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재원 마담의 쉴 '틈'없는 해외 독박 육아 시작.
2022. 1. 27.
생각지도 못한 나라, 태국 방콕에 건너온지 29일이 되었다.
밥을 먹고 남편이 물었다. 방콕 오니 어때?
" 좋아.. 감사하지.. "
매일매일 격무로 고생하는 남편에게 소위 팔자 좋고 '노는' 주재원 아내가 불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편 직장 여자동료는 자기 꿈은 주재원 와이프였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동남아는 주재원으로 나오면서 주변에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나오기 전까지는 그 이유를 몰랐다.
물가가 싸고, 놀거리 많고, 집안일 해주는 사람, 애기봐주는 사람, 운전해주는 사람 다 따로 있고,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넓은 수영장 딸린 대궐같은 집에 사는 경우가 많다. 사계절 휴양지 날씨다. 게다가 국제학교 학비는 여기 물가에 비하면 상상도 못하게 비싸지만 싱가폴이나 말레이시아보다 싼 편이다. 그런 환경에서 육아를 불평한다면 정말 대한민국 모든 엄마들에게 돌을 맞아야한다.
하지만 육아는 여전히 힘들다. 계속 지친다.
한국에서 지치고 피곤한 시간들을 그리워 하다니,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힘들어도 나에게는 '틈' 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틈으로 희망을 보고, 숨을 쉬며, 꿈을 꾸며 살았다.
직장에서 점점 쌓여가는 경력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의 틈이었고, 내 돈 벌어서 쓰는 경제적 자유도 나를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고 쉴 수있는 틈을 마련해 주었다. 더 나은 삶을 꿈이라도 꿀 수있게 하는 박사라는 틈이 있었고, 돌봄의 그물망도 틈을 주었다. 방학이나 쉬는 날 거의 없이 빼곡히 메워주는 어린이집이 있었고, 친정이라는 뒷배가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나누고 공감할 비슷한 워킹맘의 또래 엄마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는 틈을 주었다. 그 틈으로 나는 생각할 시간과 나를 위한 성장을 1cm라도 해낼 수있었다. 그 느슨한 틈, 그런 틈새의 시간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의미 있게 시간을 쪼개 사용하고 아이들과 양질의 시간을 갖도록 해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주재원에 나온 후 그때처럼 다양한 인생의 강렬한 감정도 슬픔도 통찰도 다가오지않는다. 그냥 아무런 굴곡 없이 생각하기도 귀찮을 때가 많았다.
난 조금 만 더 버텨서 아이가 어느정도 컸을 때에 나는 더욱더 일에 매진할 수있을거라는 꿈, 박사학위를 받고 꼭 강의를 한번 나가보겠다는 작은 소망. 아이들이 컸을때 자랑스러운 롤모델이 나일거라는 믿음, 아이들이 스스로 하나씩 할 수있는 것이 늘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내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 나에게 힘든 시간을 견뎌 낼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태국에 오니 이제 정말 내가 해야할 일이라곤 그냥 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느슨하고 여유있다고 남들이말하는 주재원 아내의 팔자 편한 삶인데, 나는 아이 둘과 함께 묶여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것, 가고 싶은 것에 맞춰 그 안에서 뱅글뱅글 도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을 잘 돌보는 일이 나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의 정체성이 없이 아이들을 위해서 24시간 매여 돌아가는 것이 행복하다면 거짓이고 위선이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내 이름으로 살아가던 자리가 있었다면 이제 내 이름은 서서히 희미해져 간다.
내 명의는 사라지고, 남편 명의에 얹어져서 살고, 나의 이름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태국에서 나의 이름은 **의 배우자, ** 엄마, 마담
매번 남편 카드를 쓸 때마다 내돈내산으로 살았던 당당한 내 소비가 조금씩 위축 되기도 했다.
늘 내돈내산으로 살았던 내 인생에서 남편이 번 돈을 매번 타 쓰는 삶은 솔직히 생소하고 불편하며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는 것 말곤 딱히 내가 이 태국에서 해야 할 일도 없고, 나를 찾는 사람도 없다.
