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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Apr 22. 2022

19년산 침대를 버리며

"와~ 이거 머 이렇게 무거워~"

호기롭게 엄마를 돕겠다고 나선 둘째가 툴툴거린다.

"19년간 우리 가족 다섯의 덩치를 견디어내고도 멀쩡한 걸보니 튼튼하긴 진짜 튼튼했네~"

둘째와 둘이 낑낑대며 침대프레임을 분해해서1층까지 날랐다.


아부지께서는 오늘따라 열이 38.5도까지 치솟아 신속항원검사를 받았지만 어이없게도 음성 판정을 받고 둘째의 방에 격리중이고 덩치 좋기로는 우리집 1등인 첫째는 고3이라 아직 귀가 전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일복이 있다지만, 우리집에 살고 있는 닮은 덩치 좋은, 위에 두 분을 보면 나는 종종, 사람마다 타고난 게으복도 있는 것 같다. 힘 쓸 일들은 어찌나 그리들 쏙쏙 잘도 피해가시는지.

오늘도 역시나 퀸 사이즈 침대 프레임 2개의 처리는 말라깽이 둘째와 상대적으로 남편보다는 약한(...과연 그럴까?) 내가 떠맡았다.


19년 동안 사용하느라 스프링이 다 내려앉은 침대매트리스를 벼르고 벼르다가 지난 달에 큰 맘을 먹고 바꾸고 보니, 새 매트리스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침대 프레임눈에 걸다. 주문 받은 후 제작한다는 가구점에 침대프레임을 주문했더니 딱 한 달만인 내일 오전에 도착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니, 성질급한 우리 ENFJ 여자 둘이(나와 둘째) 또, 나서는 수 밖에.


실용성보다는 과하게 꾸밈이 많은 스타일이었던 지라 크고 무겁기만 한 프레임을 둘이서 낑낑대며 1층으로 옮  나니, 복잡하게 꼬여 있던 헤드의 문양이 왠지 나를 떠나기가 아쉬워 더 어지럽고 묵직하게 우리를 짖렀나 싶 생각이 다. 잠시 아쉬워하며 미련스런 발걸음을 머뭇대며 한참을 더 바라보았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내 것이 더 소중하기 마련이다.

비싸고 고오급진 넘의 물건은 아무리 넘쳐난다해도 하나도 부럽지가 않

낡고 오래된 내 물건은 이리도 아쉽고 버리기가 쨘하니 말이다. 힘들 때마다 기대어 쉬던 나의 쉼터를 떠나보내는 데 19년이 걸렸다.


이로써 우리집에 유일했던 나의 신혼의 흔적을 지닌 물건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마치 나의 한 시절이 떠나가버린 느낌이다.

이제는, 아직 막내가 어리다고 시간을 애써 갖다 붙여놓아봐도 더이상 나는 새댁이가 아니고 중년으로 훌쩍 접어든 헌댁이가 되었다.




2003년의 어느날,

"공주 침대가 아니면 결혼 안 할 꺼야!"

나의 이 고집에 우리는 대구시내의 안과 밖에 위치한 유명 가구거리거리는 몽땅 휩쓸고 다녔다.

물론 내가 원하는 화려한 디자인의 침대는 여기저기 널려 있었지만, 우리들의 빠듯한 예산 안에 - 정확하게는, 결혼 자금이라고는 1도 없이 쩌다보니 남편에게 빌 붙어 결혼하게 된 나의 예산안에 - 어 오는 착한 가격면서도 내가 원하는 화려한 앤틱 디자인의 침대를 찾아내느라 우리는 가구거리를 그렇 헤매고 다녔다.

결국에는 내가 살던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신암동 가구거리에서 저 녀석을 만나긴 했지만.


