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에서 갑자기 다음주부터 감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외부감사다. 내부감사에 비해 혹독한 조사가 예상된다. "난 뭐 특별히 잘못한게 없을거야!"라고 자위하지만 불안감이 엄습한다. 공공기관은 청렴도가 최우선이다. 감사원이나 주무부처에서 감사를 나온다고 하면 누구든 걱정하게 된다. 징계를 받게되면 승진과 평가에도 불이익을 받는다. 내가 잘못을 하던가 나의 상사나 부하직원이 실수를 하던지 결국 나도 엮이게 된다. 회사는 물론 집에 가서도 내가 잘못했던 업무가 생각난다. "아! 그때 그 일을 잘했어야 했는데." 라고 때늦은 후회를 해본다. 하지만 늦었다. 한번 결재받은 문서는 되돌이킬수가 없다. 결재난 문서로 나를 방어해야 한다.
회사가기 싫은 월요일 아침! 회사에 도착하니 감사관들이 회사로 쳐들어 온다. 회사 회의실을 1~2개에 자리를 잡고 최근 3년치 계약현황, 결산자료 등을 요구한다. 조금만 늦게 내도 닥달하기 시작한다. 투망으로 바닥부터 긁어 물고기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일반적인 자료 외에 별도로 요구하는 자료가 있다. 외부에서 감사원에 투서를 넣었다고 한다. 특별감사 대상이다. 전담 감사관이 감사를 진행한다. 하필 내가 그 업무의 담당자다. 하루 종일 감사관이 부른다. 돌아버릴 것 같다. 열심히 일만 했는데 보상이 징계라니..
감사는 기계가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하는 것이다. 다만 서로의 목표가 다르다. 감사관이나 조사관 입장에서는 뭐라도 하나 건져가야 한다. 그게 그 사람의 일이고 성과다. 반면 피감사자인 직원은 방어를 잘 해야 한다. 감사는 잘 대응만 하면 있던 죄도 없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감사를 받는 사람들은 죄인처럼 행동한다. 감사관이 다그치면 마치 없던 죄도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든다. 이건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감사나 수사기법에 대한 논문을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정말 쉽게 대응할 수 있다. 나는 관련 논문과 저서를 수없이 읽었다. 만약에 내가 모르는 죄를 저지를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다. 위축되고 불안한 자세로 감사에 임하지 말아야 한다. 감사관이나 수사관은 그런 상대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든다. 다그치고 달래면서 상대방의 말실수에서 뭔가를 끄집어 내야 한다. 그게 그들의 감사기술이다. 사실 이런것은 고도의 심리학적 대화기법이다. 알고 보면 간단하지만 모르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경영단에서 팀장을 역할을 상당히 오랜기간 해왔다. 회사경영에 불만을 갖거나 하는 사람들이 감사원이나 권익위원회에 투서를 넣어 원치않는 조사를 많이 받았다. 특히 국조위, 경찰 및 검찰 조사는 감사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오랜기간 감사를 받은 경험이 있다. 거기에다 감사통보가 오면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려고 노력한다. 준비한 만큼 대응이 쉬워진다. 이건 모든 조사에서 공통이다. 자 그럼 우리가 감사나 수사에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할 지 알아보자.
일단 감사가 확정되면 감사관들은 사전에 자료 요구를 한다. 이때부터가 중요하다. 감사관이 무엇을 감사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계다. 자료를 준비하면서 대응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사전요구자료는 특별감사일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계약현황, 예결산자료 등 현황자료라면 기관 전체에 대한 정보취득이 목적이다. 하지만 특정 사업에 대한 자료요구라면 누군가의 제보나 민원에 의한 감사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사전 준비자료 목록을 보면서 전체적인 감사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요구자료에만 집중하지 말고 여기에서 어디까지 확산될지를 예상해야 된다. 관련 문서를 사전에 조회하고 시계열별로 목록화 해서 줄거리를 머리속에 꿰고 있어야 한다.
일단 기본적으로 감사기간에는 정장차림의 복장이 좋다. 깔끔한 복장은 "나는 정중하게 감사에 임하겠다."는 의사표현이다. 그리고 수첩과 볼펜을 지참한다. 감사관이 이야기하는 것을 빠짐없이 적는다. 사실 녹취를 하면 가장 좋다. 하지만 녹취할 때에는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녹취하겠다는 말은 상대방이 적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필기하는 것이 좋다.
감사관이 호출한다. 밀당의 시간이다. 처음 들어갈때는 약간의 미소를 띄는 것이 좋다. 대신 웃음이 헤프면 안된다. 공격 당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나에 대해 소개한다."안녕하세요 수고많으십니다. 저는 OOO에 근무하고 있는 OOO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정도로 하면 좋다.
