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던 아침이었다.
우산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운동장 흙을 두드리며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아이들 발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조심스러웠는데
그날, 초등1학년 진이는 교문을 거의 다 지나쳤다가 운동장 한쪽 벤치아래에서 멈춰 섰다.
아무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그 낮은 시선의 세계에서 콩벌레가족들이 비를 피해 둥글게 몸을 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우산을 접고,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왜 그 봉지가 거기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 아이의 마음속에서
'학교에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
'여기 그대로 두면 이 작은 것들이 다 젖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자라났다는 사실이었다.
아이의 손은 작고 느렸고, 콩벌레들은 놀라서 더 단단히 몸을 말았고, 비는 멈출 생각 없이 아이의 머리카락과 장화에 고르게 내렸지만 아이는 서두르지 않았다.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봉지에 담으며, 마치 가족사진을 정리하듯 숫자를 세지도 않은 채 모두 함께여야 한다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그렇게 봉지를 꼭 쥐고 아이는 운동장 가장자리 풀숲으로 갔다. 흙이 덜 질고, 나뭇잎이 우산처럼. 덮여 있는 곳을 한참 고른 뒤에야 봉지를 열었고, 콩벌레 가족들을 흙 위에 올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마치 아주 중요한 약속을 지킨 사람처럼.......
그제야 아이는 수업시간이 늦은 것을 알았고,
교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의 시선을 한 몸으로 받았다. 선생님은 왜 늦었냐고 물었고,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벤치 밑에 있던 콩벌레 가족 이야기를 했다.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았다고........
그날 출석부에는 "지각"이라는 두 글자가 남았을지 모르지만, 아이의 하루에는 비 오는 운동장과 작은 생명들을 품에 안았던 긴 시간이 남았고, 어쩌면 우리도 모두 그런 날들을 하나씩 가지고 어른이 되는지 모르겠다.
조금은 늦더라도, 조금은 젖더라도, 지나치지 않고 멈춰 섰던 기억 하나를 가슴에 남긴 채로......
어떤 하루는 제 시간보다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것이 더 뿌듯하다는 것을 그 아이는 그날 아침에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