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글쓰기거리는 마구 마구 떠오르는데, 손이 바빠서 머릿속으로만 이리저리 메모를 하며 곱씹고 있는 날이 있다.
이럴 때는 생각만 하면 생각한 그대로 글로 옮겨 주는 최첨단의 도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물론 곧 이러한 도구가 나올 것이다. 아니, 지금도 벌써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어느 잡지에서 눈동자의 움직임으로만 모니터를 작동시키고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상용화가 되지 않았을 뿐,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기술이리라.
손으로 글씨를 쓰던 그 옛날에는 손가락의 움직임만으로 글을 써내는 기계들의 발명이 무척 놀라운 일이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모든이들이 손글씨보다는 자판을 사용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생각만으로 글이 저절로 써지는 도구의 사용이 당연한 세상이 올 지 모른다. 그러면 과연 작가는 존재 가능하려나... 모든 이들이 자기의 생각을 그대로 글로 펼쳐 낼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지금도 글쓰기는 일상이 되긴했다만. 그러한 세대에는 또 어떠한 생활의 변화가 찾아올까? 잡다한 상념 속
에서 오늘도 오늘의 브런치 약속을 지키기로 한다.
아참, 그러고보니 우리에게도 음성인식 장치가 있었다. 오늘 같이 손이 바쁜 날에는 음성인식 기능을 사용하여 글 써보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 손으로 쓰는 것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편할 수도 있고 어색한 문장들 투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수정, 퇴고라는 최고의 실수편집기가 있으니 걱정이 없다.
음성인식기를 써서 글을 써 보는 재미난 도전을 떠올리니 우리 집에 살고 있는 9살의 음성인식 애호가의 일상이 떠 올라 웃음이 난다.
우리집 TV를 처음으로 음성인식이 가능한 스마트 TV로 바꾸었을 때 아무도 음성인식 기능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직 글씨를 읽고 쓰기가 어설픈 막내가 유일하게 음성 인식 기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혼자서 머라머라 꿍시렁꿍시렁
거리면서 스스로 사용법을 터득하더니, 어느새 리모콘없이 티비를 켜기도 하고 목소리로만 원하는 채널로 이동하는 신비롭고 놀라운 기능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컴퓨터를 에법 잘 다루어서 학교 그룹 과제는 늘 파워포인트와 발표 자료 만들기의 역할을도맡아 하는 큰 누나도, 스마트기기가 보편화된 일상을 사느라 기계에 나름 일가견이 있는 작은 누나도, 성인인 나와 남편까지
도 모두 깜짝 놀랐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던 이 막내녀석에게 음성 인식의 기능을 배웠다. 아마 이 녀석이 너댓 살쯤되었을 때였지 싶다.
읽고 쓰기에 익숙한 우리들은 음성인식 기능이 처음에는 몹시 어색했다. 사람이 아닌 기계에게 대화라니벽보고 혼자 떠들어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우리들은 음성인식의 편리함에 중독되었다. 예를 들어 급하게 밖에 나갈 때면 우리는 지니야~ 를 불렀다.
현관에서 거실을 향해 "지니야, 티비 꺼죠~" 라고 외치면 다시 집안에 들어와서 티비를 끄는 번거로
움이 필요없었다.특히 툭하면 사라지는 리모콘은 "지니야~ 리모콘 찾아 줘." 하면 끝이었다.
이런 편리한 것을 우리는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도 음성인식 기능이 어색한 고등학생의 딸은 혼자 있을 때도 지니를 찾지 않는다고 했다.
9살 차이가 나는 이 두 아이들에게 딱 요정도, 기가
지니를 부르는 어색함을 못 견뎌할 만큼의 세대차이가 있었다.
사전상의 정의에서는 세대차이를 어린이가 부모로 성장해가는 30년을 기준으로 두고 있지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하나 틀린 것 없는 옛말에도 30년은 너무 길다. 요즘같은 시대에 30년은 세대가 아니라 역사가 바뀌고도 몇 번은 더 바뀌고 남을 시간이다.
사람마다 세대차이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내 인생에서 세대차이의 기준은 딱 5세 였다.
