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버린 그리움

by 김미숙

그 시절, 친구의 좁다란 자취방은 우리 삼총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우주였다.

낡은 장판 위에 배를 깔고 누워 밤새 책장을 넘기던 소리, 희미한 형광등 아래서 속삭이던 비밀들,

우리는 그 작은 방 안에서 각자의 미래를 설계하고, 또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겹겹이 쌓일 세월을 약속하곤 했다.

창밖으로 달빛이 스며들 때면, 화제는 늘 "동네 오빠" 이야기로 흘러갔다. 누군가의 첫사랑이었고, 우리 모두의 동경이었던 그 이름, 그 오빠의 웃음 한 번에 세 소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낄낄 거렸고,

"우리가 어른이 되면 말이야.........."로 시작하는 무지갯빛 미래를 그리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이 온기와 이 웃음소리가 영원히 우리를 지켜 줄 것이라고 손가락을 걸며 다짐했던 "영원"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투명하고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파도는 생각보다 거셌다.

각자의 삶이라는 망망대해로 떠 밀려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손을 놓쳤다.

처음엔 연락이 뜸해졌고,

그다음엔 안부가 궁금해졌으며,

이제는 생사조차 알길 없는 타인이 되었다.

사진첩의 빛바랜 사진은 박제되었고, 가끔 길을 걷다 닮은 뒷모습만 보아도 심장은 덜컥 내려앉지만, 정작 번호를 알아낼 용기는 나지 않는다.

영원을 맹세했던 입술은 이제 서로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는 침묵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가끔 문득 궁금해진다.

밤새 책을 읽던 그 친구는 지금 어떤 책장을 넘기고 있을지 , 동네 오빠를 유독 좋아했던 그 친구는 그때 그 마음처럼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있을지

비록, 지금은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사이가 되었지만, 내 생에 가장 푸르렀던 시절을 함께 지켜준 그들이 고맙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의 여고 시절은 외롭지 않았고, 그 자취방의 밤은 여전히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따쓰한 등불로 켜져 있다.

어딘가에서 각자의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 나의 삼총사들에게 닿지 않을 나직한 안부를 보낸다.

내 마음 구석구석 먼지처럼 내려앉은 이 흩어져버린 그리움을 가만히 쓸어 모아 추억이라는 이름의 편지 봉투에 담아 두어 본다.

" 그때, 우리 참 예뻤지! 그거면 됐다"


지나온 시간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의 결이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