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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Mar 22. 2022

그는 무엇이었을까? (3)

그가 사라졌다.

나의 20살의 5월 둘째 주 수요일.

봄비가 온 세상을 촉촉하게 적시던 그 날을 아직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언제부터였는 모르겠지만 비가 오는 수요일에는 어김없이 학교 앞 노점상 빨간 장미를 한 송이씩 말아서 큰 양동이에 내어 놓는다. 비가 오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이라는 노래가 있다나 어쨌다나. 혹 누군가는 슬픈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 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비오는 화요일의 빨간 장미가 진짜라고 하기도 했다. 유래는 어찌되었든 간에 화요일, 수요일 그 쯤에 날씨가 우중충하니 비라도 내릴 낌새가 보이면 어디선가에서 양동이에 담긴 빨간 장미들이 어김없이 길거리로 나왔다.

그날은 또 마침, 5월 8일. 비오는 수요일에 어버이날이라 빨간 카네이션과 빨간 장미들이 뒤섞여 거리가 온통 꽃길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미어캣마냥 캠퍼스를 두리번거리며 그의 흔적을 쫓는 일에 꼽혀 있었고

젠가 유행하던 <월리를 찾아라>처럼 나는 저어 멀리에 작은 점처럼 쳐지나가는 그녀석의 모습도 귀신처럼 찾아내 능력이 생겼. 그 작은 점 형체가 점점 드러나 확실히 그녀석임을 확인할 때까지 나는 기꺼이 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먼 발치에 그녀석을 찾아내어 확인하는 날은 하루종일 이유없이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았다. 또, 일주일내내 그녀석이 눈에 띄지 않는 날들일 계속 될 때면, 어디로 가버렸나?왜 눈에 안 띄이지?하며 온종일 그녀석 걱정 하고 있는 나를 알아채고는 괜히 울적해지는 날들을 보냈다.

그렇다고 먼저 연락을 해서

"너 왜 요즘 내 눈에 안 띄여? 어디야? 머해? 내 눈앞에 나타나 봐" 하고 당당히 물어 볼 용기도 없는 내가 한심해서 더 울적지곤 했다.


요즘에 딸들이 꼭 챙겨보는 드라마를 같이 보다보니 드라마 속의 18살, 19살의 그 어린 주인공들은 참으로 야무지게 자기 속마음을 조목조목 솔직하게 잘도 털어 놓던데, 20살의 나는 왜 그렇게 고구마 100개마냥 답답했을까?

솔직하게 내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 그렇게도 부끄 자신이 없었을까?렇게 멀리서 몰래  지켜보며 즐거워 하는 것도 차마 들킬 용기가 없을까.


들키든 말든 그냥 솔직하게 그녀석에게,

"안경쟁이들만 가득할 줄 알았던 우리 학교에한껏 깔롱직인 니가 너무 신기해서 계속 쳐다보게 되었어. 그렇게 계속 쳐다보다보니 어느새 니가 궁금해졌고 너도 꼭 나와 비슷한 사람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너를 더 알싶어지고 그러다가 어느새 이렇게 너를 좋아하게 되어 버." 라고 20살의 나는 왜 속 시원하게 털어 놓지 못했을까.




그날은 쭌의 남자친구와 그의 무리들이 우리학교로 놀러를 왔다. 그때의 쭌은 고등학교때부터 사귀던 구가 있었다고 했고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나, 만났다가 헤어졌다나, 암튼 그랬는데 마침 그 순간에는 쭌의 남구가 놀러 왔다.

그들 무리와 초저녁부터 어디선가 촉촉한 봄비마냥 소주나 맥주를 들이켰겠지. 같은 날인데 바로 그 전의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20살 봄의 나는 그녀석 주변으로만 맴돌며 선택적인 기억만 가진 채 살고 있는 사람처럼.


어떻게 촉촉하게 취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그날 어수룩한 저녁에 북문앞 도로변에서 가장 깔끔하고 시설이 좋기로 소문이 난 노래방에서부터는 다시 선택적으로 기억이 또렷하다. 쭌의 무리들과 최신곡을 신나게 불러제끼던 중에 삐삐가 왔다. 학교근처 번호같은데 엄한 선배들일까 싶어 연락을 하지 말까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데 살짝 취기가 있는 듯한 그녀석의 목소리였다.