왜냐하면, 남편과 나의 나이는 딱 5세 차이이다.
또 내 첫 아이와 둘째 아이도 딱 5세 차이이다.
나와 남편사이에 느끼는 이질감처럼 한 배, 내 뱃속이라는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난 두 소녀도 분명히 둘 사이에 어색할 정도의 이질감이 언제나 존재했다. 5세 차이는 나에게는 삶의 기준이나 가치관이 달라질만큼 엄청난 차이를 일상에서 매일 느낄만큼 크게 가져왔다. 가파르게 변해가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의 세대차이는 얼마나 더 촘촘해질
지는 모르겠다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5살 많은 내 남편의 행동들에게 이건 분명히 세대차이
때문이라면서 합리화하고 갈등을 더 이상 확대 생산하지 않은 나름의 삶의 지혜라면 지혜로 활용이 가능했다.
5년 차이가 나는 내 남편은 수능을 모른다. 학력고사 세대라서 수능이 어떤 시험인지 개념
조차도 모르겠다 했고 대학원서를 여러 군데에 써 내는 제도도 너무 낯설다했다. 아~ 옛날 사람.
또 가격비교 사이트로 요기저기 가격 및 제품을 비교해보고 물건을 구입하는 나를 처음에는 의아해
했다. 아직도 물건을 직접보고 사는 게 맞다고 온라인 쇼핑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동네아줌마 커뮤니티 친구들과 왕래를 하며 17년지기 친구가 된 사연도 처음에는 달갑게 받아 들이지를 못 했다. 사이버세계의 존재를 의심하고 늘 경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열린 마음이라는 것은 사기꾼들이나 써먹는 작업쯤으로 여겼다.
업무를 위해 화상회의를 진행하면서 그 작업은 어찌 순순히 믿나 모르겠다. 참나.
이런 남편과 나의 사고방식의 차이만큼 5년, 4년씩 차이가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도 서로 살짝 이해가 안 될 만큼의 세대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큰아이는 확실히 컴퓨터 세대였다. 큰 아이의 애기시절의 모든 사진들은 그 옛날 싸이월드갬성에
묻혀 있다. 아이도 어릴 적엔 컴퓨터 게임에 집착
하고 키보드와 마우스로 게임캐릭터를 작동시키며 자라났다. 주말마다 컴퓨터 사용권을 주는 것이 최고의 보상인 아이였다.
또한 분명히 이 아이는 한글도 낱말카드를 들고 읽히면서 통문자냐 자음모음을 먼저 가르치냐를 고민하던 세대이다.자라면서는 모든 정보를 초록 창에 써서 찾아 내던 아이였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나도 의심의 눈초리로 백과사전 찾는 법, 영어사전, 국어사전 찾는 법을 가르쳤다.
컴퓨터보다는 책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먼저 배우기를 바랬다.
큰아이와 5살 터울의 둘째는 컴퓨터가 서툴다. 컴퓨터보다는 스마트폰이 더 익숙하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손바닥 안에서 찾아낸다.자라면서 키보드 조작을 어려워 해서 따로 컴퓨터 특강수업을 듣도록 했다. 노트북도 키보드와 마우스는 불편하다고 나는 오려 더 어렵던데, 이 아이는 손가락을 돌려서 사용한다.
이 아이가 한글을 배울 때는 스티커북에 스티커를 오만상 붙여대며 즐거워했고 통말이니 낱말이니 따위는 개념치 않았다. 바로 문장을 읽혀나갔다.
궁금한 것은 휴대폰을 열면 다 해결이 되었다. 사전보는 법을 좀 가르치려고 하니 온라인 사전을 찾는 방법을 연구했고 본인의 스마트폰에 본인만의 단어장을 만들어 두었다. 검색창도 초록창뿐이 모르는 나는 알 수 없는 낯선 아이였다. 친구들과의 소통도 카톡속에 그들만의 세계가 따로 있고 부계, 부캐가 존재하는 세대들이었다. 그래도 이 아이들
은 음성인식보다는 아직은 손을 사용한다. 정확히는 손가락이지만.
