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허수아비 배에서 나온 돈과 껌

by 양월송

허수아비 배에서 나온 돈과 껌



양월송


노루와 멧돼지가 우르르 튀어나올 것 같은 우리 마을은 첩첩산골이라는 말이 꼭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에 다녔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모른다. 하루하루가 모험 같던 시절이었다.

고개 하나를 넘으면 올케 언니의 친정이 있었다.

어느 날 놀러 갔다가, 올케 언니의 막내 동생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옛말에 사돈집과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 했지만,

우리 집은 친척이 많지 않아서인지

사돈댁과도 가깝게 지내며 친척처럼 정답게 어울렸다.

여자들은 서로를 언니 동생이라 부르며 친하게 지냈고

지금도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언니 동생 하며 살아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옆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때 우리는 그곳이 무덤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무섭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길가에

귀엽게 생긴 허수아비 같은 것이 하나 보였다.


아마 대보름이 지나 미신을 믿던 아주머니들이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액땜을 하며 무덤 앞에 두고 간 것이었을 것이다.

짚으로 곱게 만들어졌고, 얼굴은 동그랗고 매끈했으며

숯으로 그린 눈은 까맣게 반짝였다.

어린 눈에는 그저 인형처럼 귀여워 보였다.

그 시절, 인형을 본 적도 없던 우리는

너무 신기해서 만져 보고 또 만져 보았다.

그러다 장난 삼아 허수아비의 배를 살짝 열어 보았는데,

그 안에서 반짝이는 옛날 동전이 주르르 쏟아져 나왔다.

“돈이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무덤 근처에는 그런 허수아비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우리는 신이 나서 허수아비의 배를 열고

동전을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어머니께 자랑을 늘어놓으며 신나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은 금세 굳어졌다.

우리는 무섭게 야단을 맞았고,

지금 생각해도 그날 어머니의 화내시는 표정은 처음 보았고 너무 무서웠고 무서워 벌벌 떨렸으며 내가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그날 저녁, 밥도 먹지 못한 채 한참을 울었었다.

어머니는 그 허수아비가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나쁜 액운을 빌며

무덤 앞에 두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 하셨다.

어떤 액운이 담겼는지도 모르는 돈을

아이들이 함부로 가져오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 말이 무섭기는 했지만

그때의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돈이 귀하던 시절이었고,

머릿속에는 온통 돈 생각뿐이었다.

혹시 어른들한테 뺏길까 봐 걱정도 되었다.

우리는 그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껌을 얼마나 많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만 해도 마음이 흐뭇했었다.

하지만 껌을 사지는 못했다.

엄마에게 모두 빼앗겨 아마도 어머니는 그 돈을 멀리 버리셨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껌을 못 산 아쉬움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껌을 샀다.

껌을 씹고 다니는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껌 하나라도 사면 아까워서 바로 씹지 못하고 들고 다녔다.

하루 종일 씹다가

잠자기 전에는 기둥에 붙여 두었다가

다음 날 떼어 또 씹었다. 오빠의 하늘색 크레용을 몰래 가져와

껌과 함께 씹기도 했다. 색깔이 곱게 변하는 것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그 껌을 언제까지 씹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허수아비 뱃속의 그 돈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꺼림칙한 것이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그저 껌을 많이 살 수 있을 거라는 설렘뿐이었다.

그래서 껌을 사지 못한 일이

유난히도 서운하게 남았다.


지금도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보면

매끈하고 동그랗던 얼굴, 숯으로 그린 까만 눈동자가 떠오른다.

배에서 쏟아지던 동전 생각에

무섭기보다는 왠지 귀엽고 조금은 그리운 모습이다.

그리고 아까운 그 돈….

그때 껌을 샀더라면

친구들 앞에서 으스대며

한동안은 참 잘 지냈을 텐데.

지금 생각하니 더 아깝고 아쉽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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