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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Mar 20. 2022

그는 무엇이었을까?(1)

첫만남

살다보 랜 시간이 지나도 도대체 였는지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는 머였을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직도 나는 알 수가 없다. 

하긴, 내 마음도 확하 알 수가 없는데  마음을 어찌알 알아 본 들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를 처음 본 것은 내가 갓 20살이 된 2월의 어느 날이었다.

20대의 시작이자, 대학생의 시작이고 어른으로써 처음 인정받기 시작하는 20살. 누구에게라도 그 첫 20살은 설레임으로 시작해서 조금  지나치게 설레며 끝내도 괜찮을 때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마구 설레는 마음을 굳이 시크하고 도도하게  억누르며  입학할 내 20살의 시작인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을  갔다가 그를 처음 보았다.


사실은 오리엔테이션 큰 기대 었던 지라 고등학교 친구들과 우방랜드를(현재는 이월드라고 명칭이 바뀐,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구에 현존하는 최고의 놀이동산이다. ) 가기로 속을 미리 해두고 나가는 길에 1시간쯤 일찍 나서서 슬쩍 한 번 분위기를 볼 계획이었다. 기대감이 낮았던 까닭은 내가 입학할 대학교는 우리지역 최고의 국립대라 불리던 나름의 명문대였던 라, 딱 그만큼의 우리지역 최고 범생이들이 모였으리라 미리 짐작한 탓이다. 하나같이 돋보기같은 뿔테 안경을 똑같이 맞춰 쓰고 왠지 졸업 후에도 교복을 입고 다닐 거 같은 여드름쟁이 빠빡머리 학생들이 바글바글 모여있을 거라고 기대치가 낮았다. 그런 녀석들이라면 지긋지긋하다.

(물론 20년이 지나서 보니, 그런 뿔테 안경의 범생이들과 캠퍼스 커플로 연애를 하다 결혼한 친구들은 모두 사모님이 되어있드라만.)

그래도 학교 생활은 열심히 해 볼 계획이었기 때문에 신입생들이 어떨런지 미리 한번  보고 싶었다.


마침 우방랜드에서 인생 사진을 잔 찍을 계획으로 짙고 촌스러우며 과도하게 알록달록한 풀메이크업을 장착하고 얼어죽기 딱 좋게 짧은 체크무늬 원피스에 작은 언니의 검정색 마이를 갖춰 입고 선물로 큰 언니가 사준 무릎까지 오는 롱부츠까지 꺼내 한껏 멋부렸다. 그래서인지 중반이 한참을 지나 늦게 들어간 대강당의 O.T현장에서 아무도 나에게 신입생이냐고 묻지 않았다. 가장 뒷 줄 구석에 조용히 자리잡고 앉아서 강당을 둘러 보았다.

나보다 깔롱직이는 여학생이 있는가, 행여나 허우대가 멀쩡한 남학생은 없을라나, 매의 눈으로 돌아보고 있으려니, 이사회자가 머라머라 외치고 의욕 넘치는 패기있는 신입생 열  명이 우르르 단상으로 올라 갔다. 그 무리에 언젠가 언급한 적있는 나의 X-남친도 끼여 있어서 절로 팔짱을 끼고 시크하게  무리들을 지켜 고 있었는데, 그 줄의 가장 마지막에 그가  있었다.


큰 키가 아닌데도 과감하게 검은색 롱코트를 발목까지 내려 오게 차려 었는데도 전혀 우습지가 않은 희안한 그에게 그냥 눈길이 갔다. 돋보기 안경을 낀 범생이들의 집합소일 줄 알았는데 우리 학교에도 저런 애가 있긴 하네~ 하는 호기심으로. 딱 그정도로 눈여겨보고 나서는 각자 인사말과 입학생으로써의 다짐을 외치는 중에 나는 다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 나서 우방랜드로 달려갔다.

때는 그 짧은 다리에 용감 롱코트의 그녀석때문에 내 20살의 시간들을 처음 겪어 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괴로워하며 보내게 될 지를 상도 못 한 채로.



그녀석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주 후, 부곡하와이로 2박 3일간 떠나는 예비대학 출발 지점이었다. 딱히 예비대까지 갈 일은 아니지만, 그냥 20살이 된 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외박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예비대 참석 신청해 보았다. 그런데 그 출발지에 그녀석이 바로 옆 줄에 떡하니 서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 학부에서 내가 배정받은 학과는 여자들만 몰려 있는 과였는데 우리 단대 에 또, 남자들만 몰려 있는 그녀석네 과는 늘 어디론가 떠날 때마다  두 과가 나란히 줄을 선단다. 선배들따라 착하게 줄을 서 보니, 요번에는 롱코트가 아닌 숏코트에 두꺼운 목도리를 센스있게 두르고 서 있 그녀석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요번에는 신입생스럽게 나름 귀엽고 깜찍한 컨셉으로 아침부터 정성을 들여 셋팅기로 머리를 바글바글 말아 묶고 찐핑크색 체크무늬 남방에 운동화를 깔끔하게 신었다. 그리고  대백프라자에서 엄마가 큰 맘먹고 사준 파랑색 야상잠바를 새내기스럽게 걸쳐 입었다.