이 아이보다 한두 살이 많은 중등 친구들의 수학을 가르치면서 요즘 중학생들의 대부분이 사전식 알파벳 배열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는 것을 보고 아, 이 아이들에게 영어사전은 이제 학습의 필수품이 아니구나. 그저 구시대의 유물같은 것이겠구나, 하며 사전식 배열을 새로 설명했다. 영어도, 국어도 아닌 수학 수업에서 말이다.
그 아래 4살어린 막내는 애기때부터 티비에다 손가락을 가져가 눌러댔다. 모든 모니터는 손가락으로 돌리면 다 작동이 되는 줄 아는 세대
이다. 이 아이의 최고의 장난감은 테블릿이다.테블릿으로 유투브를 보면서일상생활의 모든 정보를 얻는다. 나도 모르는 잡다한 지식을 어쩌구저쩌구 가득 늘어놓을 때면 그 출처는 언제나 유투브이다. 컴퓨터는 집안의 유물이 된지 오래이고 전원을 켜 보지 않은 지 몇 년이 된 것 같다. 버리려다가 그 안에 있는 사진들을 언젠가는 꺼내야지 하고 방치되고 있다.
한글수업도 이 아이는 테블릿에 손가락으로 드래그를 하면서 익혔다. 아마도 이 아이는 아직도 마우스 더블 클릭을 못 하지싶다.
10년이상 육아를 한 나만이 알 수 있는 낱말카드로 시작해 스티커붙이기를 거쳐 테블릿을 이용한 한글 수업의 놀라운 발전사에 세대가 이렇게 빠르게 변화해감을 몸소 체험한 신비한 경험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유치원에서도 수업을 테블릿으로 진행하는 세대.
테블릿과 스마트기기와 함께 자라난 막내는 당연히 책에는 관심이 없다. 그 대신 음성인식에 능통하다. 테블릿도 자판보다는 대부분 음성인식으로 정보를 찾는 것 같았다. 숙제를 끝내고 자유시간에 이 아이
는 늘 수다스럽다.
"고스트워", "메카드볼 메가파이톤". "신비아파트 어둠의 퇴마사" 등등. 늘 이렇게 단어를 외쳐서 찾아낸다. 자판의 터치보다는 말하기가 자연스러운 일상을 사는 녀석이다.
그네들만의 말투도 유투버에게서 배우는 듯해서 말투가 바르지 못한 채널은 못 보게 잔소리를 해야한다. 처음에는 유투브어플을 아예삭제버렸는데 그 유투브라는 것은 하도 요상해서 없어지지도 않았다. 어디론가 찾아 들어가지고, 나중에는 EBS교육채널을 통해서도 유투브에 들어가서 원하는 채널을 보기도 했다. 어차피 학교 온라인수업때도 유투브를 봐야 하니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아이에게 나쁜 말을 하거나 폭력적인 채널은 스스로 못보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다행히 아직은 숨어서 몰래보지 않고 오픈된 공간에서 몹시도 시끌벅적하게 시청하느라 저녀석의 세계관을 다 훔쳐 볼 수 있다.
한집에는 살고 있지만 이렇게 세대차이를 느끼며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는 세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라날 것이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놀고 배우고 소통을 하겠지만 그 근본은 나의 가정이라
는 울타리 안에 있지 않을까 나는 간절하게 바래 본다.
나의 음성인식기는 벌써 중반부보다 더 앞에서 꺼졌다. 어색하고 불편한 음성인식기보다 자판을 두들기는 것이 나는 더 익숙한 세대의 사람이다. 나도 나의 방식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각자들도 자기의 방식을 버리지 못 할 것이다. 이해를 할 수는 없지만 너희들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해 보아야겠다. 다만 나의 그늘을, 그늘? 보살핌, 보호.. 라는 표현을 쓰려다가 보호보다는 나의 관심으로 하자. 나의 관심을 거절하지만 말아다오.또한 각자의 방식을 서로 가르쳐주고 배워나가면서 소통해 보도록 하자.
나처럼 너희들도 사회에서 만날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방식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자라기를 바래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