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의 우아함은 호수의 고요함 덕분이지, 백조의 성정 때문만은 아니다.
명절이나 가족모임에서 마주하는 친척들의 '평온한 삶'을 볼 때면 내 삶은 유독 거칠고 누추한 덧니처럼 느껴지곤 했다.
누구는 평생 큰 풍파 없이 월급쟁이로 살며, 아이들 앞에서 눈물 한 번 보인적 없는 '이성적인 사람'으로 칭송받는다.
그 곁에서 나는 늘 눈물 마를 날 없는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남편 사업의 부도와 집경매, 가슴에 묻은 둘째 아이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늦둥이와 남편의 뇌경색까지.......
내 인생은 마치 쉼 없이 몰아치는 파도 같았다.
누군가는 쉽게 말한다.
왜 그렇게 감정적이냐고, 좀 더 의연 해 질 수 없느냐고, 하지만 나는 이제 이성적으로 묻고 싶다. 거대한 해일이 덮치는 바다 한가운데 서서 젖지 않을 방법이 어디 있느냐고, 눈물은 어쩌면 살아야 하는 생존의 기록이다.
이성적으로 따져보자면, 내 눈물은 유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뇌를 보호하기 위한 생리적인 방어기제였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고통 속에서 눈물마저 흘리지 않았다면, 내 마음은 진작에 파산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평온함이 '주어진 행운'에 의한 것이라면, 나의 눈물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은 가장 지독한 생존 가다.
당연함이라는 이름의 잔인한 무관심.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일궈나가는 지금의 일상은 기적에 가깝다.
쓰러졌던 남편이 다시 일어서 출근을 하고, 늦둥이가 대학을 꿈꾸는 평범함을 너무나 쉽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당연함 뒤에는 누군가의 닳아버린 무릎과 잠을 설치는 새벽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종종 잊는다.
가족의 무심함에 내가 초라해지는 순간, 나는 감정을 거두고 이성적인 경영자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로 했다.
"내가 이 집안의 방파제 구나"
방파제가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기에 저 안 쪽의 배들이 고요하게 떠 있을 수 있는 것이구나!
이제 나를 위한 이성을 발휘할 시간! 인생의 후반전에서 내가 가져야 할 이성은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날카로움이 아니다. 내 에너지가 어디로 새어 나가는지 살피는 '관리의 이성'이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상대를 질타하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나쁜 감정소비다.
이제 나는 그 감정을 아껴 나를 대접하는데 쓰기로 했다.
가족의 인정보다 먼저 건네는 스스로에 대한 격려!!
나는 여전히 눈물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눈물은 패배의 눈물이 아니라 이 모진 세월을 다 겪고도 여전히 사랑하고 책임지려는 내 마음이 살아 있다는 뜨거운 증거라는 것을!
비교할 수 없는 두 삶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풍파를 뚫고 온 나의 거친 손을 선택하겠다.
평온한 호수보다 거친 바다를 통과해 온 항해사의 일지가 훨씬 더 깊고 풍요로운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