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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시선 Oct 26. 2022

나는 여전히..."스물 아홉, 첫 번째 삶을 돌아보며"

두 번째 받은 삶…나에게는 작은 책임이 생겼다.

나는 여전히..."스물 아홉, 첫 번째 삶을 돌아보며"

가끔씩, 아주 가끔씩 꿈을 꾼다. 아직도 그 공간은 나에게 가슴 아픈 공간으로 남아있다. 활발하고 

그저 놀기를 좋아했던 나는 어둡다 못해 탁한 새벽을 붉은 아픔으로 가득 적셨다. 건강하기만 했던 

일주일 전, 한 달 전…그리고 지난 시간을 애타게 찾는 7살의 아이가 되었다. 

고작 지난 6년 간의 삶만이 온전히 나의 삶이 되길 바랐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날을 기억하고 있다. 사람의 기억에는  좋은 것 뿐만아니라 아픔까지도 

함께 담긴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섭리다. 주변의 공기는 차갑고 소독약 냄새가 진하다. 

흰색과 초록색 가끔은 붉은색이 흐르는 배경이 매일같이 나의 뒤를 감쌌다. 부드럽게 흘러만갔던 

6년 간의 시간이 더이상 흐르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뾰족한 모서리에 박혀 움직임을 멈추고, 

아픔은 지속 되기만 했다. 어린 나의 기억 속에서 집이라는 존재는 차차 잊혀져갔다.


이제는 익숙해진 공간에는 나의 또래, 형, 누나 그리고 나보다 어린 동생들도 간혹 보였다. 

같이 생활하다 보니 어느덧 같이 응원해주고 걱정해주는 관계가 되었다. 각자의 상황을 잘 알기에 

우리들은 하나의 마음으로 서로의 하루 하루를 응원하고 함께 아파했다. 


그리고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을 함께 꾸게 되었다. 날개없는 어린 천사…그 아이들을 말하는 

단어가 아닐까 싶었다. 삶이 무엇인지보다 죽음이 무엇인지 먼저 깨달았던 나는, 함께 이야기 나눴던 

아이들이 가끔씩 아무말 없이 하늘나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침내 꿈을 내려놓기로 하고 

그렇게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이 글을 쓰는 29살 현재, 그토록 원했던 삶이 나에게 다가왔지만 한 번씩 찾아오는 기억에 마음이

내려앉곤 한다. 그때의 장면 하나 하나는 기억을 못하지만 나의 감정과 느낌은 아직 진하게 남아있다.


가장 고통스러운 한 순간에서 벗어나는 것이 일생의 소원 이었을 때를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룬 지금 나는…이미 한번 죽었던 두 번째 삶을 맞이하였다. 두 번째 삶……. 


행복…….요즘도 한번씩 생각해보는 단어이다. 행복하고 싶다는 말은 나에게는 언젠가 머리 속에 

담기에도 사치로 여겨질 때가 있었다. 행복이라는 감정보다 그냥 아무런 감정이 없는… 아픔도, 

슬픔도 없는 그냥 온전한 무의 상태이기를 바랐다. 


3년의 투병생활을 끝낸 후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지, 얼마나 가슴벅찬 

단어인지 마음 깊이 깨달았다. 그때 나에게 행복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그저 나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시원한 바람을 허락할 수 있다는 것과 따뜻한 햇볕에서 잠시 졸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 이것만으로도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창으로 사계절의 흐름을 대부분 눈으로만 담았던 지난날은 울림이 되어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언제부터 작은 꿈을 꾸게 되었다. 나의 두 번째 삶이라는 것은 사실 없는 것과 다름 없기에…

누군가에게 위로와 도움의 대상으로 세상에 남아있고 싶다는 작은 소원이 생겼다. 첫번째 삶은 끝이났고 

두번째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이것은 그저 덤으로 받은 삶이기 때문에 오로지 나만을 위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멈추었던 나의 시간이 아물고 천천히 흘러 대학교에 입학한 뒤 소아암협회에서 완치자그룹에서 

활동을 하게되었다. 비슷한 아픔을 겪은 친구들과 인식개선 캠페인,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나지만,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소중한 모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지난 8살 어린아이의 설레던 꿈이기도 했다. 


2년 전에는 20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소아암 어린이를 위한 헌혈증 기부, 후원금 전달과 함께 

투병생활로 학업의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해 정기후원을 시작했다. 

두 번째 받은 삶…나에게는 작은 책임이 생겼다.




최근 나에게 다가온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평범한 듯 살아가는 것이 한 때 꿈이었던 나에 대한 이야기를…누군가에게 작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졌다. 나의 삶을 담은 이야기라도 처음에는 어떻게 써야 할 지 막막했다. 더군다나 글을 마음잡고 쓸 수 있는 

상황도 쉽게 주어지지 않아 나의 목표는 단순히 몇 페이지의 흔적에 머물렀다.

그러나 20대가 가기전 글을 쓰고 싶다는 간절함이 남아있었기에 

새벽의 시간, 조용한 가운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글을 조금씩 쓰기로 마음먹었다.


글에는 ‘쓰는 사람의 향기’ 가 있다고 한다. 나의 글에는 어떤 향기가 들어가 있는 지 궁금해지는 하루다. 

나의 글의 향기는 은은하면서도 잔잔한 바다의 향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의 그림자 곁을 그저 묵묵하게 감싸 안아주는 밤의 시원한 향이기도 하면 좋겠다. 


나의 지난 시간처럼 사계절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의 글이 작은 계절이 되고,

글을 쓰는 시선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행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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