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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Mar 21. 2022

그는 무엇이었을까?(2)

봄날의 캠퍼스

봄날의 캠퍼스는  예쁘다.

전한 아름다움이 시간과 공간촘촘히 메꾸어  기마저 고유 색을 따로 가진 듯이 찬란하게 예쁘다.

 분홍빛으로 흩날리는 날의  빛 파릇파릇한 새싹이 뿜어내는 싱그러으로 무지가 완성할 수가 없는 빛깔들이다.

가끔은 음대로 이리저리 날리는 봄들이 덜 피면 덜 핀대로, 아직 덜 자라 제대로 푸르지도 못한 채 봄바람에 떨어져버린 나뭇잎새도 그저 그런대로 미완성인 채로도 날의 공기 더욱 화사 빚깔인색칠해 는다.

그래서 봄날 세상 더 다채롭게 반짝는 빛깔을 가진다. 가끔은 다 완성되지 못한 공기의 어설픈 빛깔이 더 아름워지는 것이 바로 봄이다.

거기에 그때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우리들의 젊음이 한 숟가락 더해져서 봄날의 캠퍼스가 더 아름다웠것일까.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그저 멍하니 있어도 아름다운 시간들이 바로 봄날이다.




진짜 대학생이 되었다. 봄날 캠퍼스아름다움을 제대로 누 본다. 2강의실에서 멍하게 창 아래를 내려다보며 봄날의 새를 들이킨다. 삼삼오오 잔디밭 위에 흩어져 있는 알록달록한 학우들의 모습마저 봄날의 캠퍼스를 더욱 예쁘게 꾸며주려고 존재하는 것 같다. 저 학우들이 꽃이라면 어떤 봄꽃일까 하는 어이없는 상상을 헤치고,  건너 강의동 모퉁이 넘어로 그녀석이 바쁘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어디를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건지 궁금한 눈빛으로 뒷통수가 완전히 사라져 점이 될 때까지 본다. 


비가 오는 날이면 2층 커피숍 창가자리가 봄날의 비멍에 최고이다. 알록달록 우산들 사이로 빗겨 가는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 본다. 나는 봄날 중에서도 비가 오는 봄날이 가장 다.

조금 늦겠다는 20살 나의 단짝, 쭌의 연락에도 기분이 좋다. 이런 날에는 쭌이 조금 더 늦어도 좋을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멍 중에 최고는 불멍이 아니라 비멍, 물멍인 나다.

빗겨가는 빗방울 사이로 우산도 없이 횡단 보도에 서 있는 그녀석이 보인다. 비가 오는데 벌써 집에 가려나,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그녀석의 뒷모습이 빗줄기에 뿌옇게 흐려질 때까지 쳐다 본다.


중앙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떡볶이가 맛있는 구내식당으로 돌아가는 잔디밭 옆으로, 실습장으로 가는 벚꽃이 흐트러지게 가득한 내리막길 옆으로, 2합과 3합 사이의 우리들만의 도시락명당인 오솔길 안쪽의 벤치 옆으로도...

그렇게 그녀석은 내 눈 안에서 봄날의 캠퍼스를 시시때때로 누볐다.  




북문 앞 언덕배기를 오르며  점심은 뭘 먹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저 언덕 위에서 그녀석의 무리들과 마침내 모습이 아닌 정면으로 마주쳤다.

공중전화 앞에서 캔커피를 건넌 이후로 처음이다. 어떤 표정지어야하나, 아는 척을 하나마나 수많은 내적갈등을 하며 그녀석과의 길 반대쪽으로 은근히 쭌을 밀며 고개를 살짝 돌려 자연스레 못 본 체하며 지나쳤다.

아주 자연스러웠어. 하며 만족하고 있는데 뒤에서 웅성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모른 척 앞으로 가곤 있지만, 온 신경은 뒷통수에 쏠려있다.

"와~ 못 본 척 하네~ " 하는 그녀석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우리쪽으로 다닥 뛰는 발소리가 들린다.

" 야, LHJ!" 하고 내이름을 정확하게 부른다.

"어, 왜?" 하고 마지못해 돌아서는 척 한다.