예비대 행사지에 도착해서 선배, 동기들과 이런 저런 활동들을 하는 중에도, 희안하게 그녀석은 눈에 쏙쏙 들어 왔다. 같은 학부도 아니고 다른 과였지만 이상하게 그녀석의 무리들은 늘 우리들 언저리에 존재했다. 어쩌다가 그녀석네 무리들이 안 보이면 허전하게 느껴져 고개를 돌려 그들 무리를 찾을 만큼 자주 눈에 띄였다. 

그럴 때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나도 모르게 그에게 한 발짝씩 다가서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도 것이 동기와 친구로써의 한 발짝인지 남자로써 한 발짝 다가선 것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요즘같으면 썸이라고 부르면서 애매한 이런 사이를 썸타려말았다는 표현을 거창하게 써 볼텐데... 썸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그날 저녁이었다.

선배들과 신입생이 둘러앉아서 대화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소주를 한 잔씩 하는 선배도 있고 선배들이 따라 주는 소주를 한 잔씩 받아 먹는 신입생도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 스스로에게 금주를 선언하던 시절이라 술을 받아 먹지않았다. 자유로이 선택이 가능한 분위기였다.

그런 화개애애한 타이밍에 그녀석과 선배인지 신입생인지 알 수 없는 서너 명이 취기로 살짝 붉어진 얼굴로 우리 방에 들이닥쳤다.

호기롭게 인사를 하고 자기 소개들을 하며 건들거리는 그들 무리에게 우리네 선배들도 호락호락하지 않게 신고식을 하라며 춤을 추게 시키고, 갑자기 그렇게 고요하고 화기애애하던 우리 방은 떠들썩한 분위기가 되었다. 끌벅적한 분위기에 휩쓸려도 그녀석은 한눈에 내눈에 들어왔지만 모른 체하며 곁눈질로 그녀석을 훔쳐 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녀석이 내 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그러고 갑자기 내 가슴쪽으로 손을 쓱 내민다. 나는 깜짝 놀라서 뒤걸음치며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더니 그녀석이 호탕하게 웃으며

"이름표. 니 이름표 뒤집어졌다. 니 이름이 머꼬?" 하는데,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내 손으로 직접 이름표를 뒤집어 보여 주었더니, 더 환하게 성격 좋은 웃음 흘리며

", 무슨 상상을 했노?내 나쁜사람아이다. 나는 KJH다. 내 이름 딱 기억해래이." 하 쿨하게 다시 뒤돌아서더니 무리들과 우리 방을 떠났다.


완벽히 계획적인 J형 인간인 나는 이런 부류의 갑작스런 일에대처가 좀 늦은 편이다. 대꾸도 제대로 못하고 멍하게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한나절동안 친해진 우리과 신입생 친구들이 다가 와서는

"쟤 아는 사이냐? 머라고 하는 거 같던데?" 하고 물어서 정신을 확 차렸다.

"어... 아니, 몰라. 그냥 이름 묻던데." 하고는 우리는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화개애애하며 차분한 우리방 분위기에 묻혔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취침시간이 다 되어 가길래 삐삐 메세지를 확인하러 아랫 층에 있는 공중전화로 내려갔다. 아무 생각없이 줄을 섰는데 바로 앞에 또 그녀석이 있었다.

괜히 어색해서 모른 체하며 삐삐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까 그녀석이 뒤에 있던 나를 향해 휙~ 하고 돌아 다. 그러더니 손에 쥐고 있던 캔커피를 내 으로 쓱 내어놓는다. 먼가 싶어서 당황스러워서 그녀석을 쳐다 보니,

"자, 커피. 니 먹어라. " 한다.

" 아니, 괜찮은데. 나는 원래 커피 안 먹는데. " 하고 진짜  마음과는 다르게, 솔직하게 커피를 안 먹는다며 거절을 해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진짜 술, 커피 같은 몸에 나쁜 것을 입에 대지 않는 바른 생활 소녀였다. 다만 과한 꾸밈과 멋내기를 즐기느라 종종 쎈언니로 오해받았고 고3  동안 총10kg의 증량으로 얻은 떡대로 말술도 받아먹겠다는 오해를 다가 몇 달 뒤에 그 오해를 현실화 해내었을 뿐. 원래는 천연소녀였다. 흠흠흠.


" 안 먹어도 그냥 니 가져라. 내 마음이다. " 하며  매를 당겨 캔커피를  손에 쥐켜 주고는 그녀석은 계단 위쪽으로 총총 올라갔다. 그 뒷통수에 대고 나는 고마워가 아니라,

" 어, 야! 니 전화안 하나?" 하고 불렀다. 공중전화 앞에 섰다가 전화는 안하고 캔커피만 주고 가는 그녀석의 속내가 당췌 알 수가 없어서 불러 보았다.

" 어, 나는 안 해도 된다. 니 먼저 하라고." 하더니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당황한 눈빛으로 그녀석이 사라진 계단 위를 한참 올려다 보았다. 그러곤 내 손에 쥐켜진 미지근한 캔커피를 또 한참을 쳐다 보며

'이건 머지?', '저 녀석은 머지?' 하며 의아스러우면서도 왠지 빙그레 웃음이 났다.


그는 무엇이었을까?

제대로 설레어버리려고 작정한 20살의 나에게 그녀석은 무엇을 던지고 간걸까?





그의 이야기를 한 편으로 몰아서 채우다보면

이 20의 설레임은 퇴색하여 현재 45세 아주미의 지루지루한 회상이 되어버릴까 염려스러워 시리즈로 나누어 보습니다.

부디 다음 편을 기대해 주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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