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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Apr 25. 2022

한때 책벌레라 불리던 아이

나의 첫 딸은 한때 '책벌레'라고 불렸다.

책은 늘 세트로 한 질로 구입하는 나의 버릇은 첫 딸로부터 시작되었다.

새로 들여 놓은 새 책을 박스에서 꺼내 책장에 꼽기도 전에 우리 크니는 -우리가족이 우리집 첫째를 부르는 말이다. 막내가 처음에 큰누나를 저렇게 불렀는데 요즘은 우리 모두가 다 '크니'라고 따라부른다. - 새 책 박스 앞에 앉아서 박스째로 책을 펼쳐 놓고 읽어 대며 눈을 반짝였다.

리집에는 미취학용에서부터 초등용책들이 다양하게 많는데, 처분을 해도 해도 책이 많다.

이 책들이 요즘에는 거의 전시용으로 그 용도를 잃어버린 듯 해보이는데, 사실은 우리 크니의 책벌레 시절의 유품같은 책들이다.


크니는 이야기책보다는 사회, 정치, 경제, 철학 등 인문학 분야의 책을 좋아했다. 특히, 역사관련 책을 좋아해서 삼국유사시리즈에 꼽히기도 하고 그리스로마신화는 대표출판사별로 전집을 총 3 세트정도를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댔다. 그러면서 그리스로마신화의 주요 인물들로 대화를 하는 바람에 나도 대화에 끼이려고 같이 읽었지만 완독은 못했다.  시절의 크니는 늘 데미테르 덕분에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고 감사해했고 나쁜 사람에게는 "저런 하데스같은 녀석." 이라고 흉을 보.


렇게 많은 독서를 통해 절로 키워진 독해력과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학교공부는 그리 어려워하지 않고 늘 모범생의 자리를 유지해왔다.

얼마전에는 책보다는 늘 친구들과의 사교와 우정이 더 중요한 크니의 하나뿐인 여동생, 둘째를 걱정하며 자기가 예전에 다니던 논술학원을 꼭 보내라고 엄마인 나에게 마치 자기가 엄마 충고를 해 주기도 했다. 특히나 둘째는 어휘력이나 말귀 알아먹는 게 영, 상태가 안 좋아 걱정이 감치 국어학원부터 보내놓으라고 덧붙였다. 자기가 고등학생이 되어 보니 다른 거보다 독해력이 학습에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글을 많이 읽고 이해를 잘하는 덕분에 국어뿐 아니라 다른 과목들의 학습까지도 딴 친구들보다 수월하게 해낸다나 어쨌다나 하며 철이 든 체를 했다. 크니가 책에서 손을 놓았던 중학교 시절에 내가 그렇게 잔소리를 하며 논술학원에 보낼 때는 적장 본인은 시큰둥해하더니, 이제서야 도움이 되었다며 여동생의 미래까지 걱정하는 소리를 들으니 어찌나 우습든지.


책벌레였던 덕분에 우리 첫째는 늘 주변의 엄마들에게는 엄..아로 통했고 친구들에게도 아는 것이 많은 아이, 똑똑 친구로 통했다.

나또한, 공부보다는 오히려 제 또래같지 않는 말투와 많이 아는 것을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주려다가 잘난 체만 하는 아이가 될까봐 오히려 학습보다는 늘 기본 인성과 사교성에 대한 고민을 하며 키우는데 더 힘을 썼다.




이 아이가 책벌레가 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은 나의 어설픈 사연이 있다. 

또래보다 어린 나이에 혼자 이를 낳아 처음해 보는 육아이다 보니 나는 모든 것이 어설펐다. 아이가 우는 것도 처음 보았고 안고 업는 것도 어설펐다. 물론, 씻기고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하는 일도 엄마가 하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배웠다.

그런 나 당연히 갓난아기와 대화를 하는 법도 몰랐고 말을 할 줄 모르는 아기랑 웅얼거린다는 자체가 너무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다. 이 아이의 아빠도 살가운 성격이 아닌 지라, 우리 둘의 어른의 대화만 이어졌지, 아기에게 대화하는 법은 둘다 어설펐다.

늘 고요속에서 울음소리로만 의사를 표현하는 내 첫 아기와 둘이 지내다 보니, 27세의 어설픈 엄마인 나의 고민은 아기들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언어를 배울텐데, 이렇게 고요히 있어도 될까?걱정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때는 둘째, 셋째가 아기일 때처럼 말도 못하는 아기에게 자연스럽게 "오구오구, 맘마 먹었쪄요?"라든지, "시원하게 쉬하셨어요?" 라는 평범한 엄마들이 흔하게 아기들을 추글리는 혼잣말을 하는 것이 나는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 또한 살가운 성격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나보다.

이런 오글거림을 못 참는 성격때문에 혹시나 내 아이가 어설픈 육아 사람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지 못 하고 언어 발달이라도 뒤쳐지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심각하게 들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이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기였다.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는 아기에게 먼 책이냐 우습기도 했지만 나는 그 누워있는 아기에게 여러가지 동화책을 소리내어 읽어 주었다. 그러면 이 아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심을 가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더 재미있게 읽어주는 방법을 연구했다. 동화구연이라도 배우러 가고 싶은 심정이있다.


그렇게 아이가 자라다보니 걸음을 걷게 되면서 자연스레 나에게 책을 골라 들고 왔고, 말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자연스레 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자기 전에, 놀다가도 수시로 책을 읽어주었다. 헌데 이 아의 독서습관 책 한 권에 꼽히면 그 책을 하루에 10번이고 20번이고 읽어 달라는 것이다. 다양한 책이면 몰라도 같은 책, 한 권을 10번 이상씩, 남편과 내가 돌아가며 읽다보니 너무 지루하고 힘이 들어서  천 번쯤 읽었을 때에는 나는 그 책을 숨겼다. 으로 숨긴 책은 내용도 별로 없이 10분 전이라며 계속 카운트하며 아빠 재촉하는 머 그런 지겨운 책이었고, 두 번째우리를 질리게 한 책은 여우가 곰이 열심히 키워놓은 사과를 먹어버리고서는 시치미떼고 있다가 사과하고 화해하는 내용이었다. 

