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마지막 꼼장어까지 하나같이 가위를 대자말자 하얀 심줄이 쉬지 않고 마치 서로 함께 흘러 내리기로 약속이나 한 듯이 줄줄이 삐져나온다. 통화를 끝낸 남편이 다시 집게와 가위를 빼앗아 들며
"너무 작게 잘랐다. 다 탄다. 먹어라." 하며 잘 익은 꼼장어 조각을 내 앞으로 밀어놓는다.
끊임없이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꼼장어의 하얀심줄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꼼장어를 굽는데 진심인 당신의얼굴을 들어다본다. 그 쪼그마한 눈에서 꼼장어의 새하얀 심줄처럼 오만가지의 감정이자꾸 꼬물꼬물기어나오는 것을 기어이 읽고마는 내가 징글징글하다.
"자, 한쌈 싸라."
40대 남자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불판에 굽는 메뉴를 먹을 때는 늘 한 손에 쌈을 싸놓고 바로 먹지않고 상대방도 똑같이 쌈을 가득 싸서 함께 먹을 때까지 들고 기다리는 특징이 있다며, 딸들과 한동안을 낄낄거리며 남편을 놀리던 적이 있다.그래놓고 어느순간부터나도 자연스레 배춧잎, 깻잎, 상추따위를 보면한쌈을 가득 싸서 상대방의 쌈이 완성되기를약속이나 한 듯이기다리고있다.
'얼른 안 싸고 머하냐?'하는 눈빛을보내면서.
술잔도 한손 가득한 고기쌈도 함께 먹어야 제맛인 40대다.
"아, 놔~인제 일하는 게 적응이되가 일하기가 딱 좋은데, 또 설비를 다 바꾼다카네. 아, 우짠단 말이고. 우리 부서 사람만 다 빼가고. 처음에는27명이었는데 이제는 16명뿐이 안 남았다. 내한테 다 왜이라는데? " 남편은 분노한다. 그러면서 쨘을 하자는 손짓으로 소주잔을 치켜든다.
한 잔을 짠하며 들여다 본 오늘의 당신 눈빛에는 '애'가 가득차 있다.
횟집을 찾아옆동네까지 한참을 걸어오는 동안 나는 쉴새없이 종알거렸다.
오는 길에 들른 3군데의 횟집은 오늘따라 모두 만석이어서 회 한사라에 소주 한 잔은 포기하고 꼼장어집의 야외테이블에 앉기까지 약 1.5km가량을 걸어 오면서 우리는 분명 '희'였다.
20년 전에 우리를소개시켜줘서 20년지기가 되도록 만들어준 장본인인 옥이언니를 오늘 낮에 거의 10여 년만에 만났는데,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한참 떠들어댔다.
"아, 옥언니는 진짜 여전하드라. 고은이가 저기 큰 사거리에 불빛이 번쩍이는 그 큰 건물있지? 거기 큰 치과에 간호사랜다. 지난 달에 작은 언니를 만나서는 그 쪼그맣던 게 그렇게 울더란다. 참내. "
그러다가는 결국에는 삼남매의 근황으로 자연스레 옮겨가며 쉴새없이 종알거리느라 숨이 차서 잠깐씩 마스크를 턱에 걸치기도 했다.
열정이넘치는 담임선생님을 만나 사람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당하고 있는 3번군의 학교생활에다가, 중학교에 가서 최근에 처음으로 일진이라는 존재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혼란에 빠진 2번양이 다시 평화롭던 초등학생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푸념들까지 전했다. 대학원서 접수가 마감되고 나서야 자소서를 나한테 보여주는 치밀한 1번의 행실머리를 이르기까지의 수다가 폭풍처럼 이어졌다.
귀에 피가 날만도 한데, 남편은 분명히 나와 같은 마음으로 미소를 한껏 머금으며 온전히 기쁜중이었다.
"야, 니는 살면서 서울대에 원서를 낼거라고 상상이라도 한 적이 있나? 나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당락에 상관없이 진짜 대단하지 않냐? 요즘 학교서 아무나 서울대원서를 써주냔 말이다. 내 딸이지만 나는 정말 존경해. 얼마나 열심히 했을거냐고."
남편의 얼굴은 마치 당신부모님들이중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시골 농사꾼의 막내아들이 대구의 명문 4년제 대학에 떡하니 합격을했다며 당신 자랑을 늘어놓을 때 그 표정과 똑같이 닮아 있었다.
