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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선

일상 一想

by 조은영 GoodSpirit

내가 마주한 선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선이 있다는 것을 안다. 선은 위에서 아래로 굵게 떨어져 지면에 꽂히는 순간 사방으로 흩어진다. 수천수만 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나는 접힌 우산을 펼치지 못하고 처마 아래 멈춰 서서 주저한다. 그럼에도 발끝부터 점점 젖어간다.


창살 같은 선일지라도 나를 가둘 수는 없다. 다치게 할 수도 없다. 선과 나는 서로를 해하지 못한다. 그저 함께 젖어 흘러내릴 뿐. 어차피 젖을 것이라면. 그래, 우산을 펼치고 나가자. 기껏해야 홀딱 젖기밖에 더하겠나.


그림 출처 <삶의 모든 색/리사 아이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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