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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Apr 29. 2022

만두국과 샐러드

오늘은 또 무얼 먹나.

누구나 매일 하루 한 번쯤은 하게 되는 고민이건만은 매번 고민하게 되고 늘 처음처럼 심각해지는 고민이다. 오늘은 또 무얼 먹나.


식구가 많아지면 의견도 많아져서 더 과열 심각해지는 것이 메뉴 고르기이다. 입맛들이 너무 다른 우리집은 웬만하면 취향에 맞게 각자 냉장고를 뒤져 자유롭게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긴 하지만, 외식이나 배달을 결정할 때는 언제나 대토론이 벌어진다. 매번 진심으로 심각하게, 열정적으로 고민하고 또, 그 열정에 크기만큼은 꼭 한결같이 허탈한 일이 메뉴고르기다.

허탈한 까닭은 격렬한 대토론의 결과이건, 대충 때우는 한끼이건 간에 먹고나믄 결국, 모두 똑같 빈 그릇만 남 뿐인데, 이걸 먹으려고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을 했나 싶서이다.


특히나 먹는 일에 진심인 사람과 한 집에서 20년 가까이 살다보니 그 허탈감이 더 해진다.

남편은 늘 먹는 일에 진심이다. 화가 나서 매운 것을 먹고 기분이 좋으면 맛있는 걸 사준다하고 화해를 청할 때도 음식으로 표현할 때가 종종있다.

나 또한 전에는 그런 부류의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사람과 살면서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먹고 사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단 사실을.

런 사람을 기쁘게 할 방법도 음식이지만 또, 괴롭히는 방법도 음식이다. 함께하는 식사를 거절할 때 가장 속상하는 단순한 사람이라서 괴롭히기가 쉽다.

단순해서 허탈하다가도 웃음이 나는 지점다.




아이들이 하나, 둘, 셋 등교를 하고 빨래더미를 꺼내서 수건을 게키며 믹스커피를 마신다.

지난주부터 코로나덕에 재택근무를 하게 된 남편이가 오전업무를 소란스럽게 처리하더니

"점심은 머 먹지?" 한다.

시계를 보니 이제 갓 10시를 넘겼는데 보통은 아침을 고민할 시간이다. 이냥반아~


오늘은 며칠간 한 여름같은 날씨에다가 지난 달 앓은 코로나덕분에 살짝 입맛을 잃은 나에게 상큼하고 깔끔하고 시원한 한 끼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오전이었다.

"그러게 뭘 먹지? 나는 요새 입맛이 없다." 하며 별 관심이 없는 체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단 듯이 남편은

"만두국 어때?" 고 명확한 의사표시를 한다.

"어... 사골 국물이 없는데?"

건 좀 오늘 이 아침과는 맞지 않다고 우회적으로 돌려 말해 본다.

"그냥 북어넣고 계란넣고 끼리지 머." 남편은 경하다.

'그래, 만두국 잡샤라. 내가 끼리 주께. ' 생각하며 냄비를 꺼다.


브런치 한 그릇 먹는 일로 또 이리저리 고민을 하고 논쟁을 벌이기 싫어서 그러자고 하고 나는 샐러드 재료를 꺼낸다.

두국은 딱 1인분치만 후딱 끓였다. 저냥반이 또 같이 먹으까? 만두 몇 개 먹을래? 떡도 넣으까? 계란은 풀으까? 후추는? 김치 넣으까? 하는 권유질이 싫어서 그냥 내가 끓이기로 했다. 남편은 하던 일이나 마무리하래니 싱글벙글이다.

한 식탁에 앉아 남편은 만두국을 차려 주고, 나는 오랫동안 방치되던 시리얼을 잔득 올린 샐러드 접시를 내려 놓으니,

"와~ 이거 먼데? 와, 혼자 이래 잘 해 묵기 있나?"

"헐~ 샐러드도 좋아하나? 이런 거 싫어하지않나?"

