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생 갓생

마흔 넘어 다시 쓰는 전 직장인, 현백수의 일기

by 태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흔히 ’갑‘이라고 칭하는 회사에서 첫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회사에서 나는 한 없이도 작은 사람이었고 갑을병정의 ’정‘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그렇게 한동안 갑의 위치인 회사에게 생활하다가 처음으로 ’을‘의 위치에서 일하게 된 회사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말 그대로 나는 ’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정한 정‘의 세계에 첫발을 디딘 것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고객의 요구사항에 맞춰 밤낮없이 일하고 주말까지 써가면서 생활하던 나는 이렇게는 못살겠다 외치면서 다시 한번 갑의 위치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참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일이 너무나도 단조롭고 재미가 없는 거다.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하던 일상에서 한두 개 정도의 프로젝트로 일감이 줄어들고 일의 난이도가 줄어든 것이다. 나는 아직 젊은데 더 배워야 하는데라는 조급한 마음에 아직 더 일 할 수 있을 때 힘든 곳으로 가자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편한 회사를 때려치우고 악의 소굴에 스스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다시 한번 이직한 그곳은 말 그대로 악의 소굴이었다.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서로의 영혼을 죽이고 있었고, 일이 잘되는 것보다는 일단 수주해서 돈을 받는 것에만 집중하였다. 그 뒤에 일을 잘 되건 말건 알바 아니라는 마인드가 만연했고 고객들은 수주 후에 당연히 불만이 폭주하였다.


나는 수많은 컴플레인과 매일 터지는 문제들로 병들고 있었고 그런 상황을 참을 수 없었으나 나 또한 생계를 위해 비슷한 사람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객한테 무자비한 발언을 듣고 밤새 와인을 들이붓고 만취하여 새벽 4시 반에 조롱인지 정말 미안한 건지 나조차도 알기 힘든 사죄의 메일을 고객한테 보내버리고 만 것이다.


아무튼 나는 다 같은 인간인데 왜 이렇게까지 무시당하면서 영혼이 죽어나가는 경험을 해야 하는지 자괴감에 빠져있는 한편, 정말 갑질은 내가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무슨 열반에라도 든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이 순간 든 것이다. 수주하면 땡! 돈 받으면 땡! 그 뒤는 알아서 하세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답답하고 화가 났을 수많은 고객들을 생각하니 이해가 조금은 되었지만 역시나 나라면 그렇게까지 무자비한 말은 하지 않았을 거야!라는 생각에 다시 분노가 차올랐다.


이렇게 분노에 휩싸여 내 소중한 인생을 망칠 순 없다!

그럼 이 경험을 조금이라도 발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1. 갑질을 당하면 곱절로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갑질을 안겨주는 사람

2. 갑질을 당하면 반면교사로 삼아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


나는 2번은 택하는 사람이 되자! 그러면 나의 경험도 결코 헛된 것은 아니다. 이런 훌륭한 생각이 미치자 왠지 내가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악의 소굴에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후 나는 사람에게 쌍욕을 하는 꿈을 빈번하게 꾸고 심각한 수면장애에 시달리게 되었다.


갓생을 개뿔.

그냥 늙고 지친 나약한 회사원이었던 거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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