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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Mar 29. 2022

그는 무엇이었을까?(6)

마지막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그 여름밤은 갔다.

나는 그렇게 행복했던 그 공원산책길처럼 그녀석을 한 여름밤의 꿈처럼 이루지 못한 나의 첫사랑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그것을 사랑이라 할 수 있냐고 친구들이 놀려도 나는 차피 누구나 이루지 못 할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녀석을 첫사랑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나의 20살, 그때의 나는 첫사랑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집착을 부렸었으니까. 짝사랑도 첫사랑의 범주에 끼워 넣어주면 안되, 뭐.




휴학을 하고 잠시 화장품회사의 판촉사원으로 일한 경험덕분에 나는 간신히 내가 하고 싶은, 가고 싶은 길의 방향을 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뒤늦게 복학을  나는 마케팅공부를 하고 싶어져서 여러가지 알아 보던 차에 우리 학교는 복수 전공의 제도가 있어서 두 개의 학과를 동시에 공부를 하여 일정 수준의 학점을 인정 받으면 그 두 개의 학과의 졸업증을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나는 방황하고 길을 잃은 20살에도 학점은 제대로 받아 두어서 복수전공이 가능했다.

대신에 두 학과의 공부를 동시에 하느라, 게다가 가끔씩 복잡한 진짜 연애도 해주느라, 너무 바쁜 복학생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신입생일 때처럼 한가하게 어떤 녀석의 뒷통수나 쳐다볼 여유 없었다.


 바쁘고 초조한 늦은 4학년어느 날.

무슨 서류가 필요해서 오랜만에 학과 사무실을 가는 건물 안, 계단에서 그녀석과 딱, 정면으로 마주쳤다. 몆 년 만인지 기억도 나지를 않는다.

졸업 논문때문에 학과 사무실을 찾았으니 늦은 4학년 때였나보다 했다.

"안녕. 오랜만이네." 녀석이다.

나는 그 녀석을 바로 전에 알아 차려 금방 쳐다 보았지만, 그녀석은 내가 계단을 올라 오는 것을 한참이나 쳐다 보았을 법한 위치였다.

"어? 재대했나? 복학했."

"어, 그래. 딜 그렇게 바쁘게 가냐?"

"아, 학과 사무실."

"그래, 언제 한 번 보자."

"그래."

먼가 아쉬운 듯한 표정의 느낌적인 느낌을 지닌 채 형식적인 인사 하고 그녀석과 돌아섰다.

속으로는 여전하네. 모범생이 된 듯한 모습도  어울려서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하며 헤어졌다.




"언니? 어디에요? 오늘 학교 오셨어요?"

같이 졸업 논문을 쓰던 후배의 전화다.

"아니. 나 오늘 수업 없어서 학교 안가는데? 모레 목요일에 학교갈 거 같애. 왜 논문 머 대?"

"아니요. 그게 아니라, 우리 단대 게시판에 어떤 사람이 언니 찾는다고 대자보를 붙였어요. 학교 와 보셔야 될 거 같은데요?"

엥? 이거는 무슨 소리야. 학기를 돈 버느라 뒤쳐져서 친구들도 다 졸업을 해버렸고 , 다른 학과에서 뒤쳐진 나머지 공부를 따라가느라 아는 이 하나없는 전공수업을 혼자 다닌 지가 몇 학기째인데 이 외톨이 4학년인 나를 누가 찾는다는 거야? 거기다 대자보는 또 머야?


"누구지? 누구라고 이름도 없어?" 하고 물었다.

"아, 잠깐만요, 이름이 머랬지? 아, KJH. KJH라고 했어요. 언니 아는 사람이예요?" 옆에 다른 후배 몇몇들과 흥미진진하게 주고 받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석이다. 지난 달엔가 그때 마주치고 처음이다.

"어, 알지. 근데 머라고 적혔는데? 그대로 읽어  줄래?"

"○○학과 ○○학번 LHJ를 찾습니다.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자. 연락해라. KJH. 이렇게 하고 전화번호가 있어요. 언니, 이거 머예요?전화번호 불러 드릴까요?" 주변에 후배 서넛이 웅성웅성대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린다.

"와~ 좀 멋있지 않니?"

"언니 따라다니던 사람이래?머래, 머래?"

그 웅성거림에도 쿨하게 나는 별다른 언급없이

"아니, 번호는 되었고, 알았어. 고마워." 하고 끊었다.

사실은 내가 따라다녔다, 왜? 하고 싶었지만 후배들의 로망을 깨고 싶지 않았고 또 내가 지금 그런 시덥잖은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구구절절 사연을 추억할 때도 아니었다.


취업이 되지 않은 늦깍이 졸업예정자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 날도 나는 피씨방에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쓰며 우리지역 구인정보를 뒤지던 중에 후배의 전화를 받서 그렇게 쿨하다 못해 냉랭할 수 있었다. 련쟁이 답답해빠진 나를 각박한 세상이 이렇게 쿨하게 바꾸어 놓았다.