"아이고, 아무나 안 써주지, 안 써줘. 재작년인가 언제에대구의 어느 일반 학교가 내신 5등급인 애를 서울대에 원서를 써냈대. 그래서 서울대서 빡친거야. 다음해에는 그 학교의 원서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 소문이 있었단다. 요즘은 우리때처럼 미달되는가마지막까지 눈치싸움해가미,운빨로서울대를가고 그런 일은 아예 없지. 불가능이지.원서는 커녕 나는 내 인생에서 서울대를 다녔다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진짜. "우리는 세상천지에 꼭 우리 둘이서만 공유하고 기뻐할 수 있는 유일한 사항인 자식들을 앞에다 놓고 진정으로 '희'를 맛보며 한껏 유치해져 본다.
적당히 잘 익은 꼼장어에 서너 쌈을 부딪혀 쨘하고 나서야 남편은 입을 연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뭘 할 수 있는 게 있어야 말이지. " 하도 쬐그만한 눈매라 보이지도 않지만 땀인지, 연기때문인지 당신의 눈가가 촉촉해져보인다.
"아이고야, 의사도 신도 못 하는 일을 우리가 어찌하노. 병원에서도 못 하는 일은 우리도 못 하는 거다."무기력함을 속상해하는 남편이 답답해서 또 먹혀들지 않을 잔소리를 꺼낸다.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속상해 하지 말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라."
'내가 도대체 뭘 할 수 있는데?' 하는 표정으로 남편은 쳐다본다.
"어? 어머니 전화오면 짜증내지 말고 다정하게 좀 받아주고, 시간날 때마다병원에 가서 휠체어에 태워서 병원 한바퀴라도 돌고. 그게 다지. 그거는 할 수 있잖아. 그게 큰 병원을 찾아 옮기고 좋은 약을 구해 주는 거보다도 더 의미가 있고, 어머님이 진짜로 원하시는일이지도모른다."
거동이 불편하고 병원에서도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고 며칠내에 퇴원을 하라는어머님은 그래도 아직은 대화가가능하시다. 가끔은 정신이없는 말씀을 하시긴 하지만 목소리는 들을 수 있지 않냐고. 또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대꾸를 해주시지 않냐고.그게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인지 왜 당신은 못 깨달으시는지 안타깝다.
"이번 주말에는 1번을 데리고 어머님 병원을 갈래? 엄마보니까 애들 데리고 갔을 때 젤 행복하게웃드라고."
"병원에 데리고 들어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담주에 퇴원하면 셋이 다 데리고 촌에 가보자. "
아직 온전히 마지막을 실감하지 못 하는, 아니 실감을하고 싶지가 않은 걸지도 모르는 남편에게 마지막을 얘기할만큼 나는 매정하지는 못하다.
다만,휴대폰에 집착하시는 어머니의 전화 알림에 눈살을 찌푸리는당신이 무뚝뚝했던 이 순간을 후회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며, 또 그때의 당신이 덜 아팠으면 좋겠다고 나는 당신에게 생채기를 낸다.
이제 당신의 슬픔도 또 내것이 된다.
오늘은 원래 남편이 퇴근한 후에 어머님의 병원에다녀가기로 한 날이었단다. 그런데 형이 오늘은 자기가 간다며 토요일에 남편보러 병원에 다녀가라고 해서 바로 집으로 오는 길이었단다. 그런귀갓길이 울적했는지 남편은 집에 오자말자 양말도 벗지 않고 서성이며 나에게 소주한 잔을 사달라며떼를 써서나서던 길이었다.
한참을 둘이서 밀린 수다들을 풀어놓다보니 어느새 소주병이3병째 줄을 선다.
내일은 또 출근을 해야하니 이쯤에서 일어서자는 당신에게 한 병만 더 하자고 고빨을 부려 본다.
"에이, 집에 가서 맥주나 한 캔 더 하자." 단호한 남편의 거절에 또 마지못해 일어서며나는,
"나는 시험끝나서 내일 쉬는데... 한 달만에 노는 평일인데..." 로 질척여 보지만 오늘은 사실 나도 요정도가 딱 좋았다.
"이마트에 들르까? 애들이 맛있는 거 사오라고 톡왔든디.바나나도 사자. 아래께 엄마가 먹고 싶다 하드라. 내일 병원에 들고 가야겠다." 하며 이마트쪽으로 내 손을 끌어당긴다.
"그래, 집에 맥주도 없다. 한맥 세일하드라. 그거 사갈까?"나도 땀이 채여살짝 기분이 나쁜, 두꺼운 남편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집앞에 다 와서 갑자기 남편은 맥주며 치킨을 담아온 무거운 재활용봉투를 내 손에 쥐켜 주며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왜? 머하게? 또 담배 피게? 무거운데... 씨. " 하고 싫은 표정을 짓자, 남편은 씩 웃으며,
"차에 좀 갔다오께. 소주를 얻어 묵었으니 선물을 줘야지. 차에 백화점상품권이 한 장있드라고."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분좋게 멀어지는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것은 '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