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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Mar 29. 2022

그는 무엇이었을까?(5)

1년만에 재회

저 멀리 그녀석이 보인다.

여전히 한껏 멋을 내었다.

한참 멋쟁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아이스진에 연한 회색 반팔 니트티를 입었다.


여전히 우리학교 안에서는 이렇게 화려한 -화려하다 못해 저멀리서도 눈에 띄게 튀는 차림은 그가 처음이다. 단순히 흰색에 가까운 아이스진을 입은 멋쟁이 신입생 후배는 보았어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라데이션으로 점점 흰 빛이 짙어지는 이런 특이한 아이스진은 또 처음 보는 것 같다. 티셔츠도 멋을 낸 듯 아닌 듯 자연스러 굵은 니트 조직의 짜임이 시원해 여서 참 특이하게 그와 잘 어울린다.

얼굴은 살짝 그을려서 더욱 건강해보인다. 부산의 바닷사나이가 다 되었나보다. 웃는 모습은 처음 내 이름표에 이름 묻던 그 때와 꼭 같다.


근처 경대후문에서는 나름 가장 분위기가 그럴싸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밥때는 늦고 그렇다고 거나하게 소주 한 잔 하기에는 이른 애매한 시간이라 가볍게 맥주 한잔씩 하기로 했다.

그는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나는 그의 생사를 물었다. 그 동안 그녀석은 운동도 하고 인생 공부도 하고 그러고 지냈다는 허된 소리를 해댄다.


그러는 그 잠시의 시간 사이에, 그동안 이상리만큼 집착하며 궁금해했던 그의 안부가 확인되자, 그에게 가졌던 내 우낀 집착과 사랑인지 궁금증인지 정인지 우정인지 정확하게 모를 그 정체불명의 모든 감정들이 바람이 꽉 찬 풍선이 펑 터지듯이 스르르 펑!하고 모두 빠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기분이 몹시도 편안해지면서 지난 일 년의 시간이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그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지난 일년동안 그의 행적은 정확히 알 수는 없고 그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는 더더욱 모르겠지만,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 또한 시간의 힘일까. 그의 안부를 확인하고 나니 긴장감도 같이 풀려 버렸고 그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않았다. 그렇게 유쾌하게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편안해진 내 눈에 비로소 그의 화려한 아이스진이 아닌 그녀석의 목에 은빛손톱깍이 줄처럼 동글동글 이어진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 니 그 목걸이, 그거 먼데?"

아, 참. 나는 진짜 바보멍청이다. 이게 그제서야 보이다니.

"앗, 이거 속에 숨겨났는데. 아무것도 아니다."

무릎을  쳤다. 이 바보, , 멍청이, 나 자신아~

"그거 군인들 목걸이 아니가? 야! , 군대간 거 였나? 아, 진짜. 근데 왜 말을 안하노? 군대 가는 거도 비밀이가? 니는... " 원망스런 내 외침에 그녀석은 태연하게,

"아, 군바리인 거 절대 안 들킬라 했는데. 내 군바리 티 나나?" 바리 티가 나는게 뭣이 그리 중한디,

"아니, 목걸이줄 그거 안 보였으면 나는 계속 몰랐을 거다. 내 진짜 디게 눈치가 없는갑다."


이제서야 사라진 그 일 년이 제대로 설명이 되었고, 그날의 빈 맥주 피쳐컵과 담배값, 하얀 장미 두 송이가 제대로 짜 맞춰 들어가는 것 같았다.

헛 웃음이 나왔다. 렇게 그를 찾아 방황하던 내 20살의 일 년이 정말 풍선처럼 푸슉~ 하고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참으로 이렇게 희안한 녀석과 엮여서 그 일 년의 시간을 그렇게 그를 찾아 헤매고 다니다니.


그로부터 이어진 그가 겪은 극한의 군대 생활기는 계속되었지만 나는 듣는둥 마는둥 그동안 그를 찾아 헤매던 내 년의 시간들에게 계속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희안하어이는 없긴 하지 속상하고 억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이해와 납득이 가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부산에 있는 교도소에 자대배치를 받았더랜다.

"머?교도소에서 군생활을 한다고?범죄자들이랑 같이 있으면 무서웠겠네. 안 무섭드나?"

"말마라. 씨. 범죄자보다 선임이 더 무섭다." 하는 그녀석.

며칠 전입대한 지 1년 만에 첫 휴가를 나왔고 내 생각이 나서, 기대도 안하고 1년 전에 삐삐번호로 연락을  보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졌다고 설명을 한다. 그런 그녀석에게,

"뻥~치시네. 다들 보니 6개월만에 휴가 나오더만. 공군들은 지긋지긋하게 휴가나오던데, 왜 니만 1년 만에 휴가냐?"

"내가 니인데 뻥을 머러 치노? 와~ 첫 휴가때 누가 탈옥을 시도하는 바람에 휴가도 못나가고 잡히가 내 진짜 힘들었었다."

또 이어지는 기합과 열나게 두들겨 맞은 이야기를 참 실감나게 하는 그녀석.


복귀 전에 우리는 한 번 더 보기로 하고 그날은 그렇게 모든 의혹을 해결하고 일찍 헤어졌다.

 년만에 뻗고 잘 수 있을 거 같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가 돌아왔다. 근데 돌아온 것이 아니다.

그는 또 돌아가야 하니까.

그래도 어디로 돌아가는지, 그 방향을 알게 되니 나는 이상하게 더 이상 그가 궁금해 미치겠지는 않아졌다.




