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一想
통증은 여러 방향에서 온다. 인간의 온몸에는 통점이 있으며 몸은 단면이 아니므로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저녁을 먹고 1시간쯤 후, 오른쪽 복부와 옆구리 사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리며 뭔가 불편한 느낌, 익숙하지만 낯선 통증이다. 비슷한 종류의 통증을 느껴본 적 있기에 익숙하지만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기에 낯설었다. 염려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는데 오른쪽 옆구리가 꽤 불편했다. 어제보다 통증이 강화됐다. 식욕이 없어 아침을 건너뛰고 뭔가를 하려고 움직일 때마다 옆구리는 점점 더 아파왔고 숨을 쉴 때조차 아팠다. 들숨 때마다 통증이 찌리릿, 더욱 불안해졌다. 불현듯 맹장염이 생각났다. 맹장염은 느닷없이 찾아와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병이잖나.
막연함은 불안의 먹이가 되어 불안을 더 비대하게 만들었다.
맹장염을 검색해 보니 충수에서 일어나는 염증이라 하복부에 강렬한 통증이 생기지만 우측 옆구리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하니 가능성을 의심했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만약의 응급상황에 대비하도록 얘기하고 가까운 내과를 찾았다.
의사는 옆구리를 통통 두드려보고 몇 마디 질의응답을 통해 요로감염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러나 확진은 아니라서 인근 종합병원을 추천했다.
종합병원 1 내과에서 진료를 보고 여러 장의 엑스레이와 복부초음파, 그리고 소변검사를 했다. 간, 신장 등 모든 장기가 깨끗하고 문제가 없다는데 소변검사에서 피가 조금 발견됐다고 한다. 그 때문에 요로감염이 의심되기는 하나 생리시작 전이라면 피가 비칠 수 있다며 외과 진찰도 받아보라고 했다.
외과의는 내 옆구리를 톡톡 건드리고 배를 찔러보기도 하더니 최종적으로 근막염인 것 같다고 진단을 내렸다. 근육주사를 맞고 3일간 소염진통제를 먹어보고 진전이 없으면 그때 요로감염 검사를 해봐도 늦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대상포진일 가능성도 있으니 수포가 올라오는지 잘 관찰해 보라고도 했다.
3명의 의사를 만났지만 누구도 '이거다'하는 확진을 내리지는 않았다. 가능성만 난무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만난 외과의가 추정한 근막염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첫째, 개연성 측면에서 근막염을 유발했을 법한 정황이 생각났으며 둘째, 근막염이 그나마 가장 치유가 빠를 것 같은 나름의 효율성을 따진 판단이 소망과 결탁한 터였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자신과 주변을 진단하는 두 가지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가능성들 가운데서 개연성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소망과 결합시키는 일 말이다.
28일, 진통제를 맞고 약을 먹고 나니 그날 밤, 옆구리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29일,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다. 약은 먹지 않았다.
30일,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짧은 시간 증폭된 불안감은 방사능 노출과 진료비 8만 원, 약제비 1만 원을 소비하고 사그라들었다. 몇 가지 가능성들 가운데 최약의 결론이 나와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허나 하루만 더 기다렸더라면 자연스레 통증은 완화되지 않았을까. 때로는 불안을 덮어두고, 개연과 효율적 판단을 잠시 유보한 채, 그냥 기다리는 것, 그것만으로 나아지는 일들이 있다.
<사진:Pintere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