나는 혼수에는 욕심은 거의 없는 편이라, 냉장고도 작은 언니가 골라주는 대로, 티비 그당시 브라운관 만드는 회사에 근무중인  부가 구미에서 보내주는 걸로, 세탁기는 엄마가 권하는 적당한 걸로, 옷장과 화장대같은 가구들마저도 침대를 먼저 고르고 그저 그 침대의 색과 가장 어울리는 디자인의 저렴하고 무난한 가구들로 골다. 런데 유독 침대만은 포기를 못했다.

사람마다 다 결혼의 로망이 다르겠지만, 나는 벌써부터 침대라는, 나의 안락한 휴식의 공간을 결혼의 첫 번째 조건으로 여길 만큼의 결혼 생활의 피로도를 짐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은 러한 유형의 부정적인 철이 듦 아예 예상도 못 해본 해맑은 26살의 나는 그저, 공주가 잠들 거같은 침대에서 매일매일 잠들게 되면 나도 덩달아 공주같은 인생을 살게 될거라고 믿은 참, 그저 철이 없던 나이였다.


그런 나를 한때는 차암~ 착했던 그 오빠, 내 남편 지금에서야 보니 렇게 유치한 나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최선을 다 했었다. 나중에 결혼액자에 넣을 사진을 고르는데 몇 시간이나 고민을 하는 나에게 폭발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번번히 맘에 들지 않으면,

"이 결혼, 물러. 나 안 할 꺼야!" 하는 말도 안되는 고집도 들어 먹혔으니 그때는 진짜로 차암~ 착했던 오빠었나부다. 그때 그 착하고 순수하던 그 오빠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내가 헌댁이가 되어 그 오빠를 세월 속에 묻어 버렸을까, 그때 그 오빠가 먼저 사라져버려 나도 헌댁이가 되어버렸을까. 서로 먼저 변해버렸다고 툭탁거리고 싸워보았자, 닭이 먼저냐, 알 먼저냐와 같은 범주내의 문제일 뿐이다.

아마도 함께 손을 잡고 그 오빠는 저냥반의 길로, 나는 또 헌댁이의 길 들어섰겠지.




19년전, 신혼의 썰을 풀다보니, 갑자기 생각이 나서 쌩뚱맞게 덧붙이는 내용이긴 하지만...

2003년, 그때 저냥반과 나의 결혼 소식을 처음 접한 당시의 내 베스트프렌드 3인의 반응은 이랬다.

우선 그당시 자칭, 타칭 2인조라 불리우며 잘 놀아보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성실히 추구하던 쭌은 가장 먼저,

"왜, 왜~ 애?왜!" 였다.

왜 결혼을 하는가에서부터, 왜 저 남자인가, 왜 지금인가...까지 쭌은 계속 물음표였다.

그 의문의 반은 내가 너무 아까워서 더 능력있고 좋은 남자를 만나기를 바라는 맘이 반이었던 것 같고, 나머지의 반은 잘 놀아보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반쪽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가지 의문의 방향은 둘 다 나를 향한 것이어서 감사로웠다.

다만, 나는 어차피 하기로 마음 먹은 일에는 왜?라는 의문보다는 선택한 그 방향으로의 나아먼저 일 듯 어서 쭌의 의문에 하나하나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고 회피했었다. 쭌을 명쾌하게 설득할 방법은 몰랐지만, 나는 능력있는 남자보다 능력치가 기대보다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그 능력의 방향이 오로지 나를 향하는 사람 함께하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내 이성관이라면 해답이 되었을라나. 의 이 이성관에 부합하는  남자가 때부터 지금까지도 바로 저냥반이다. 론, 그간 산넘고 물건너 돌아돌아 도는 긴 결사항전의 전쟁을 치루고서야 깨달아 버린 사실이긴 하지만.


두번째로, 내 취향을 너무 잘 알고 있던 영은

"너는 그렇게 곰돌이를 좋아하더니 딱 곰돌이같은 사람이랑 결혼을 하네." 하며 나의 성공을 기뻐하며 웃었다. 