두 번째는 그의 그 친구와 쭌과 넷이 함께 만났다. 요번에는 나도 친구 데리고 왔다며 의기양양하게, 넷이서 그녀석네 집 근처 투다리로 갔다. 그러다가 쭌은 다른 선약이었던가 다른 중요한 썸이 있었는지 전화를 받고 사라졌고 또 우리 셋이었다. 나는 그새 그 친구와도 에법 친해져서 셋의 시간도 꽤나 즐거웠다. 갑자기 그녀석의 군대 고참이라는 사람의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같이 휴가를 나온 고참이 근처서 술을 먹고 있다는데 여기로 온다나만다나 한단다. 그녀석은 몹시 불안해 하는 표정지으며 잠시 다녀오겠다고 하고서 다시 그녀석은 사라졌다.


그리고 친구과 나는 갑자기 둘 남겨졌다. 그간의 내적 친밀감으로 어색하지는 않았고 둘이서 계속 즐겁게 수다를 떨며 술을 마셨다.

리고보니 사실 그동안 내가 그녀석에게 꼽혀 있느라 그 친구는 자세히 살펴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제서야 다시 보니 문득 그 친구가 평소에 내가 이상형이라고 정해놓은 몇가지 규칙에 더 들어 맞는 남자사람이었다.

못되고 날카롭게 생긴 그녀석과는 다르게 그친구는 착한 인상에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성격좋은 눈웃음을 짓는, 내가 좋아하는 곰돌이상의 남자였다. 또 키도 183센티는 족히 넘어 나와 비등비등한 짧은 다리를 지닌 그녀석보다는 훨씬 크고 어깨도 넓어서 그 친구가 더 내 이상형에  가까웠다. 헌데 나는 그동안 왜 그 친구는 1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문득 둘이 남겨져도 하나도 어색함없이 우리는 대화도 자연스레 잘 이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속으로 그녀석을 기다렸다. 그 친구는 그냥 그녀석의 친구였다. 나에게는.


그렇게 취기가 오른 나는 문득 그녀석이 또 사라졌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갑자기 화가 났다.

1년을 어설픈 그린라이트만 던져 놓고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더니 또 사라졌다. 울컥한 마음이 치솟았다.

나의 감정과 지난 나의 일년을 전혀 모르는 그 친구에게 나는 알콜이 가져다 준 용기로 나의 그녀석 이야기를 털어 놓아버렸다.


"내가 저멀리서 쟈만 보이면 그렇게 행복해하면서 지를 얼마나 찾아다니며 좋아했는지 아나? 니도 모르고 절마도 모를끼라. 하.. 근데 그렇게 사라져서 1년을 소식조차 없더니 1년 만에 나타나서 또 사라졌네. 또 사라졌어. 씨이~"

친구의 표정이나 감정변화를 살필 겨를도, 이유도 없이 나는,

"내가 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쟈는 진짜 하나도 모를꺼야."

하며 주인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 마음의 말들을 엉뚱한 데다가 늘어 놓으며 그녀석을 빨리 찾아오라고 쌩떼를 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술을 어찌나 마셔댄건지 아님 진짜로 두들겨 맞았는지 얼굴이 뻘개진 그녀석이 나타났다.

"어? 이번엔 안 사라졌네?" 


술을 깨기 위해서 우리는 좀 걷기로 했다. 초여름 바람이 기분좋게 살랑이는 공원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걸었다. 두류 공원으로 넘어가는 그 길은 누구라도 함께 걸으면 기분이 마구 좋아져서 무슨 일이든지 다 용서가 될 것 같은 그런 행복한 여름밤산책길이다.


내가 가운데 서고 두 녀석이 양쪽으로 서서 나란히 걸어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였는지, 왜였는지 나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어?누구 손이지? 하고 쳐다보니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손이 그녀석의 손이 아니라 그 친구의 손이었다. 그 친구랑 내가 둘이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이건 머지? 왜 내가 니손을 잡고 있니? 싶어 그녀석을 찾았다. 녀석은 나보다 조금 앞서서  뒷통수를 보이며 무심하게 혼자 걷고 있었. 아무리 내가 술이 취했어도 이건 아닌것 같았다. 아닌 것은 아닌 거다. 그래서 게 그녀석을 불렀다.


"야, JH아~ 너는 왜 혼자서 가? 이리와"

그녀석이 놀라 돌아보며 멈춰선다. 얼릉 반대쪽 손을 끌어 당겨 그에게 다가선다. 

그러면서, 그의 얼굴을 웃으며 쳐다보며

"야, 진짜 우끼지않냐? 내가 널 좋아했는데, 내가 진짜 널 그렇게 좋아했는데 내가 왜  친구의 손을 잡고 걷고 있냐?진짜 우끼네. 하하하." 하며 깍지  두 손을 그녀석 앞에 들이밀었다.

멍한 표정으로 아무 생각도 없어 뵈는 그녀석에게

"자, 너도 손 내!" 하며 혼자 있던 내 왼손을 그녀석에게 내밀었다.

자, 너도 내 손 잡아!


그렇게 우리 셋은 함께 손을 잡고 그 여름밤을 걸었다. 

"자, 신나게 흔들면서 가자. 우리 노래할까?" 하면서 나혼자 신이 나서 두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하하하 밤하늘에 대고 웃었다. 이 났다.

사라지지 않고 그녀석이 내 옆에 있는 그 밤이 마냥 신이 나고 좋았다.

나는 아직도 그 친구의 이름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 날 내 왼 손에 닿았던 그녀석의 손아귀의 느낌과 떨림은 어렴풋하 떠올릴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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