" ?나는 북문서 맥주마시는데 온나." 하는 그녀석에게 마치 벌써부터 약속이나 한 듯이  들떠서 쭌무리  마주친 누군가에게  먼저 간데이~ 하 간단히 인사를 해 달라하고서 급하게 자리를 떴다. 

촉촉한 알코올의 효과로 그녀석에게로 가는 길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이 근처에 웬만한 술집이라면 다 가보았는데 입구에 아무렇게나 칠해진 페인트가 으쓱하고 분위기가, 헝크러진 빠마머리를 흔들어 제끼는 헤비메탈신봉자 댓명이 병맥주를 병째 들이키고 있을 거 같은 주집에 그가 있다.

꼭 술도 지같은 데 먹네, 하며 문을 열었다. 그래도 그것마저 괜히 멋지게 보인다고 씨익~ 웃으며. 입구 바로 앞에 그녀석과 또 그 친구 둘이서 어울리지 않게 어두운 표정을 하고서는 심각하게 앉아 있다. 머쓱해서 가만히 쓱 옆에 가서 앉았다.


나를 보며 실없는 웃음을 건네며 그 녀석은

"어, 진짜 왔네?" 다. 아, 또 이런 식이다.

설레는 맘으로 달려온 나의 꽃길을 사뿐히 즈려 밟아주는 이녀석에게 나는 대체 왜 꼽혔을까!

"야, 니가 오래매?" 하며 조금 삐친 를 내며 테이블을 둘러보니 3000cc 피쳐는 벌써 텅 비었다.

"술은 더 없냐?" 하고 며스레 물었다.

" 아, 술?너랑 술 한잔 해야 되는데 술이 없네. 아, 우리 아침부터 이러고 마시고 다니느라 돈도 없고 그러네." 한다.

아놔, 이녀석들 또 이건 머지? 살짝 기분이 언짢아져서

"일어 나는 분위기였나?야, 그러면 나는 머하러 불렀냐? 신나게 노래부르고 있었는데, 치. "

"그러게 말이다. " 하는 녀석의 한숨이 더 언짢게 느껴져 갑자기 술이 확 깨는 듯 했다.

"야, 돈도 없고 술도 없는데 버스 끊기기 전에 빨리 집에나 가라. 일어나라." 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조금 더 밍그적거리면서 그녀석이 머라고 하려옆에 더 앉아 있어볼까, 나한테 돈이 얼마나 있지? 맥주피쳐 하나는 시켜줘볼까? 20살의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은 잠시 벗어던지고 살짝 고민하긴 했지만, 가득이나 한심한 미어캣일상이 된 내가 더 우스워지 싫어서 실날같은 마지막 자존심을 부여잡고 마치 나한테 말하듯이 단호하게 "에 가자. " 라고 되뇌였다.


다시 입구 가서 천천히 우산을 켜고 의도적으로 천천히 나서려는다행히 그녀석들도 쭈뻣쭈뻣 내 뒤를 따라다. 두운 밤하늘 올려다 보며 

"아, 비가 오네. 아, 돈도 없고 술도 없고 우산도 없네." 하는 녀석이 얄미워져서 휙 고개를 돌려 째려 봤다.

"야, 화났다. 화났다. 진짜 화났다. 그만해라. 인제" 라며 둘이곤대는 척하지만 다 들리게 키키덕거리면서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우산을 씌워 주지는 않았다. 오늘따라 3단으로 접히는 고급져 보이는 흰색 톰보이우산을 챙겨오길 잘했다 싶었다.

다시 쭌네 무리로 돌아갈까 고민도 했지만 재네들 가는 거는 봐야 할 것같고 저렇 버려두고 다시 무리에 끼여 어깨춤을 들썩여봐도 신이 날 거 같지도 않았다. 이 바람에 나도 간만에 버스 끊기기 전에 일찍 집에 들어가효도나 하자 싶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니까.



모퉁이 편의점을 돌 무렵이었다. 그녀석이 부른다.

" 야, HJ야.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해도 되나?" 목소리 진지하다.

"어?"

이녀석이 머라고 할지 1도 상상이 안 되서 또 불안하다. 무슨 부탁이냐고 물어 보아야하나.

