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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Mar 29. 2022

그는 무엇이었을까?(4)

그가 나타났다

그가 사라진  달이 지났다.

나는 또 삐삐번호를 눌러본다.

아무런 답신이 없을 것을 알지만 그냥 눌러본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 방학이 지나갔다.

2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캠퍼스 그 어디에도 그는 보이지 않는다. 

휴학을 했다는 소문만 건너 건너 전해들었다.


어느 날엔가는 한 번 술에 취해 그녀석의 집으로도 전화를 해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냥 소식이라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언젠가 그녀석이 집으로 전화하래서 누나가 바꿔 준 적이 있었는데, 누나도 같이 사라져버렸나. 온 가족이 다 사라진걸까.

아니면 온 가족이 같이 마치 짠 듯이 나를 피하나. 내가 스토커가 된 기분이다. 그냥 아무 일이 없다는 것 정도만 알려 주는 것도 안되냐!

아무일없으니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고 해주는 것도 안되냐! 그럼 그의 흔적을 찾는 일 따위는 미련없이 어치워 버렸을 것이다.




미련해빠진 내가 너무 싫지만 그래도 시간은 미련하게도 꼬박꼬박 흘러 다.

새학기가 시작되온 세상은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었 나도 미련만 떨고 있을 수는 없으니 수업도 듣고 시험도 쳐내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MT도 가고 축제도 하고 수업째고 낮술도 하고.

가을의 단풍잎 빛깔만큼이나 다채로운 진짜 대학 해나갔다.


겨울이 지나 2학년이 되기 전에 학부에서 진짜 전공이 결정되어졌고 한가하게 그녀석의 뒷통수나 찾을 여유가 없는 나날들이 이내 닥쳐왔다.

전공. 진로. 직업. 미래의 나에 대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숙제같은 고민들 속에서 나의 20살은 그저 하루하루를 베짱이마냥 술이나 마시고 자잘한 유흥 고민 따위는 잠시 접어두는 한없이 얕고 즐거운 길을 택했지만, 현실은 늘 나의 발목을 잡 그 얕은 즐거움마저 마음 놓고 즐거울 수만은 없는 모순의 길을 걸어 갔다.


2학년이 되면서 공익요원으로 군복무를 하던 오빠 복학하게 되었고 우리집은 대학생이 2명이 되었다. 넉넉치 못한 우리 형편에 대학생 둘은 누가봐도 버거웠다. 리를 해서 대출을 내는 일따위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대도 말렸을 것이다. 더이상 빚쟁이인생은 싫었다. 나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엄마에게 휴학을 하겠다고 했다.

딱히 오고 싶었던 대학도 아니었고 그저 성적에 맞추어서 간 대에, 크게 비젼이나 진로가 뚜렷한 학과도 아니였던 지라 미련도 없었다.

또, 두 대학생 중 하나가 학업을 잠시 쉬어야한다면 오빠보다는 내가 나을 것 같았다. 이 IMF시절에 25살의 남자 휴학생이 돈을 벌 일은 몸을 쓰는 험한 일 뿐일 것이고 나는 머라도 하면, 몸을 쓰는 험한 일을 하지 않고도 학비정도는 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빠는 빨리 졸업을 해서 제대로 된 취업을 하는 것이 내 인생에게도 훨씬 득이 될 것이었다.




휴학신청서를 낸 초여름에 영천서 자취를 하며 등하교를 하던 친구네에 합숙을 갔다. 그 시절 우리들의 합숙이라함은 어디 만만한 - 주로 자취를 하는 영천 친구네 였지만- 곳에서 몇날며칠씩 아무 계획없이 술먹고 웃고 떠들다가 지겨워지면 다시 각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앞으로 학교 밖에서 쳐질 진짜 성인으로써 내 앞날의 불확실함과 불안함 친구들과  고 떠들다 보면 그냥 전부 다 아 이유없이  잘  같은 어이없는 마법에 걸릴 수가 있어서, 이 무모한 합숙 나는 좋았다.


합숙한지 3일째쯤 되던 날인가에 작은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그때까지만해도 작은 언니가 나에게는 엄마보다 더 겁나고 정신이 번쩍 들게하는 존재였던지라, 잔득 긴장하며 뛰쳐 나와서 알콜끼 쫙 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니 어디고?"

"영천. 학교 친구 집에 놀러왔다."

"언제 오는데?내일은 오나?"

"어, 내일 간다."

"내일 면접보러 가야 된다. 점심때 연락하께. 이력서 한 장 쓰고. 화장도 좀 하고 옷도 단정하게 입고. 옷은 있나? 한 벌 사줄까?"

"아이다. 있다."

"그래. 내 동생인거 아니까, 그냥  는 거지만 형식적으로 인사는 해야 된다. 적당히 잘해라. 알제?"

백화점부터 시작해 화장품회사에 8년째 일하던 작은언니가 작은 화장품회사 대리점나를 소개시켜주어 면접을 보기로 했다.

미없는 생활이 무료해져서 슬쩍 질릴 때쯤이었는데 빠져나갈 이유가 생겨 다행이었다. 통화를 끊고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답답한 내 마음처럼 밤하늘도 참 깜했다.

 

그러다 문득, 왜 하필 그때였는지 삐삐 음성메세지가 확인하고 싶어졌다. 딱히 기다리는 연락도 없고 같이 합숙중인 친구들 말고는 찾는 이도 없었는데 말이다. 

(이때 PCS폰이라는 휴대폰이 처음으로 등장하면서 삐삐에서 PCS폰으로 갈아타던 시기여서 사용하던 삐삐는 아직 내 폰번호를 모르는 지인들을 위해 집에 두고 가끔 음성메세지만 확인하던 때였다.) 


마치 나의 앞날처럼 깜깜한 밤하늘 아래서 확인한 음성메세지에 떡하니 그녀석이 있었다.

사라진 지 딱 1년하고 한 달만이었다.

삐~

"나 JH다. 잘 지냈나?(또 적막...) 보고 싶다."


JH? 그게 누구드라, 하고 벌써부터 살짝 낯설어지고 남을 시간이다. 20살의 1년이라는 시간은 그렇다.

런데도  음성메세지 한 문장으로 갑자기 내 온 시간이 다시 1년 전으로 온전히 돌아간 기분이었다. 얼른 메세지에 남겨진 번호를 확인해 바로 전화를 했다.

역시나 그였다. 그의 목소리가 확실하다.

살아 있었냐고 어찌된 일이냐고 다그쳐 물어보아도 그녀석은 그저 웃기만 하고 만나서 얘기하잖다.


그동안 부산에 있었다는 힌트만 건네며 다음날 바로 만나기로 했다. 아, 그래서 연락도 안되고 그렇게 찾아도 찾아지지가 않나보다.

부산에는 왜 갔지? 재수라도 했나?

다시 내 머리 속에는 금세 그녀석으로 꽉 들어찼다.

 다음날 아침 일찍 대구로 가는 첫 차에 올라 탔다.

그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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