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타일을 닦으며

타일닦기와 수학문제풀기의 공통점

by 이혜주

자가격리 2일차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로 인한 자가격리 2일차이다.

동거인으로 인한 자가격리는 딱 5일차이다.


모두가 걸려야 끝이 난다는 코로나가 결국 우리집에도 덮쳐 버렸다.

딱 이틀을 죽다 살아나서 내 생일 케이크의 초도 겨우 불었... 아니다. 이 시국에 생일초 불기마저도 사치이고 방역 수칙에 어긋나는 일이라 손바람으로 겨우 껐다.

이때까지도 우리는 양성인 vs. 음성인으로 격리된 일상을 사느라 영상통화를 통한 비대면 생일파티를 했다.


진즉부터 우리집에 첫 양성인이 양성된 순간부터 나는 의심증상을 똑같이 나누며 함께 아팠지만, 정작 내가 양성 판정을 받은 2일차, 오늘 오전에 나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을 빼고는 거의 정상 컨디션이 되찾았다. 회복이 꽤나 빠른 편인 강철 체력 덕분이다. 브레쓰~



정상 컨디션이 돌아 오자말자 인제 좀 살만한 지, 그동안 방치해 둔 욕실이 내 눈에 들어 온다. 나는 아직 국가에서 인정한 몹쓸 병의 환자이니 딱 요까지, 우리가 매일 대면해야할 세면대와 변기까지만 딱아야지 작정을 하고 욕실로 들어섰다.

검은 때가 잔득 낀 타일 줄눈은 오늘따라 우리가족을 휩쓴 바이러스의 주범마냥 증오스럽게 온통 두드러져 보인다. 딱 요기까지만 하던 내 손길은 점점 위로 아래로 대각선으로 넓어진다.

잠시 내가 코로나 확진 2일차, 보건소에서 관리까지 받는 환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타일을 닦으며 아픈 데도 이렇게 몸이 나 고된 데도 하는 이 일 인해 점점 깨끗해지는 욕실의 타일들 눈에 들어와서 흡족하다. 문득 이 고되도 하게 되어 마침내 내 기분까지 좋아지게 하는 일, 바로 내가 하고 싶 일이라는 것을 사소한 진리를 깨닫는다. 내가 좋아서 하는 타일닦기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힘들어도 하나도 힘이 들지가 않다.


최근에 이러하게 집중하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또 있다.

우리집에도 바로 코 앞까지 닥쳐온 코로나 덕분에 술꾼 도시 아주미의 일상을 잠시 덮어 둔 근의 울적한 나에게 또 다른 소소한 기쁨을 주는 일은 바로 수학 문제 풀기였다.

너무 쉬운 문제는 재미없으니까 심화 문제집을 있는 대로 골라서 닥치는 대로 풀고 풀고, 또 풀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은 허리가 아픈 데도 꾸불시고 앉아서 자꼬 풀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것은 단순히 수업 준비, 교재 연구의 업무 차원을 이미 넘어섰.


타일 닦기와 수학문제 풀기.

타일을 닦다가 갑자기 최근에 나의 힐링 포인트가 되고 있는 이 들 두 가지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둘의 공통점은 바로, 닦으면 닦을수록 깨끗해지는 타일들 눈에 띄게 반짝이는 내 욕실을 당장에 만날 수 있고, 또 풀면 풀수록 하나씩 해결되는 과정이 바로 내 눈에 보여지는 수학 문제 풀이처럼 둘 다 내 눈으로 바로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또 점점 좋아지고 나아지는 과정이 한눈에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애매하고 우유부단한 성격과는 다르게 모든 일에서는 명확하고 분명한 것이 좋은 나에게 이 둘은 분명 소소한 가져다 주기에 충분 작업이다.



세상의 모든 우울한 주부를 모두 지영이로 만들어 버린 어느 유명한 소설 마지막에서 주인공의 고뇌를 비롯하여 세상 모든 걱정 고민을 다 해결해 줄 수 있을 거 같던 정신과 상담의사가 등장한다. 정작 전문가인 그도 해결하지 못한 배우자의 울함을 그 배우자가 스스로 수학문제 풀면서 풀어 내던 부분에서 완전 크게 공감을 한 적이 있다.

그 유능한 정신과 의사의 우울한 아내가


엄청 재밌어.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 밖에 없거든.


하던 이 말이 나는 이 소설에서 가장 와 닿았다. 이 소설이 영화 되어졌을 때 이 부분이 사라져서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모든 게 내 뜻대로 제대로 돌아갈 때의 안정감과 평화로움.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한 평화를 얻지 못 할 때 오는 좌절감은 그 아무렇지도 않던 안정감을 잃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

안정된 나의 하루들을 살아갈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던지.

그, 그저 평화로운 하루들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쓰며 살아 가는 나에게, 소소하만 금세 전한 결과로 보답하는 타일 닦기와 수학 문제 풀이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20대에 일찍 육아를 시작하면서 느꼈던 좌절감과 단 하나도 내맘대로 되지 않는 육아의 스트레스들이 최근 코로나로 인해 다시 슬금슬금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또 욕실 타일을 닦으며 들은 무에 그리 거창할 일이냐싶은 이 소소한 행복들에서 정신의 승리를 이루어 내고 이 위기를 이겨낼 것이다. 드시!!! ㅋ


누군가에게는 더 스트레스일 나의 소소한 행복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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