가 없었다. 자전거는 시원하게 내리막길을 달렸다. 속도가 나니 균형은 자동으로 잡혔다. 하지만 짜릿한 순간도 잠시, 내리막길 끝, 오른쪽으로 도는 모퉁이길에서 그만 우당탕탕.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내리막길 끝쯤에는 가속도가 그렇게 많이 붙는다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미리 브레이크를 잡아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틀었어야 했는데 그 생각을 못했다.


자전거와 함께 나동그라진 나는 온몸이 아작 난 듯 아팠는데 다행히 어디 하나 부러진 데는 없었다. 어쩌면 그 사건 하나로 영영 자전거는 꼴도 보지 않겠다 다짐할 수도 있었건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자전거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어찌 됐건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것 아닌가. 나는 실패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와 자전거 모두 부서지지 않았으니 툴툴 털고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내리막길 주행 때는 처음부터 브레이크를 잡고 내려왔다. 속도가 크게 늘지는 않았으나 모퉁이를 돌다가 균형을 잃고 또 넘어졌다. 그래도 첫 번과 같은 대형사고는 했다. 물론 그 후에도 수없이 넘어졌다. 하지만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 수 있게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자전거를 탄다. 차로 10여분 정도면 갈 거리는 웬만하면 자전거를 탄다. 공기를 오염시키지 않고 비용이 들지 않으며 운동효과까지 있으니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나.


네 명의 아이들도 7살 때 보조바퀴를 떼고 두 발 자전거를 탔다. 아이들이 처음 보조바퀴를 떼고 두 발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할 때는 항상 뒤를 잡고 같이 뛰면서 균형을 잡으면 놓아주기를 반복했다. 아이들 역시 수없이 넘어졌지만 엄마 아빠가 뒤에 있다는 걸 아니 어린 나이에도 용기를 냈고 결국 능숙하게 탈 수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뒤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자전거를 배울 수 없었을까? 물론 일곱 살 때 두 발 자전거를 타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필요를 느낀다면 배울 수 있었겠지. 어두움이 그토록 무서운 열세 살 겁쟁이였던 나도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없었어도 혼자 자전거를 배웠으니까.


비록 지금 당신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당신이 지금 꼭 붙잡고 있는 핸들을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해낼 것이라 믿는다. 당신의 핸들에 나의 마음을 살짝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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