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Chat GPT라는 대화형 AI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AI는 내가 하는 질문에 굉장히 체계적으로 대답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공부 꽤나 한다는 친구에게 이 프로그램에 대해 물어보자 고민을 좀 하더니 ‘네가 물어보는 어떤 것도 대답해 주는 똑똑한 심심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알려주는 Ai라니. 여태 수많은 특이점들이 있었지만 인공지능이야 말로 진정한 특이점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은 이 AI를 학술적인 용도로 많이들 사용한다고 한다. 원래는 수많은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를 다시금 취합한 이후 재생산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AI에게 질문함으로써 해결된다. 심지어 AI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대답을 요청할 수 있다.
우선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내가 사람인지 확인한다. 여느 사이트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매크로 방지 프로그램이지만 통과해야지 질문이 허락된다. 별 것 아니지만 입구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이 프로그램이 어디까지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딱히 논문을 쓸 일이 없는 나였기에 AI를 당황시키며 나의 속을 시원하게 해 줄 질문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나는 ‘How to write song like John Lennon’이라고 타이핑한 후 엔터를 눌렀다.
그러자 영어로 답변을 했기에 한눈에 내용이 다 읽히진 않았지만 AI는 나에게 장문의 답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존 레논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고 그의 음악에 누구보다 심취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이렇게 많은 양의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정말로 존 레논만의 영역에 들어갈 방법이란 게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귀도 마음도 없는 AI가 가르쳐 준다면, 과연 내가 그것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긴장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AI가 내놓은 답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이 프로그램은 대게 서론-본론-결론 순서의 정돈된 형식으로 답변하는데, 첫 서론은 상투적인 이야기였다. 존 레논이 어떤 사람인 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이었는데, 썩 마음에 드는 답변은 아니지만 썩 괜찮은 답변이었다. 무엇보다 이 정도 서론은 내가 이 AI보다 훨씬 멋지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였다.
그렇게 5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본론을 읽어 내려갔다. 첫 네 문단은 상투적인 이야기였다. 결국 실험적이면서도 좋은 멜로디와 가사를 써라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 그래 당연히 있을 리가 없는 것이라고 안심하긴 했지만 내심 아쉽긴 했다. 그렇게 본론의 마지막 문단을 읽었을 때 나는 허를 찔렸다.
Be honest. 존 레논의 음악에 담긴 진심은 그의 정수이자 존경하게 된 지점이다. 예술가는 과연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하는 가. 존 레논은 이런 부분에 있어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용기 내어 나의 진심을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가 비웃고 비난하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이 없다. 직업 특성상 예술가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진심을 쉽게 평가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를 불문하고 솔직해지는 것이란 굉장한 미덕이다.
귀도 마음도 없는 AI가 솔직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니. 솔직함의 미덕에 대해서 과연 AI는 학습한 것인가. 그렇다면 솔직함은 학습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럼 그 반대인 거짓은. AI는 거짓에 대해서도 학습할 수 있는 것인가? 아마도 ‘존 레논 음악의 정수는 솔직함이야’라고 학습한 것이겠지. 기본적으로 이 녀석의 기본 소양은 진실이다. 누군가 질문했을 때 잘못된 정보를 줘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진심에 대한 미덕은 진실이라는 뜻이겠지.
인공지능이 얼마나 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발전한다. 지금도 그러는 중이고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존 레논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상투적인 대답만 해줬으면 한다. ‘죄송하지만 존 레논처럼 진심을 말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르겠어요 진짜입니다’라고 말해줬으면 한다. 진심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방법론은 없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