아, 그냥 생까고  수작질을 모른 척하고 그냥 갈까말까. 잠시동안 별별 고민을 다하는, 그런 내 고민은 사뿐히 쯔려밟고 건네는 이녀석의 부탁은

"우리 저 편의점에서 마지막으로 담배 하나만 사주라. 우리 진짜 집에 갈 차비도 없다. 오늘 집에 걸어서 가려고. 아침에는 도착하겠지." 한다. 잉~


뭐지? 진짜 이건 뭐지? 갑자기 뒷통수를 한 대 후려 맞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미어캣이 되었기로쏘니, 담배라니...

아,  녀석, 너 진짜 내가 편하고 만만하고 동네 지나댕기는 xx친구같이 느껴졌구나? 너 지금 나한테 삥뜯냐? 하고 욕해주고 싶었지만 분을 삭히고 어이없다는 표정한 번 날려주고 그대로 샛길로 들어가버렸다. 마구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보다  속상함을 들키 않려고 애써 태연한 하려는 마음이 더 먼저 밀려 왔다. 씩씩거리는 뒷모습도 들키지않게 태연하게 걸었다. 그냥 없는 일, 없던 사람치자. 그래, 나는 할 수 있어. 그냥 20살일 뿐이잖아. 화이팅을 외치며 모퉁이를 가로질렀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아직도 시끌벅적한 북문 앞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이 녀석들  따다. 그녀석네는 시내를 지나서 가야해서 우리집과  반대방향이라 이 찻길을 건너면 안 된다. 그냥 무시하고 조금 빨리 걸어서 버스정류장도착해 모른 하며 버스를 기다려 보지만 도저히 아무렇지 않지가 않다. 속이 상했다.

저녀석은 내가 참 우스웠나보다라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꽉 찼다. 그런데 화를 내지도 못하겠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기도 못하겠는 내가 더 답답해서 속이 상했다. 녀석들은 머라고 하염없이 실없는 소리를 떠들어대며 주변을 맴돌았지만 대꾸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 지금 내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집중했다. 무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를 속으로 몰래 조금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를 무시하고 있다고 그냥 나혼자 결론을 내렸다.


그러다가 저 녀석들도 잠시 조용하길래 이제는 가버렸는가 싶는데 버스를 기다리던 주변사람들이 웅성웅성대는 느낌이 들어 슬쩍 뒤를 돌아다 보았다.

아! 어처구니는 두 녀석들이 류장 쪽의 북문 담벼락 위에 올라 가려고 키가 큰 친구 아래서 받치고 키가 작은 그녀석 올고 용을 쓰다가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고 아, 머 그 진상짓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아, 진짜, 왜 저래. 아, 시고 머고, 잠시 진짜모르는 사람이고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아, 버스는 왜 안 오는 거야.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후에 그녀석이 부른다. 진짜 진짜 창피했지만 빨리 대꾸해주지 않으면 창피한 시간들이 더 길어질까봐 얼른 뒤를 돌아다보니, 북문 담벼락 위에서 흘러 내리던 하얀 장미를 두 송이 꺾어  앞으로 내민다. 엥? 이건 또 머지?

잠시 하얀 장미가 늦은 봄날의 밤공기에 반짝이며 흔들렸다. 방울이 맺혀 도로록 굴러간다.

굴러다니는 빗방울처럼 도대체 어디로 튈 지 모르겠지만 해맑은 그녀석에게 나는 가만히 이게 머냐는 눈빛으로 쳐다 보았더니

"자~ 하나는 너 하고, 하나는 너네 어머니 갖다드려라. 오늘 어버이날이잖아. " 하고 씨익 웃는다.

"다음 번에는 빨간 장미로 제대로 께. " 한다.

잠시 이 상황이 먼가, 이걸 받아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데 마침 우리집에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더 망설일 틈도 없이 후다닥 뛰어서 버스에 올라 탔다. 창밖으로 그녀석들이 보지만 고개를 돌렸다. 런 혼란스럽고 돌발적인 상황을 나는 잘 못 견디어 낸다. 창밖으로 그녀석이 멀찍이 사라짐을 확인하고 나서야 숨을 가다듬었다.

