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레터>로 보는 사랑의 이면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후지이 이츠키의 2주기 추도식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여전히 죽은 연인을 애틋해하는 와타나베 히로코. 히로코는 이츠키의 중학교 시절 졸업 앨범을 보다가 지금은 사라졌다는 오타루에 옛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당신은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요.' 분명 배달되지도 않을 편지였지만 히로코의 실수로 죽은 이츠키와 이름이 같은 중학교 동창생 후지이 이츠키에게 편지가 잘못 전달되고, 이츠키는 죽은 이츠키와는 이름에 얽힌 추억 말고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히로코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지난 추억을 곱씹게 된다.
남자 이츠키와 여자 이츠키로 구분되어야 했던 두 사람. 이름이 같았기 때문에 공연히 놀림을 받았고, 그래서 사춘기 남학생 이츠키는 오히려 첫사랑을 괴롭히고 무시하면서 자신의 서툰 사랑을 철저하게 숨겨야 했다. 덕분에 오타루에 사는 여자 이츠키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남학생의 마음을 십수 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괜히 도서관이 낭만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아마 도서관 업계 종사자 중 몇몇은 <러브레터>를 보고 나처럼 완전히 속았을 것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답게 영화의 모든 장면은 마치 필름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서정적이고 그래서 또한 아름답다. 하지만 포장지를 뜯어보면 '첫사랑'을 주제로 한 사실적 수준의 적나라한 알맹이가 드러나서 마치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고 났을 때와 흡사한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이츠키의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과 죽기 전까지 사귀었던 애인 히로코의 얼굴이 닮았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뭔가 쎄한(?) 느낌이 든다면 영화를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 맞다. 이츠키가 첫사랑 여자 이츠키의 얼굴과 닮은 히로코에게 첫눈에 반해 교제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곧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에이, 그래도 설마 히로코를 조금은 사랑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드는 순간, 이츠키가 설산에서 조난 사고를 당해 죽기 전 불렀다던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츠키는 당대 최고 인기 여가수 마츠다 세이코를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죽기 전에 하필이면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에서 '나의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려가'라는 가사를 떠올렸는데, 북쪽 오타루에 사는 첫사랑 이츠키에 대한 절절한 이츠키의 심정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말처럼, 뭇 남자들이 자신의 첫사랑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 후지이 이츠키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더군다나 첫사랑과 이름이 같았으니, 자신의 이름이 매일같이 불릴 때마다 가슴 한쪽이 저릿했을 것이다. 그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히로코는 이츠키가 숨을 거둔 설산을 찾아가 이른 아침부터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데, 이 장면에서 히로코의 절규 섞인 외침이 너무 애절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그래, 생각할수록 사랑은 참 야속하고 비겁하고 추잡스러운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오히려 그런 우습지도 않은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했기 때문이다. 뒷모습이라도 보기 위해 매일 먼 길을 돌아가는 수고스러운 사랑을. 첫사랑의 이름을 몇 번이고 남몰래 적어보는 순수한 사랑을. 그래서 속을 걸 뻔히 알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믿어보게 만드는 사랑을. 상대가 잘있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도 사랑은 충분하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이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은 쑥스러워서 적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이 자리를 빌려 오늘 당신께 묻는다.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