다른 언급도 없이 다짜고짜 그녀석은,

"니, 삐삐있제? 삐삐번호 머고?" 하며 볼펜을 꺼낸다. 당황스러웠지만 하나도 안 당황한 척하며

"어, 016-510-6612" 하고 자연스 내 번호를 불러준다. (28년 전의 내 삐삐번호가 기억이 난다. 노올랍다. 아니구나, 016 이면 내 첫 PCS폰 번호였구나. ㅋ)

그러고 나니 그제서야 그녀석은

"야, 우리 아는 척은 하고 지내자. 인제 인사해라. " 하고는 쿨하게 돌아서 친구들에게 다시 뛰어간다.

그 무리들이 왁자지껄하게 멀어지는 소리가 뒷통수에 울려 퍼진다.

옆에서 지켜만 보더 쭌이,

"쟈 먼데?  아는 애가?"

"아니, 아는 거는 아니고. 그냥 예비대때 봤다."

"근데 먼데, 엄청 당연하게 삐삐번호를 물어보고 니는 또 엄청 자연스럽게 알려주냐. 우낀다." 한다.

그래. 나도 우끼다. 이게 먼가. 이녀석은 먼가 싶다.

나는 또 먼가 싶으다.




그러고 몇 번 그녀석의 연락이 왔지만 그때마다 시간이 어긋났다.

한번은 동아리 신입생환영회를 하느라 숙취로 쓰러져 있던 주말에 그녀석의 연락이 왔다.

"어디냐? 나는 시낸데 친구들이랑 나이트가려고 하는데 니 같이 갈래?나와라." 한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야무지게 잘 놀  같은 동아리를 쭌과 엄선하여 들어간지라 전날의 과도한 환영회로 피곤도 하고 속도 쓰리고 이런 날에 하필 이녀석은 나이트라니. 머지? 먼가 잘못 되었다.

아직은 내가 그 쪽 유흥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기 전이라 더욱 먼가 잘못된 느낌이었다. 그녀석은 나를 어떤 이미지로 보았길래 첫 약속이 나이트야? 하는 불쾌함이 먼저 올라왔다.


그 후로는 자기네 친구들과 미팅, 소개팅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 또한 달갑지 않아서 알겠다고만 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보려고 나서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과는 꽃같은 여자들 많기로 유명한 학과라 그녀석 아니라도 선배들이 주선해주는 미팅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바빴다.


그렇게 그녀석과 엇나가던 중에 동아리에서 새로 알게된 친구가 어디선가 그녀석과 내가 인사를 하는 걸 보았다며

" 야, 니 JH 아나?가를 우째 아는데? 가 무서운 아 데이." 한다.

그냥 오며 가며 인사하는 사이일 뿐이다면서

"머가 무서운데? 왜?니 가 아나?"

" 어, 우리 고등학교 동문이잖아. 가 우리 학교에서 싸움 좀 하던 앤데 대학교 입학해가 따까리 받다가 열받아서 선배들도 때릿다는 소문이 있든데. 암튼 가 무섭은 아다. 친하게 지내지마라. " 한다. 

엥? 이건 무슨 소리?

"맞나. 저번에 보이 선배들하고 사이좋아비든데. 에이, 설마. 소문이겠지. 선배를 때리고 그래 보이지는 않더라." 살짝 당황했지만  친구의 말도 믿기지가 않았다.

"야, 말마라. 가 패싸움나가 학교도 1년 꿀었다아이가, 우리보다 한 살많다. 계고에서 유명한 아다. 여자도 때릴지 모른데이. 니 조심해래이." 하는 표정이 장난반 진담반같아서

또 그녀석은 뭘까 더 의아스러워졌다.



그런 와중에 또 그녀석의 연락이 왔다. 항상 잊을만 하면 어딘가 길모퉁이에서 손을 흔들고 잊을만 하면 연락이 오는 그녀석이였다.

"내일 점심때 수업있나? 같이 밥 먹을래? 내가 쏠께. " 한다.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제안같아서 쾌히,

"그래, 그러자. 내일 오전 수업만 있다." 하고는 약속을 정했다. 생각해보니 이짓껏 그녀석과 제대로 된 대화도 못 해 보았다. 처음으로 제대로 얼굴을 마주할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선을 다해 꾸미지만 전혀 꾸미지않은 듯 차려입었다. 늘 붙어다니던 쭌도 버리고 약속 장소인 북문으로 나갔다.