생각을 좀 해보자. 이럴 때 나는 대체 어찌 대처해야 하는가 버스안에서 계속 꼽씹어 보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말자 공중전화 박스로 향했다. 이 기분이 또 어설픈 꽃바람 속에 사라지기 전에 할 말을 해야겠다 싶었다. 집에까지 다가 마음이 또 흔들릴 거 같았다. 삐삐번호를 꾹꾹 눌렀다.

할말을 정리를 좀 할 걸. 당황하면 버벅대고 말을 잘 못하는 내가 진짜로 싫다. 삐~

"야, 너는 진짜 내가 머로 보이냐? 내가 그렇게 우스웠냐? 내가 그렇게 한가해보였냐? 니눈에 내가 그렇게 한가해보일지 몰라도 내가 그렇게 니 담배심부름이나 하는 무시를 당할 그런 한가한 사람은 아니다. 진짜. 이럴꺼면 앞으로 나한테 연락하지마라." 하고 진짜로 어설프게 씩씩대며 다다닥 거리고 끊어 버렸다. 아, 쪽팔려.


새벽까지도 쪽팔리는 기분에 잠이 오지 않는다. 아, 그녀석이 내가 얼마나 우까? 밤새 오만상 웃겠지. 삐삐음성메세지를 지우는 방법은 없나?그녀석 비밀번호뭘까? 별별 생각에 밤을 꼴딱 새울 판인데 아, 이녀석은 잘도 자는지 연락도 없다. 진짜 화가 난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쯤인가, 4시쯤인가 내 삐삐가 울린다. 그녀석이다.


"햐, 인제 집에 도착해서 음성들었다. (진짜로 걸어서 집까지 갔나?) 기분 나빴으면 정말 미안하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적막) ...... 인제 니한테 진짜로 잘 하께. "

내 귀를 의심했다. 다시 듣고, 또 듣고 들었다.

 인제 니한테 진짜로 잘 하께.

이건 머지? 이 말은 사귀는 사이에서 으레 사랑움을 하고 나하는 해의 말이 아닌가? 친구 사이에도 앞으로 잘 할거라 말을 했던가. 내가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는 건가.

이게 그 그그그 그린라이트라는 건가?

20살의 나는 연애다운 연애를 못 해봐서 그런지 나는 분명히 그의 음성메세지 그린라이트로 받아들다. 아니, 그렇게 받아 들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그녀석의 뒷통수를 찾아 낼 때마다 내가 먼저, 내 마음이 그녀석보다 훨씬 먼저 성큼 한 발을 내어 저 앞까지 먼저 나가렸으니 나는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기다렸다. 그녀석의 발걸음도 언젠가는 천천히라도 내 쪽으로 다가와주기를.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거 뿐이었다.

내가 먼저 나아가버렸으니.

그녀석의 발걸음의 방향은 알 수가 없으니.


그런데 이제 우리는 함께 걸어나가는 걸까?

걸음의 방향은 서로 다를 지도 모른다. 사실은 나도 그녀석을 그저 쫓아 쳐다 보기만 해봤지, 그녀석과 함께하는 일상은 어떤 상상도 그려지지가 않았다.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일단은 어떤 방향이든 함께는 하게 될 거 같았다.

그날 새벽에 나는 처음으로 나의 20살도 연하게나마 핑크빛로 물들 기대에 부풀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2주일이 지났다.

곧 내일이라도 연락이 올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 담날은 피곤했나 부지. 몇 시간을 걸었을테니.

래도 그  날쯤에는 머라고 연락하겠지. 우리의 방향이 명확해지겠지.

나와 같은 방향이든 아니든 나는 , 받아들이겠다 마음을 먹었다.


한데,

그녀석이 사라졌다.

캠퍼스 어디에도 그녀석의 뒷통수가 보이지가 않는다.


아무리 궁금해도

그래도 내가 먼저 연락해보지는 않으리라.

절대.

니가 더 잘한다 했으니까.

술김에 한 실없는 소리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나는 무슨 착각을 한 걸까.


그녀석이 사라진 지 3주쯤 되어가는 술에 취한 어느 밤에

삐삐와 전화를 해보았다.

계속 해 보았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

진짜로

그가 사라졌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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