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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하는 기이이린 Dec 15. 2021

성공 경험을 쓰라구요? 성공 경험이 없는데...

자소서를 쓰며 오는 현타

요즘 나는 한창 채용을 위해 자소서를 열심히 쓰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자소서들을 쓰다 보면 종종 성공 경험에 대한 질문들을 마주치게 된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크게 성공했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의 경험을 적고, 그 경험을 통해 본인이 느끼고 배운 점에 대해서 기술해주세요."
"대학 시절 어떤 프로젝트이든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면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그리고 프로젝트를 어떻게 성공시켰는지를 말씀해주세요."


그러고 보니 살면서 내 성공 경험을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뭘 성공해봤지?? 자소서를 쓰기 위해 곰곰이 내 과거들을 떠올려본다. 그런데 내 과거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숨이 점점 턱 막혀온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도 나에게는 그럴듯한 성공 경험이 딱히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학창 시절도 얌전하고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이 지냈고, 대학도 아주 나쁘지도 않지만 좋지도 않은 인서울 하위권 대학에 입학. 학점도 3점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에 그나마 해봤던 공모전들도 모조리 광탈. 특별한 프로젝트 참여 없음. 나름 오랜 기간 준비했던 공무원까지 결국 턱걸이 탈락. 온갖 실패와 좌절의 경험은 있어도 도저히 성공이라고 볼 만한 경험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게임 대회 본선에 진출해봤어요!"나 "국토대장정에 성공했어요!", "한라산에 등반해봤어요!" 같은 걸 인생의 가장 큰 성취라고 하기에도 좀 뭐하지 않나 싶었다. 대학시절 열심히 다녔던 아르바이트도, 시간 써서 나름 열심히 했던 헬스도 모두 나름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딱히 성공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아닌 것 같았다. 슬슬 머리가 복잡해졌다. 도대체 무슨 말을 채워 넣어야 하지?


게다가 내가 지원하고자 하는 마케팅/홍보 직무는 크게 직무 관련 활동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막막한 심정이었다. 차라리 정말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뭐라도 성과를 낸 관련 경험이라면 좀 비벼볼 만할 텐데, 성과를 낸 관련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뭐라도 써넣기가 상당히 뻘쭘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없는 경험을 지어낼 수도 없는 거고. 도움을 받고자 인터넷을 뒤져봐도 친구와 스타트업을 세워서 광고를 돌렸는 데 성공했다느니,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광고를 받아서 진행해봤다느니, 아버지 친구네 야채가게 마케팅을 맡아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해서 판매율을 높였다느니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들만 가득했다. 그냥 조졌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 X됐다."


참고를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뒤졌다. 많은 유튜브나 취업 관련 사이트들에서는 "수치화"할 수 있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을 했다. 그야말로 더 막막해져 버렸다. 오랜 기억들을 하나씩 더듬어보아도 도저히 "수치화"할 만한 경험이 없었다. 수치를 내기 위해 살아온 삶은 아니기도 했고, 그저 여러 경험들을 쌓아보려 노력한 인생이다 보니 더더욱 수치화는 힘들어 보였다. 도저히 인사담당자가 원하는 성공 경험을 쓰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에라 모르겠다"였다. 결국 그냥 성공 경험이 없다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성공 경험이 없는 대신 인생에 큰 실패 경험만 잔뜩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첫 문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고 고민해봐도 딱히 인생의 큰 성취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신에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 경험과 그를 통해 어떤 것들을 느끼고 배웠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쏼라쏼라 실패 경험을 써넣는 와중에도 이게 뭐하는 일인가 싶었다. 첫 문장을 보고 이후 내용을 쳐다나 볼까 생각이 들었다. 결국 채용담당자는 성공 경험이 듣고 싶어서 성공 경험을 질문했을 텐데 내가 쓴 내용은 순 쓸데없는 내용이다 보니... 괜히 빈칸으로 내는 것보다는 낫겠지라는 심정으로 글을 썼지만 쓰는 와중에도 씁쓸한 기분은 없어지지 않았다.

  

자소서를 완성해 보내면서도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20대 후반까지 살면서 뭘 했는가. 오랜 기간 공무원을 준비하면서 나이만 먹고 해 놓은 건 없구나, 나는 누구보다도 실패만 맛본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들이 들며 인생의 회의감이 생겼다. 특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에 평범함으로만 무장한 사람이라니. 앞으로 직장에나 들어갈 수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들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취준 기간을 오래 가질수록 자존감도 떨어지고 우울함을 호소한다는데 왜 그런지 정말 알 것 같았다. 나 또한 한 달 가까이 수많은 서류 탈락과 면접 탈락을 경험하며 서서히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공무원 준비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어딜 가나 기준은 높고 경쟁은 무한인 세상이다.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무언가가 특별해야 하지만 대다수는 특별하지 않다. 그러니 대다수는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대다수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은 계속 절실해지고 취업에 대한 갈망은 커져가는데, 자소서 성공 경험 한 줄 채우지를 못하니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나만이 이런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할 것을 알기에 위안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해진다. 


코로나로 인해 취준생들의 난이도가 역대급으로 높아진 지금의 상황. 보다 빠르게 코로나가 종식되고 경기도 살아나서 취업이 조금이라도 더 쉬워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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