저 아래 북문쪽에서 그녀석이 친구와 둘이서 내쪽으로 다가다.

"야, 너 혼자왔냐?" 한다. 엥? 이건 또 머지?

"친구도 오는 줄몰랐지. ...왜, 내친구도 부를까?"

참 지금 생각해도 실없이 우끼는 녀석이다. 점심을 먹자면서 2대2로 짝맞출 일이냐? 그때는 이런 너스레를 떨지도 못하고 당황하는 나였다.

"아니, 되었다. 머 먹을래? 머 좋아하는 거 있나?"

"머, 그냥 아무꺼나" 그녀석이 쏜다고 나오라며 큰소리 치긴 했지만, 그녀석에게 내가 머를 딱히 얻어 을 이유도 없고 그럴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해서, 그냥 그녀석이 가는 대로 따라가 볼 생각이었다.

그녀석도 딱히 서로의 취향도 잘 모르고하니 벌쭘한 듯 설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리는 어색하게 언덕 위를 올라가다가 눈에 띈 우리 학교  유명한 '아무데나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니가 아무거나 먹는다 했다. " 하 아재개그를 치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 지도 모를 정도로 어색하게 셋이서 밥을 먹었다. 


먼가 딱히 기대하던 분위기도 아니였고 무엇보다도 이 어색함 견딜  없어서 진지하게 그녀석에게로 자꾸 향하 내 눈길과 발길을 멈추어야하나 갈등하고 있는 중에 그녀석이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온다. 소화킬 겸 좀 걷자고 한다. 북문에서 학교 중앙에 있는 일청담까지 걸어 와서 박물관 근처 잔디에 자리잡고 앉았다. 보다 또 이렇게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색함도 살짝 사라졌다. 어느샌가 그 친구도 사라졌다. 어디로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학교가 아니라 저 멀리 경산에 있는 Y대에 다닌다 했는데 어디로 가버렸는지 1도 궁금하지도 묻지도 않은 걸 보면 나는 진짜로 그녀석에게만 꽂혀 있었던 것 같다.

그녀석도 눈치를 채버렸을까. 안하다.

사실 사라진 그 친구는 앞으로도 이 이야기에 몇 차례 등장해야할 터인데 나는 진짜 그 친구이름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 친구로 해두자.



  

 덕 위에서 앉아 이제서야 그녀석과 대화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계고 출신이 맞고 내 동아리친구도 알고 있었고 군기 세기로 유명한 관악부동아리 부장출신이었어디어디에 살고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고. 래서 아지때문에 공부를 급하게 해보았는데, 신통치가 않아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등등.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  야, 데, 너 1년 꿀었대매? 진짜가? 민증까봐. 함 보자.

그 : 와~ 현이 그러드나?와~  그 자식이 별 얘기를 다 하네. 내 얘기 머라디? 민증까믄 오빠라고 할꺼가?

나 : 아니, 됐다. 니 나이까지 안 알고 싶다.

그 : 그래 마이 알라카지 마라. 다친다.


나에게 물보다 빠르게 흘러간 듯한 시간이  시간? 한시간 반?쯤 흘렀을까. 그녀석이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일청담 쪽을 가로질러 시계탑을 쳐다 본다.


그 : 근데 니 오후수업없다캤나?

나 : 어. 나는 오늘 끝났지. 어? 니, 오후 수업 있었나?진작 말하지. 몰랐다.

그 : 어, 아니다. 됐다. 벌써 시작했다. 쨋뿌리지 머. 


나는 꽤나  아쉬웠지만 하나도 안 아쉬운 척을 하며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며

"빨리 가자. 신입생이 어디 수업을 째노? 나갈 때 출석체크해달라 캐라. 니 착한 사람이다, 안 캤나?나도 인자 (버리고 온) 내친구 찾으러 가야 된다 " 하며 쿨하게 웃으며 그녀석을 일으켰다.

"그, 홍진경? 니는 친구 가뿐이가?맹날 붙어 댕기데 " 하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그렇게 반짝이는 봄날의 캠퍼스에서 우리는 손을 흔들 다음에 또 보자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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