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러브레터> 관련 글을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추악한 사랑을 다시 믿어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라고. 그렇다면 같은 감독의 <4월 이야기>는? 포장지가 투명한 박하사탕 같은 영화다. 이렇게 정직하고 투명하게 냅다 순애보일 줄이야. 보고나면 지난 사랑의 텁텁함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영화를 설명하기 전에 오늘은 나를 먼저 소개해주고싶다.
짝사랑 전문가, 고백 공격수, 퍼주기 장인인 나는 좋아하는 상대에게 한없이 잘해주고 상대가 질려서 영영 떠나버리게 만드는 기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항상 오늘이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마음과 시간을 모두 쏟고 운만추를 표방하며 언제나 사랑을 꿈꾸는 나는 자칭 사미새(?)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4월 이야기> 속 주인공 우즈키를 따라가려면 나는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는 것이다. 동경하는 선배를 보기위해서, 한국으로 따지자면 열심히 공부해서 인서울 대학에 간다는 설정은 너무..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도, 심장도, 간도, 쓸개도 정말로 다 빼줄 수 있지만, '수능 잘보기'는 나에게 죽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면 힘든 줄도 아픈 줄도 모르게 되는 나지만. 아무리 사랑이 호르몬의 장난이자 도파민의 분출이라고 해도 좋은 성적까지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그건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쪽이 더 가깝다.
오직 사랑 하나만 믿고 저질러버리는 우즈키(마츠 다카코)의 무모한 순애가 좋아서, 세상과 사랑에 질려버리게 되면 제철음식처럼 이 영화가 생각난다. 성적이 안되서 인서울(?)이 안된다는 선생님의 말에도, 험난한 타지에서의 쉽지않은 대학생활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야마자키 선배를 향한 마음을 소중히 품고 있는 우즈키. 그래서 겨우 대화 한번 했을 뿐인데도 우즈키는 선배가 준 고장난 우산을 들고 히죽 웃고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랑이 시작될 것 같은 작은 희망 때문에.
낭만이 사라지고 사랑을 하면서도 이익을 따지는 세대, 고백을 공격이라고 터부시하며 밀당을 기술이랍시고 설파하는 이 시대에 <4월 이야기>는 정말로 귀한 영화다. 그래서 말인데, 이 차가운 사람들의 도시여. 숏폼 영상에 절여진 뇌를 오늘만큼은 개운하게 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고 나가서 마음껏 사랑해라. 4월의 끝자락. 비록 벚꽃은 졌지만 이팝나무가 흔들리는, 사랑하기에 참 좋은 선선한 계절이다. 이팝나무까지 져버리면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렇지만 혹여나 꽃이 다 져버렸다고 해서 너무 상심하지 말 것. 우즈키의 사랑은 거센 폭우 속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