나름 우리지역의 최고 인재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번번히 우리 지역의 기업에서조차  전형에서부터 걸러지는 내 현실에 옛 추억이고 첫사랑이고 모두 과분했다. 웃으며 추억을, 첫사랑을 찾고 있을 한가한 팔자가 아니었다.


또한 그때쯤에는 일주일에 두 번정도 학교를 는데 ㅡ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마지막 학기에는 술꾼도시녀 일상으로 날려 버린 교양 과목 두   C, D 를 만회하려는 재이수만으로도 양 쪽 학과의 졸업 가능학점이 차고도 남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등교로도 충분히 졸업이 가능했다. 특히나 그 일주일에 이틀 학교에 더라도 원래 학과쪽으로는 말썽부린 졸업논문 말고는 갈 일도 잘 없을 때라서 후배들 연락이 아니였다면 학교에서 그 대자보를 내가  일도 어차피 없을 것이었다. 


렇게 멀리까지 와 버린 이 때에 그는 왜 나를 찾은 걸까? 솔직히 그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그는 무엇이었는지' 드디어 알 수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 소식을 전해들은 옆 학동기 병이 건너 건너 두어 다리면 그녀석 전화번호는 알아 낼 수 있다고, 알아봐 줄까하는데 '그가 무엇이지'는 너무 궁금은 하였지만, 그냥 냅두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그와의 타이밍이라면 나와는 너무 맞지 않았고 애써 맞춰 보려 해도 안 될 일 같았다.

이제와서 굳이 그냥 친구로 남겨 놓은 체 한 번씩 편하게 밥이나 먹고 술이나 먹는 사이가 되기에는 내 그 미련한 20살의 시간과 감정이 너무 아까워서 그저 그런 편한 남자사람친구 사이로 퇴색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내마음을 받아주겠다고 진지하게 사랑을 다시 고민해보자 하는 것은 더 우꼈다. 짜, 이제와서?

사실, 또 그 때에는 당연히, 나는 온 세상에 내가 최고라며 내 말이라면 죽을 것같이 굴던 착한 남자친구도 있었고 뿐만 아니라 남자친구가 있대도 가끔 만나달라고 집 앞에서 기다리는 남자도 두엇 있던 시절이었다.

 속에다 굳이 그녀석까지 끼워넣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석은 이루어지지도 않고,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모르겠는  아련한 첫사랑으로 자리를 내어 주고 싶었다. 

그게 딱 그녀석의 자리 같았다.

하나밖에 없는 내 첫사랑의 자리.


그에게 내 자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자리가 있기나 했을까, 억울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나도 주인이 없는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니 그에게서 내 자리를 찾아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기도 하다.

이렇게 조금 억울하고 조금 안타깝고 조금 아쉬운 풋내나는 사랑의 감정을 지닌 20살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로 하자.





그렇게 그와 나는 하든 원치않았든 끝까지 엇갈려 각자의 자리를 찾아 시간을 따라 나섰고 나는 어느새 결혼을 고 아이도 낳았다.

물론 그때 그 착한 남자친구가 아닌 또 다른, 한때 참 착하고 순수했던 그 오빠가 지금의 내 남편이 되었다. 그렇게 나름 파란만장한 사랑을 나누며 나는 내가 만난 최고의 한 남자에게 정착?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내 첫 신혼집 아파트 쪽문근처였다. 아직 간난쟁이였던 내 첫 딸을 노란 유모차에 태워 아파트 쪽문 쪽에 있던 시장에 나가던 길이었다.

이를 쳐다보며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가지르는 순간 반대쪽 모퉁이를 돌아가는 낯익은  뒤통수가 보였다. 아니길 바라면서도 그 뒤통수가 아파트 모퉁이 넘어로 완전히 사라지길 기다리며 천천히 걸어다. 그리고 그 뒷통수가 다 사라진 뒤에 다시 뒷걸음질쳐서 그 뒷통수를 확인했다. 그녀석이었다. 분명히 그녀석이다.


한때 나는 <월리를 찾아라>처럼 저멀리 점으로 보이는 그녀석의 뒷통수도 정확하게 찾아내는 능력을 지닌 덕분에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바로 10미터 앞그녀석의 뒷통수는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집 맞은 편 동으로 쓱 들어가는 댄디한 정장차림빵빵한 책이 든 서류가방을 든 뒷모습이 딱 학습지 선생님의 차림새 같았다. 이 동네는 학생이 유난히 많은 아파트라 흔하디 흔한 차림새이다. 아르바이트라도 하나보다.


혹시 나를 보았을까? 여기에 지금 이 노란 유모차를 미는 뒷모습의 여자가 나라고 상상이나 하겠어?

다행이다. 다음에는 화장이라도 하고 동네에 다녀야겠다며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웃으며 28살의 그 뒷통수를 마지막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도 없고 알아 볼 수도 없는 그의 뒷모습이겠지.

엇인지 정체 모를 사랑의 모습은 아마도 딱 러한 것일 거라 상상하며 내 첫사랑의 뒷모습을 웃으며 떠나 보낸다.


옛날 앨범에서 나의 20살과 그녀석의 뒷통수가 함께 담긴 희귀한 사진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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