"아니거든. 나도 이런 거 좋아 하거든." 아이처럼 떼쓰며 본인 취향을 강조하는 반백살 남편에게,

"20년만에 이런 거(풀떼기) 좋아하는 지 처음 알았네." 다.

날도 따스해져 오는데 거운 만두국타령하던 양반이 먼소리람.




후루룩후루룩 쩝쩝, 와그작와그작 냠냠.

한 식탁에서 각자 그릇을 비우며 각해본다.

나랑 참으로 다른 양반이다.

한 때 유행한, 아직도 유행중인가? 아무튼 mbti를 신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나와 저냥반의 mbti는 정확하게 딱 반대였다.

어쩜 그리 맞는 게 하나도 없는지 나는 ENFJ이고, 저냥반은 딱 반대성향 ISTP였다. 같은 철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 마치 성향계의 대척점같이 우리는 성격유형의 가장 양끄트머리에 존재하는 람들이란 뜻이다.

어쩐지 내가 이리로가면 저리로 간다하고 내가 좀 놀고 싶으면 쉬자하고 내가 좀 피곤하 혼자 기운이 뻗치고. 참으로 다른 우리였다.

저냥반에게 mbti검사를 해준 딸들도 빵터졌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엄마아빠가 정반대의 유형 사람들인 것은 확실하다며, 역시 mbti는 과학이랬다.




만두국과 샐러드같은 우리들. 

성향계의 대척점같은 우리들.

 

지지난주에 아직 싱글인 미야가 일찍 결혼한 나를 신기해하며 결혼할 상대방은 보면 딱 알게 된다던데, 정말 그렇냐고 나에게 물었다.

젠가 딸들에게도 얘기해 준 적이 있는데 저냥반과 3번째만남의 택시안에서 나는 그렇다였다. (처음에는 못 생겼다고 안 만난다고  버티다가, 딱 10번만 만나보라는 주선자 언니의 손에 이끌려 3번째 강제 만남이었다.)

적당하게 맥주를 한 씩하고 나를 집에 데려다 주는 택시안에서 처음으로 내 손을 잡은 저냥반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또 손에 땀은 얼마나 흥건한지. 키가 188센티미터에 덩치는 산만하고 생긴 것은 소도둑놈같은 남자가 내 손을 잡고 부들부들 떨며 쿵쾅쿵쾅대는 심장소리가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모습이 얼마나 우습고 귀엽든지. 세상에 아직도 이렇게 순수하게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이런 사람은 왠지 손을 놓으면 안 될 거 같았다. 나와는 성향이 많이 달라서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결국에는 마지막은 이사람과 함께 하겠구나 하는 촉이 왔다.

결혼을 하는 방식이 조금 평범하지 않아 힘이 들었던 것 빼면, 언젠가는 이 사람과 함께 할 것이라는 예감으로 쭈욱 함께 해왔으니, 그것이 결혼예정자를 알아본다는 의미라면 나는 딱 알아 본 것이었다.


물론 남편의 의사는 모르겠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본인은 한참 결혼적령기라고 생각하던 남편은 자기 인생의 마지막 기회인냥 결혼을 갈구했기 때문에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보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서 그저 내가 생각한대로 상상하고 또 가끔은 이런 내 상상을 강요해도 또, 무던하게 그 상상을 현실화시키고 받아들여주는 도화지같은 사람이다. 그것이 속내를 드러내지고 나를 딱 알아 봐준 것인지 확신은 없어 뵈지만, 그런식으로 나의 감정선을 따라와주는 남편만의 방식을 나는 진심이라고 믿기로 했다.


결혼을 아예 고려하지않고 그저 남자대 여자로 20살에 처음 만났다면 이렇게 대척점에 위치한 우리들은 서로알아 보았을까? 궁금해진다.

만두국을 먹는 이 남자앞에서 샐러드를 와작와작 씹으며 가끔씩 만두국을 먹는 남자의 이야기도 남겨 보아겠고 다짐한다.

이 남자의 이야기는 만두국으로 시작해본다. 그러고보니 당신, 만두를 좀  닮은 것 같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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