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섬머 소닉의 헤드 라이너는 블랙 메시아라고 불리는 힙합 아티스트이다. 흑인 사회의 전설적인 존재이자 대통령이 나서서 샤라웃을 해준 전설적인 아티스트가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인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요즈음 락 페스티벌 자체가 메인 무대에서 아티스트의 장르를 크게 가리지 않으니까.
켄드릭 라마의 서브 라이너는 락앤롤의 상징이자 브릿팝의 전설 리암 갤러거의 이름이 올랐다. 켄드릭 라마의 이름을 적어둔 폰트의 크기가 약 1.3배 정도 크다. 리암 갤러거는 오아시스 해체 이후 하향세를 탔다. 당장 영혼의 단짝이 사라졌을뿐더러 오아시스 후기부터 보였던 성대 이슈와 여러 가지 개인사로 인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여 리암 갤러거가 재기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리암은 멈추지 않으며 팬들의 기대감을 키우기 시작하였고 제일 최근 앨범은 UK차트 1위에 당당히 입성하였다.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이름 빨로 이룬 것이 아닌 진짜 아티스트로서의 리암 갤러거의 부활을 알린 것이다.
이러한 감동적인 서사와 오아시스라는 상품성 그리고 네임 벨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암 갤러거는 서브 라이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락스타라 하더라도 지금의 흐름을 거역할 순 없는 것이다. 블러처럼 “오아시스 재결합”이라는 카드가 있지만, 그것은 롯데 자이언츠가 철완의 에이스를 다시 영입해 잃어버린 30년 전의 영광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이야기이다.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나간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처사일 지도 모르겠다. ‘리암 갤러거는 영국의 국민 가수이며 오아시스라는 알을 깨고 당당히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자리매김했다’, ‘그가 설립한 패션 브랜드는 짧은 순간이지만 랄프 로렌을 뛰어넘은 적도 있으며 그의 패션은 요즘 다시 각광받고 있다’, ‘그의 패션을 찬양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워도 수만 명이 된다’ 라며 그가 얼마나 대단한 지에 대해 핏대 세워 떠들어 봐야 락은 이미 지나간 문화이다. 웨비를 처음 하던 당시 ‘우리는 락앤롤을 지향한다’라고 말하고 다닌 적이 있는데, 락보다는 힙합이 돈이 되니까 에이셉 라키나 트레비스 스캇의 패션을 더욱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조언을 진지하게 해 준 사람도 있었다. 물론 우리는 그 말을 듣진 않았지만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스스로를 위로할 겸 지나간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에 정당성과 이유를 붙이자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문화적 생명력을 유지시켜 주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잊히지 않게끔, 조그맣지만 불씨가 꺼지지 않게끔 문화의 생명력을 유지시켜 준다면 언젠가 그 흐름은 다시 올 것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일은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문화가 그저 유행이 지난 오래된 문화였을 뿐이다.
아직 그 황금기를 재현하기에는 한참 멀었다곤 생각하지만, 다시금 락앤롤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꽤나 최근에 현대 카드 라이브러리에서 오아시스의 코너가 크게 생긴 적이 있었고(결국 브루노 마스를 슈퍼 콘서트에 불렀다), 루이비통의 런웨이에서는 산울림의 음악을 틀어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러한 흐름에 발톱만 한 영향력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괜히 뿌듯한 기분이다. 스스로를 비유로서 과대 평가 하자면, 브루스 웨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를 보좌한 알프레드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