내가 곰돌상을 좋아하긴 하지. 좋아하는 거에 비해 곰돌상과 연애는 별로 못 해보았는데 최고의 곰돌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연애할 때에는 그렇게 못생겼다고 면박을 주었던 저냥반에게 결혼하고나서 7, 8년차 쯤원래당신은 진짜 내 이상형이었노라고 고백을 했다. 마치 나뭇꾼이 아이 셋을 낳은 선녀에게 날개옷을 내어놓듯이 말이다. 이제는 온전히 내마음을 오픈해도 거만해지지 않고 여전히 자상할 남자로 남을 때가 되었다면서. 러고서 셋째가 생겼나부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유흥세계에서 항상 반 발짝 정도는 거리를 두었던, - 그때는 가끔 깍쟁이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철이 가장 일찍 들었던 옥이는, 나에게 처음으로 축하라는 단어를 사용하 깊은 감동을 받게 하였다.

그렇다. 한때 참 착했던 그 오빠와의 결혼 소식을 알리고 나는 예상외로 옥이에게 처음으로 축하의 말을 들었다.

정확하게는 옥이말고는 아무도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었다. 다들 엥? 니가? 결혼을? 왜? 아직 어린데... 이런 반응이 먼저였다.

그런데, 옥이는 축하를 먼저 해주고 복잡한 내 마음속의 번뇌들을 함께 고민해주며 내손을 잡아 주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옥이의 마음이 나에게 고대로 전해져서 나는 그 감사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지금도 저 멀리 경기도도민이 된 옥이를 떠올릴 때마다 자주 그때의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19년을 살아가다보니 물건을 고르는 법도 강산이 두 번 바뀔 법한 세월에따라 나도 변했다.

가난했던 어릴 때는 저렴하면서도 화려해서 저렴한 티가 나지 않는 것을 선호했다면 히, 부자가 되지는 못 했지만 많은 구매의 순간들을 거치며 이제는 화려함보다는 심플하면서 소재나 기능성과 실용성이 더 중요해졌다. 

지난 달에 바꾼 매트리스 또한, 내 몸에 꼭 맞고 편안하면서 오동안 최소 10년 이상 사용 때까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지를 꼼꼼히 따져보며 고르게 되었다.

그래서, 19년 전에는 매트리스의 기능성 따위는 먼지도 모르고 그저 화려한 디자인만 고집하던 내가, 요번에는  기능성부터 먼저 따지는 진짜 침대를 고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오히려 레임은 그냥 가장 무난하고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실용적인 것으로, 예를들면 조명이 설치 되어있고 휴대폰 충전포트가 내장되어 있는지 먼저 확인다. 화려함 따위는 고려대상에서 아예 제외시켰다.

새 침대를 고르면서 19년 전에는 철도 없이 공주침대만 찾던 내가 언제 이렇게 자랐나하며 세월의 힘에 대견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겉모습에서 풍기는 화려함보다는 실속과 내실이 꽉 찬 사람을 가려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아직까지도 한참이나 미숙한 존재라 사람의 옥석을 가려내는 안목까지는 갖추지 못했겠지만, 물건을 보는 안목이 달라지듯이 어느 순간에 나도 옥석을 가리는 혜안이 생 것이라 믿는다.

아니다, 내가 먼저 옥석이 된다면 주변의 모든 이가 나에게로 와서 저마다의 빛깔로 가치로운 옥석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버려진 내 신혼침대는 까맣게 잊고 마트를 나서려는데 인터폰이 울린다.

"경비실인데요. 침대 가두리 버리셨죠? 그거 처리비용 7000원 입니다~" 하신다.

"네~ 하나 더 버려야하는데, 그거 내려놓고 같이 드리러 갈께요." 하고 대답하며,

, 7000원에 나의 신혼이 버렸다. 잘 가.


잘가라. 나의 공주침대야~ 너없이도 공주로 살아가 보도록 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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