수영장에 앉아 아이들 노는 것을 보는것, 아이들 세끼 밥차려주는 것, 간식 차려주는 것, 책을 읽어주고, 한글을 가르치고,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갈아주고 새벽까지도 아이들의 수많은 부름과 응답에 부응하는 것이 내 주 업무이다. 그 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 말처럼 정말 소중한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하고 계속 지내다보면 외부 세계의 자극이나 성인으로서 삶이 이질적으로 다가오면서 이 지긋지긋한 노동의 반복 안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불편한 주변 자극이 없으니 생각도 귀찮아진다.
낯선 이국 땅에서 초등학교 이하인 영유아인 아이들을 믿고 맡길 보육시설이나 돌봄을 잠시나마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막막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를 쉽게 사귀기엔 이미 외부세계에 나아갈 에너지를 모두 잃어버린 것 같다. 너무 귀찮고, 피곤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손짓발짓하며 설명하며 광대가 된 기분, 못 알아들으면 포기하고 돌아올 때의 그 허탈한 감정까지.. 나는 그냥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기분에 침전된다.
24시간 편의점처럼 상시대기조의 육아가 계속 쉼없이 돌아가다 보니, 비록 매반이라는 가사도우미가 있어도 가사노동에서는 해방되었지만, 나를 추스릴 시간, 자기 자신을 돌보고 돌아볼 시간이 더욱더 나질 않는다.
대부분 동남아에 오면 아줌마가 싸니까 쓰라는 말을 하지만 언어도 습관도 정립되지 않는 영유아 아이들을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는,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나몰라라 하고 마음 편히 맡길 수있는 엄마가 몇이나 되겠나 싶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어찌됐든 남편이 일을 하는 동안 낯선 곳에서 혼자 전담마크하면서 아이들의 성장을 책임져야 한다. 코로나로 모든 시설이 문을 닫아도, 나는 아이들이 이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하고, 배우고, 성장하고 돌아갈 시점에는 다시 한국에서 잘 적응하도록 만들어줘야 할 책임이 있는 양육자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도 지금 적응해야 하는데, 나의 기존의 용기, 자신감, 체력 등의 무기는 너무 부족하다.
한국 사회에서 나의 호칭은 워킹맘, 그리고 사회에서 워킹맘을 작동시키는 키워드가 일과 가정의 양립었다면 더이상 태국 방콕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나의 화두는 해외 독박 육아를 나의 자존감과 잘 양립시키는 것, 그것이 나의 새로운 키워드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육아가 무조건 불행이고 힘들고 고통이니 아이를 내팽개치라는 것도, 아이들을 방임하면서 아이들을 내니에게 전적으로 맡겨놓고 나를 찾으라는 말도 아니다.
(가사노동 편에서 깊게 다룰 예정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주재원 삶이 물질적으로, 환경적으로 풍요롭다 해도 천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곳은 태국 방콕이지만 동시에 가정이라는 공간이다.
나를 내려놓고 아이를 길러내는 일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쉬운일이 아니며 모든 엄마에게는 틈이 필요하다. 24시간 불을 환히 켜놓은 편의점도 아르바이트가 3명이 돌아가는데, 태국에서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시 대기조 독박 육아맘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성애가 있어도 독박육아는 힘들고, 해외 살이 독박육아는 정말 매운 맛이다. 그리고 해외 살이 독박 육아는 자존감을 하락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았던 엄마들의 유능함은 주재원 배우자로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기술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내가 한국에서 아무리 국별 보고서를 열심히 쓰고, 해외 논문 트렌드 분석을 했다 해도
이 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소고기 장조림, 닭곰탕도 끓여줄 줄 모르는, 가게 가서 입도 못 떼는 형편없는 전업 주부 같이 느껴진다.
내 정서와 에너지, 감정을 소비하고 소진하는 삶에서 벗어나 나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자존감을, 사랑하는 마음을 채워넣는 쉴 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돌보는 이 시간을 잘 흘려 보내고 자신의 삶에서도 성장을 계속할 수있도록 그 틈을 만들어나가는 태국 방콕 생활을 해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