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책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텔레비전 앞에 앉았고, 화면 속에서는 뽀로로가 세상에서 제일 큰 대모험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그 모험이 끝날 때까지만 보고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이면 될 줄 알았고, 그 잠깐은 늘 생각보다 길었다. 배 속에서는 조용히 신호가 왔지만, 아이는 참고 또 참았다. 뽀로로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동안 아이의 다리도 조금씩 꼬였고, 결국 한 번쯤은 괜찮을 거라는 마음으로 방귀를 크게 뀌는 순간, 아이는 알았다......
이건 방귀가 아니었다는 걸!
이미 늦었다는 걸!
아이의 눈이 커졌고, 심장은 괜히 더 빨리 뛰었으며, 머릿속에는 엄마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평소의 엄마가 아니라 화가 나면 무서운 대마왕으로 변하는 그 얼굴 말이다.....
문득 세탁기가 떠올랐다. 더러운 옷이 들어가도 돌아 돌아 나올 때에는 언제나 깨끗해지던 그 세탁통..... 세탁기.....
그때의 아이는 세탁기는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곳처럼 보였다.
아이는 조심조심 옷을 벗어 똥이 묻은 부분을 안쪽으로 접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세탁기 속으로 밀어 넣었다. 뚜껑을 닫는 순간 까지도 이 선택이 맞는지 확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저녁이 되어 엄마가 돌아왔고, 집안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소처럼 흘러갔다.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숨죽여 숙제를 하며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통 안에서 물이차고 빙글빙글 옷들이 뒤섞이는 동안 아이의 마음도 같이 돌고 있었다. 깨끗해질까? 들킬까? 아니면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다 된 빨래를 정리하던 아빠가 옷을 하나 들었다가 멈췄고,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작은 외침은 금세 집안 가득한 소리가 되었다. 집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세탁기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아무리 씻어내도 끝없이 튀어나오는 그 흔적들 앞에서 어른들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결국 세탁기는 바뀌었고,
아이는 그날 아주 큰 비밀 하나를 가슴에 안게 되었다.
모험은 텔레비전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세탁기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이는 그날 뽀로로보다 훨씬 더 큰 대모험을 혼자서 처러낸 셈이었다.
아마도 어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세탁기 안에 흔적이 무엇이었는지, 그날 아이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도
그래도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새 세탁기가 들어오던 날, 누군가는 말없이 아이의 등을 한번 쓸어 주었을 뿐이다.
아이의 첫 비밀은 세탁기만 바뀌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