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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Oct 30. 2024

26살 vs 46살

배부르게 밥을 잘 먹고서는 갑자기 수성못을 한 바퀴 돌겠다는 아들과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벤치에 앉았다. 자잘하게 흩어지는 밤 윤슬을 멍때리며 바라보다 건너편 불빛이 반짝이는 카페를 쳐다 본다. 26살에 거기에 있던 나와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날도 우리는 여전히 한껏 멋을 내고 한껏 즐겁고 신이 났다.


저쪽 분수 너머에 반짝이는 불빛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호텔이라고 쓰여 있다. 스마트폰을 꺼내 상호를 확대해보고 기억해 놓는다. 26살의 그 친구들과 이 반짝이는 불빛을 다시 즐기고 싶어진다. 맛있는 것을 먹고 밤의 물길을 산책도 하고 그러다가도 또 아쉬우면 저 호텔서 밤새 수다를 떨 상상을 하며 상호를 저장한다.


10년 만이다. 지난 주에 10년 만에 20살의 친구들을 만났다.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각자의 삶들을 살아내느라 연락도 잘 없던 우리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엊그제처럼 약속을 잡고 단 며칠만에 26년의 시간을 거슬러서 20살로 돌아갔다. 26년의 시간을 단 며칠만에 가져다 주는 이 오래된 친구는 시간을 거스르는 신기한 마법을 지녔다. 정방향으로 여기까지 오는 데는 26년이 걸렸는데, 반대방향으로 다시 기억을 되돌리는 데는 이틀이 걸리지 않다니... 기분이 이상해서 친구들에게 톡을 해본다.

20살의 친구들이 과거로부터 갑자기 날아와 현재의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또, 미래를 함께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한다. 




몇 년만의 만남에 한껏 들뜬 쭌은 26살로 돌아가 현재 46살의 우리들의 모습을 어느 점쟁이가 우리에게 예견한 미래라고 설정을 하고 만나자며 시나리오를 썼다. 이러한 상상을 하는 너는 진짜로 설레는 마음이구생각하면서 나도 잠시 잊었던 26살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 본다.

26살의 내가 바란 내 미래는 아무리 복기해봐도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현재 삼남매의 엄마이자  518번 버스를 타고 수학 학원으로 출근을 하고 있는 강사로써의 46살의 내 모습... 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래서 그런 설정에 동요되지가 않는다. 26살의 나는 그저 그때를 살았고 46살의 나는 그저 지금의 이때를 살아서 이어져 갈 뿐.

굳이 연결고리라고 하면... 그래, 너희들이 있고, 또 우리들의 추억이 있구나.



 26살의 나는 46살의 내가 되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 속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인격적으로 정서적으로 완성된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무모한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46살이 되어보니 여전히 나는 고민하고 번뇌하며 5년 후 내 미래의 삶을 걱정하는 26살 때의 나와 전혀 다르지가 않다. 여전히 나는 불안정하고 아직도 나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고 아직도 내 삶은 완성형이 아닌 것같은 느낌은 26살이나 46살이나 꼭 같다.


다만 조금 달라진 것이라면, 26살 때처럼 무모한 욕심이 사라졌달까. 늘어난 주름살의 에 비례하여, 완벽하게 예쁜 외모 추구하려는 욕심은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었 또, 아름다움으로 세상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는 무모한 욕심 대신에 내 가족, 내 주변의 사람에게만이라도 의미가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거울로 내 얼굴을 들여다 보기보다는 내 눈으로 내 소중한 사람의 얼굴들 한 번 더 들여다 보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살아보니 진짜 현실에는 26살 때 내 머리 속에 저장되어진 그런 완벽하고 멋진 삶은 거의 없었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시시때때로 여행을 가고 좋은 물건을 소유하는 sns 속에 펼쳐지는 수많은 행복들도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완벽하고 멋지지 않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아버렸다. 마치 그걸 알아내기 위해 그동안 20여 년 간의 시간을 댓가로 지불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이런 46살의 내가 20살로의 여행이 기대되고 설레이는 것은 그저 그때의 친구들과 내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20살의 나를 기억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미생의 삶을 사는 46살의 아주미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들은 나의 20살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가끔은 나도 잊어버렸던 내 20살의 모습을 복기하게 만드는 친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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