처음 스타트는 항상 중요하다. 감사관이 질문을 시작한다. 이때부터가 중요하다. 어떠한 질문이든 최대한 간단하게 팩트중심으로 답변한다. 구구절절한 설명은 절대 하지 않는다. 말이 많아지면 꼬투리를 잡히게 된다. 가능하면 "예!","아닙니다.","잘 모르겠습니다.","기억나지 않습니다."으로 답변한다. 간혹 감사관의 다그침에 당황하게 되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내뱉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이 계약건은 계약업체에 특혜를 준 것 아닙니까?라고 물어봤다고 가정하자. 이럴때는 그냥 "아닙니다."라고 답변하면 되는데, "사실 그때 상대방이 요청해서 그렇게 해준거지 절대 특혜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답변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감사관은 상대방이 요청한 내용을 말하라고 추궁할 것이다. 이런 답변속에서 궁금한 사항을 꼬리에 꼬리를 물면 된다. 아주 손쉽게 감사거리를 주는 셈이다. 절대 말을 길게 하면 안된다.
질문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답변하는 것이 좋다. 처음 감사를 받는 사람은 긴장한 나머지 답변하기 급급할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답변 시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감사관은 절대 내가 무엇을 감사하는지 먼저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나의 의도를 꿰뚫고 있다면 내 질문이 안 먹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를 많이 받게 되면 간단한 질문에서도 감사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사전 요구자료에서 이미 다 파악해야 된다. 하지만 요청자료가 너무 일반적이면 파악하기 어렵다. 감사 과정에서 빠르게 캐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걸 토대로 나의 입장을 정리한다. 그리고 답변 방향도 함께 정한다.
우린 보통 감사관이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착각한다. 왜냐하면 감사관은 감사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감사관은 모든 업무나 행정에 전문가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잘못한 점이 있으면 당연히 그걸 감사관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천만에 말씀이다. 감사관은 솔직히 아무것도 모른다. 감사관은 기관의 자료를 보고 열심히 공부한다. 그래서 자료나 조사과정에서 문제점은 우연히 발굴한다. 사실 문서만 한번 쓰윽 보고 문제점을 발굴하지 못한다. 마치 수사관이나 탐정처럼 단서를 수집해야 한다. 단서는 주로 대면감사중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실 문서는 여러명이 보기 때문에 빈틈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고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감사 지적사항은 대면감사에서 나온다고 보면 된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말은 간단히 해야되고 어쩔수 없이 길게 말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아주 기본적인 것만 말해보자. 그러면서 감사관이 하나하나 물어보게 만든다. 설명해야 될 것이 100이라고 하면 10만 말하면 된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요구할 때만 정보를 제공한다. 처음부터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마라. 상대방이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를 절대하면 안된다. 감사는 나의 업무성과를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다. 나의 업무성과를 최대한 줄여서 이야기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질문도 없고 질책받을 일도 없다.
감사장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큰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처럼 보인다. 일단 조사 단계에서는 좀 더 당당할 필요가 있다. 마치 죄를 많이 저지른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안된다. 머리를 똑바로 쳐다보고 감사에 응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너무 센 자세도 곤란하다. 소위 밀당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 "원칙은 단호하게 태도는 공손하게" 약간 이율 배반적인 이 말은 감사때는 정말 중요한 원칙이다. 단호하고 강하게 자기를 방어하려는 사람은 더 세게 압박받을 수 있다. 반면 너무 공손하고 약해 보이는 사람은 늑대의 먹이가 된다. 예를 들면 "이거 고의로 규정을 위반하려 한것 아닙니까?"라고 감사관이 다그친다. 이때는 한번쯤 강한 모습을 보여야 된다."증거 있습니까? 관련자들과 함께 대질심문을 받겠습니다. 저는 규정에 따라 열심히 했습니다."와 같이 말이다. 상대방의 터무니 없는 질책에는 강한 압박전술을 가한다. 인간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약자에게는 강하게 강한자에게는 약하게 대응하게 된다. 밀당을 잘하는 직원은 사회생활도 잘한다.
이것은 감사때도 중요하지만 경찰 조사시에 더 중요하다. 진술번복은 내가 앞에 한 말을 수정하는 것이다. 그럼 앞에 말한 것은 거짓이든 잘못된 것이다. 진술이 번복되는 순간 나는 거짓말장이가 된다. 나의 진술 신빙성은 바닥으로 추락한다. 이때부터는 내가 무슨말을 해도 먹히지가 않는다. 차라리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해야 한다. 불확실하거나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고 바꾸는 것은 최악의 수를 둔것이다. 결과적으로 감사관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방향을 튼다. 나는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휩쓸려 다닐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