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작정하고 처음으로 버려할 습관은 #해시태그체였다.
그 동안 싸이월드를 시작으로 블로그, 카카오
스토리, 밴드 등을 거쳐 인스타그램에 정착하면서
나는 내 40여 년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처럼 일상도 늘 구구절절, 구질구질하게, 장황하게 남겨 두는 스타일이었다.
처음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 딸들이 -고등학생
인 큰 딸과 아직 13살인 어린이이지만은 스스로가 인싸라고 자부하는 둘째 딸이 내 피드를 보더니
"엥? 엄마, 이게 머야? 인스타 피드에 누가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써?"하며 깔깔거렸다.
"왜? 이기 어때서? 내 스타일이야~ 말 줄임으로 멋있는 척 하는 거, 나는 진짜 재미없어.
맘에 안 들면 언팔하시든가! 나에게는 100여 명의 팔로워들이 있으니 나는 상관 안 해. 쳇!" 하며 기죽을 내가 아니었다.
"해시태그를 앞에 붙이고 간단명료하게 팩트만 팍~!! 그기 인스타 갬~성이라고~" 하며 조언하는 큰 딸에 이어
"이렇게 구구절절 쓰면 엄마보러 완전 아줌마 같다고 생각할 텐데..." 하고 걱정하는 둘째.
"그럼 내가 아줌마지, 아저씨냐? " 하면서 꿋꿋하게 구질구질 갬성을 밀고 있다.
딸들은 구질구질 갬성이 우스워 죽겠다고 비웃으면
서도 수시로 내 인스타를 염탐하는 것을 나는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유의 시간들이 흐르면서
감정을 뺀 간단명료한 언어들의 편리함을 ㅡ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자유로움에 매력을 느끼면서 어느새 나도 #해시태그체에 물들어 있었다.
어제,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로 예를 들자면,
#월욜같은목요일
#주먹밥두개와생수한병
#까만비닐봉다리
#누규꺼?
라는 간단한 해시태그 몇 개.
그리고 무심한 듯 사진 한 장.
...이런 식이다.
이것을 풀어서 내 감정, 한 숟가락을 더 하면
[긴 추석 연휴가 끝난 목요일은 마치 월요일처럼 길고 힘들었다. 피곤한 몸으로 늦어진 저녁을 급히 챙기는 중에, 남편은 끼니도 거르고 까만 비닐 봉지를 찾아 주먹밥 두 개와 생수 한 병을 담아서 서둘러 나선다. 저 주먹밥의 주인은 과연 누구
인가?누구이기에 저토록 소중히 안고 달려갈까?]
이쯤으로 살짝 부끄러워 졌을 터이다.
핫해 보이는 젊은이들의 인싸 갬성을 따라 잡으려고 간단명료하게 팩트만 팍~팍~ 남기는 #해시태그체에 길들어져 가면서
문득, 내 사고방식도 감정은 살짝 빼놓고 간단명료
하게 팩트만 딱, 딱 꺼내놓는 쿨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시크라는 멋스러움은 찾았지만,
그러느라 포기한 내 감정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감정의 기복이 꽤 커서 수시로 널을 뛰어야 하느라 한편의 시트콤같은 일상을 사는 사람인데...
시크함을 얻은 대신 깃털같은 가벼움으로,
한참 생각해보면 거, 참 웃기는 여자네... 싶은
내 순수한 매력을 잃어버렸다.
사실은, 분명 기록의 시작은 시크한 멋스러움이 목적이 아니라
그날의 분위기, 그날의 공기, 그날의 습도... 이 모두를 더 생생하게, 더 오랫동안 기억하고 간직하려고 나는 연필을... 아니지, 휴대폰을 꺼내 들지 않았던가.
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돌아 가고 있고,
우리들은 이 복잡한 세상보다 더 다양한 감정들로 둘러 싸여서 전혀 간단명료하지가 않은 하루들을 살아 가고 있는데 감정은 쏙 뺀 간단명료가 문득 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내가 오래된 사람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세상만큼 얽히고 설킨 감정들을 제대로 드러내려면 #해시태그체부터 손절해야 겠다.
핫하고 시크한 멋스러움을 포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구질구질하게 설명할 것도 많고 구구절절 변명하고 싶은 것도 많은 44살의 진짜 내 이야기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