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 양> 리뷰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로봇청소기에 이름을 지어주고 고장이 났을 때는 새 제품을 사는 대신 수리하는 쪽을 택한다는 인간들의 다정함이 보이는 이야기를 무지 좋아한다. 일명 ‘일라이자 효과’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차가운 고철 덩어리에 나도 모르게 인격을 부여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잘 나타내는 용어이다. 나는 이처럼 인간에게는 작은 존재라도 마음을 터놓고 가까워지고 싶은 유약함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 편인데, 오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Siri)에게 화를 내고 챗GPT에게 윽박을 지르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머나먼 미래,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 부부 사이에 입양된 중국인 아기 미카는 어느덧 저녁 식사 준비도 도울 줄 아는 여덟 살 꼬마 숙녀로 훌쩍 자랐다. 부부는 가족 구성원 중에서 본인만 다르다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미카의 뿌리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중국인 입양아용 형제자매 안드로이드 로봇 양(Yang)을 구매했는데, 로봇 양이 갓난쟁이 미카를 돌보며 부부에게 큰아들이자 보모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 준 것이다. 평화롭던 여느 날과 다르지 않던 어느 날 밤, 양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영영 깨어나지 못할 위기에 처한다. 아빠 제이크는 이미 구모델로 전락해버린 양을 고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양이 더 이상 깨어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제이크는 항상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던 양이 스파이웨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평소에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에 대한 옅은 우려를 보이며 양의 기억을 헤집기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심이 무색하게도 양의 기억에는 가족을 향한 애틋함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제이크. 아름다운 기억의 편린을 살피고는 이내 눈물을 훔친다. 길어야 3초 정도인 아주 짧은 순간들이 연속적으로 보일 뿐이었지만, 한순간도 애정을 숨기지 않는 양의 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미카의 꼬물거림과 엄마 카이라의 상냥함, 그리고 단란한 세 식구의 모습이 중요 기억 장치에 저장되어 있었다. 늘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어 인간을 동경했던 양의 부러움과 완전한 가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양의 주저함이. 그리고 바람과 볕이 잘 드는 모서리, 무지개, 먹다 남은 음식과 우려낸 차와 찻잎들까지. 그리고 양이 사랑했던 여자 에이다까지도.
시네필이라면 이름을 들어봤을 ‘A24’사의 영화가 유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독특한 소재와 감각적인 연출,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챙겨주는 후하고 인심 좋은 영화들을 많이 배출해냈기 때문이다. <애프터 양>도 빼놓을 수 없는 A24사의 수작으로,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을 맡아 동양의 고즈넉함과 SF 장르의 신비로움이 한데 어우러지는 독특한 감성의 영화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 사회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했을 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애프터 양>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 <Her>의 장면도 문득 떠오른다. 영화를 두고 이야기할 주제는 정말 수도 없이 많겠지만, 오늘만큼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공지능의 등장이 우리에게 어떤 윤리적 문제점을 시사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다만, 오늘은 우리 곁을 머물다가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부재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영화의 제목처럼 어떤 존재가 우리 삶에 갑자기 등장한 이후부터는 그 존재가 아무리 떠나간다고 해도 결코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물며 집에 쓰던 가전제품이 고장 나도 마음이 뒤숭숭한데, 그 부재가 가족이나 반려동물과 관련된 것이라면 우리는 더욱이 그 사실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애프터 양>은 그동안 수없이 많이 우리를 지나치고 떠나간 모든 양에 대한 작별 인사임과 동시에 제이크 가족처럼 남은 사람에게 건네주는 위로 같은 영화다. 인간에게는 정말로 별다른 도리가 없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곁에 있는 존재들에게 넘치도록 애정을 쏟고 부재에 충분히 아파하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그러니까 당신 곁에 있는 존재들에게 조금 더 상냥하고 조금 더 다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설령 그 존재가 ‘네? 잘 못 알아들었어요. 다시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시리(Siri)라고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