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에 갑자기 딸들이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요구에 퇴근길이었던 저냥반은 집앞 마트에 들려 삼겹살을 한 팩과 함께 귀가 하셨다.
그 바람에 며칠 전부터 베란다에 나뒹굴고 있던 배추 한 포기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잘 씻어서 삼겹이와 함께 쌈을 싸서 먹었는데, 노란 속이 어찌나 달고 맛나든지 깜짝 놀라며 이래서 가을 배추라는 말이 따로 있는 거구나 했다.
"머래노. 배추는 살짝 얼었다 녹았다하는 겨울에가 진짜 맛있지. 진정한 배추의 맛을 모르는 구먼." 하는 싱거운 저냥반의 대답에
"응~ 그래. 가을이고 겨울이든간에암튼, 배추가 완전 달다잉~ 내, 이 배추를 다 먹어치워 버릴 게야~ " 라며 굳은 다짐을 전달하고서는
요번주 내내 베란다 검은 봉다리 안에서 천대받고 있던 배추를 곱게 씻어 냉장고로 모셔 놓았다.
오전내내 아무생각없이 멍때리며 - 사실 오늘같이 한가한 날에는 글쓰기이지, 하고 속으로만 의지가 불타오르고 막상 작정하고 앉으면... 햐, 또 글쓰기에 고갈되어 갈 내 체력과 정신적 진빠짐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무의미하게 이런 황금같은 시간을 날려 버리고 있던 이런 오전에- 무심코 본 어느 인싸님의 배추찜쌈 레시피 동영상에 확 꼽혀서 어제의 나에게 잠시 달달함을 주었던 소중했던 내 배추가 떠올랐다.
마침 배도 고픈 터라 급히 이 배추를, 아침에 아이들에게 쪄 준 호빵이 스쳐 지나가고 난 빈자리
에 다시 앉혀 놓고 얼마전 자가격리 지원물품으로 쌓여만 가던 처치 곤란의 참치캔을 하나 땄다.
배추가 쪄 지는 동안, 두부를 으깨고 캔참치의 기름을 짜내고 레시피보다는 내 느낌이 가는대로 양념도 싸샤샥~ 뿌려 속을 만들었다.
그 뒤로도 한참을 더 푹 쪄진 뜨거운 배추를 꺼내 손부채질을 해가며 속을 감아 쌌다.
올~ 생각보다 만들기도 쉽고 저른 음식을 보면 왠지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 같고, 저걸 우찌 만드나싶었는데, 잘 쪄져서 흐물흐물한 배추잎이 대충 매만지기만 해도 나름 그럴싸하게 야무진 모양새가 나왔다.
에법 폼새가 좋은 배추찜쌈을 반찬 통에 담으까, 접시에 담아 놓았다가 바로 먹을까 고민하며 적당한 반찬통을 꺼내어 담으려고 보니 아무래도 반찬통에 그냥 대충 담아버리기에는 아까운 비쥬얼인 듯 싶어서 잘 쓰지 않는 네모난 긴 접시를 다시 꺼냈다. 하나하나씩 곱게 담아놓고 보니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다.
곱게 담겨진 내 배추찜쌈을 하나씩 하나씩 꼭꼭 씹어 먹다보니 건강한 맛있음에 만족스러워서 레시피를 꼭 기억하기로 다짐한다.
속도 편할 것 같고 종일 든든할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아까의 느낌가는 대로의 내 양념에서 후추 갈갈갈~은 다음에는 빼야겠다며. 맛이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후추알갱이가 겉돌아서 별로다.
하나씩 줄어드는 배추찜쌈을 보며 곧 아이들이 올 시간인데 남겨 둘까 말까 번뇌에 빠져들었지만 우리집 삼남매 녀석들은 이런 건강한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 한다는 슬픈 사실이 떠올랐다. 먹으려고 하지는 않을 거 같지만 왠지 이 비쥬얼은 또 보여는 주고 싶어서 2개는 남겨 놓아야겠다며 우적우적 혼자 남은 배추찜쌈을 씹어 삼켰다.
그러다가 요즘 아이들 말로 급 현타가 왔다.
내가 지금 혼자서 이게 머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에 뒷통수가 후끈거렸다.
평소에 자주 혼자서 밥을 먹을 때가 많은 아줌마의 일상이지만 이렇게 정성을 들여 차려 놓고 먹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아이들과,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는 반찬통을 그대로 두고 먹기보다는 따로 반찬 접시에 덜고 메인 메뉴는 어울리는 그릇에 나름 예쁘게 세팅을 하고 각자의 앞접시를 준비해서 가능한 선에서 제대로 차려 놓고 먹으려고 하는 편이긴 하다.
과하게 상차림에 신경을 쓰는 날이면 딸들은
"또 업로드 좀 하시려나보지? 인싸가 되는 길이 쉽지가 않지?" 하며 인싸의 삶에 대한 내적 욕망이 살짝 있는 나를 깔깔거리며 놀릴 때도 있다.
인싸로의 욕망도 부정은 못 하겠다만은 나는 특히나 아이들에게는 늘 제대로 차려서 먹도록 해주려고 한다. 왜냐하면 집에서 대접을 받고 자라면 마찬가지로 밖에서도 늘 대접을 받을 것 같기도 하고 또 제대로 차려 먹고 사는 일상이 버릇처럼 익숙해지다보면 스스로도 잘 차려먹고 살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등학생인 큰 아이는 사소한 간식을 본인이 직접 차려 먹을 때마다 평소 내가 차려줄 때처럼 접시에 담아 쟁반을 받쳐서 먹을 뿐만 아니라, 어린 동생들에게도 당연한 일처럼 과자 한 봉지라도 간식 그릇에 옮겨 담아 먹도록 내어준다.
습관의 힘을 아이들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서는, 더욱이 아이들
이 좋아하지도 않을 음식을 차려 먹으며 이렇게 어울리는 접시까지 꺼내 놓고 먹는 일이 낯선 것은 사실이다.
소중한 나를 격려하기 위해 일부러 제대로 된 음식을 잘 차려 놓고 먹을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나는 이렇게 나 혼자 먹을 끼니를 그릇까지 어울리게 골라 차려놓고 사진까지 찍는 일은 꼭 혼자놀기의 진수인냥 어색하다. 더욱이 찐으로 혼밥임을 재확인하는 일 같아서 즐기지는 않는다.
잘 차려진 꼬슙은 배추찜쌈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뒷통수가 땡기는 느낌에 혼자 피식~.
간만에 오롯이 나만을 위한, 오직 내 취향의 음식만을 잘 차려서 나 혼자서 먹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직 이런 상황이 살짝 오글거리기는 하는 자기에게는 무뚝뚝한 자존감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피식~하고 한번 웃어보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