하도 읽어주느라  아이가 19살이 된  어느날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려진 그 책의 표지를 보고서는 여우와 곰의 캐릭터가 단번에 그려졌다.


렇게 책읽어주기 노동에, 특히나 반복읽기에 지쳐가던 우리들은 아이가 5살쯤부터는 스스로 책을 읽히게 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한 단어, 한 단어아이가 아는 단어는 찾아 읽게 하다가 한 줄, 한 줄 서로 번갈아 읽다가 나중에는 한 쪽, 한 쪽씩 번갈아 읽었다.

그러면서 한글을 익히게 되버렸다. 예닐곱살이 되어 아이가 혼자서 완전히 책을 읽기 시작하니 어찌나 좋든지. 아이가 한글을 떼어서 기쁜 것보다  이제 책읽어주기 업무에서 자유로와 더욱 기뻤다. 어설팠지만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픈 나의 육아가 이 아이를 책벌레로 만들었다.



한때는 박스째 책을 두고 읽던 내 보물1호

그렇게 아이는 몸도, 생각도 자라났고 그동안도 크니의 책읽기는 그치지 않았다. 조금 이르게 초5학년쯤에 격동의 사춘기가 찾아와서 우리들을 힘들게 하기는 했어도 아직은 책벌레였다.

나 또한, 둘째, 셋째가 차례로 생기면서 전쟁같은 육아의 현장에서도 나는 늘 내 첫 아이의 독서성향에 관심을 기울이며 연령와 관심사에 맞게끔 그때 그때 필요한 책들을 적당하게 준비해주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책벌레와 책벌레엄마로써 우리의 합은 잘 맞아들어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6학년이던 어느날, 이 아이의 친구의 엄마이자, 또 한때는 이 아이의 종이접기 선생님이었던, 또 나와는 자녀 교육관이 참 잘 맞아 많은 정보를 교환하던 같은 아파트 옆 동의 학부모친구인 현이 엄마가 뜻밖의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집은 늘 나의 영업장이다보니 우리 큰 애는 현이네 집에 자주 놀러를 갔다. 둘이서 이네서 놀기도 하고 숙제도 하고 소녀들의 대화도 종종 나누기도 한다고 현이 엄마는 몰래 엿들은 정보를 나에게 제공해주곤 했다.

그 날도 우리 크니는 현이네에 새로 들여온 책에 현이보다 더 관심을 보이며 살펴 았고 현이 엄마는 그게 하도 신기하여서 물어보았단다.

"지야, 너는 어찌 그리 책을 좋아하니? 책이 그렇게 재미있니?" 하고 물었더니 우리 첫째가 의외로 시크하게

"맨날 재미있지는 않아요." 하고 대답을 하더란다.

오랫동안 우리 크니의 성장과정을 함께 지켜봐 온 현이엄마는 갑자기 이 아이의 속내가 궁금했던지,

"그럼 너는 책 왜 그렇게 많이 읽니?" 하고 물어보았단다. 그랬더니 이 아이가  시크하게

음... 책을 읽으면 엄마가 좋아해요

 

나는  얘기를 전해 듣고 적잖이 놀랐다.

나는 이 아이는 누가머래도 누구의 강요가 아닌 본인 스스로 책벌레의 길을 가는 아이라고 믿었다. 우선은 그런 나의 환상이 깨어졌고.

또 하나 왜, 나를 기쁘게 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저 너의 존재만으로 당연히  사람인데 이 아이가 나를 기쁘게 하려고 나름의 노력을 했을 자체가 서글펐다. 생들이 하나 둘씩 생기면서 엄마의 관심이 멀어졌다 싶었나. 그런 의 마음을 나는 헤아리지 못했고 너 또한 책을 많이 읽든 안 읽든 늘 든든한 내 첫아이로써의 내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를 못했구나 싶어서 마음이 쨘했다.


그러면서 가만히 나를 돌아 보았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책을 사주며 나는 행복해했을 것이다. 가끔은 그러기위해서 그때는 하기가 싫었던 사교육의 일도 해내었고 책을 좋아하 내 아이 위해 책을 많이 사주려고 힘이 들어도 내 일을 잘해내려고 했다.

그리고 바쁜 시간 짬짬이 아이와 함께 독후활동을 하고 아이가 읽은 책에 스티커를 붙여두고 그런 나의 이 모든 행동들을 아이는 유심히 보며 자랐을 것이다.

무심한 듯해도 알고보면 속내가 은근히 깊이가 있는 이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가 책을 많이 읽는 나를 뿌듯해하는구나를 느꼈을 것이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계속 책벌레 인생을 살아왔을 수도 있겠구나싶었다. 그런 생각에까지 이르니 이 아이가 가여웠다.

책을 읽지 않아도 공부를 좀 못하고 조금 흐트러져도 - 물론, 지금은 너무 흐트러져서 너무 자유분방한 삶을 살고 계시느라 내 속을 터지게는 하지만은 - 나는 저를 언제나 내 인생 최고의 보물1호로 여기고 있을 텐데, 나 몰래 애를 쓰고 있었을 아이가 떠올라서 미안했다.


리고는

'다시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이에게 기대하고 바라게 되는 순간부터, 나도 그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기대의 올가미에 갖혀서 나를 괴롭히고 힘이 들어지고, 찬가지로 아이도 내 기대가 짐짝처럼 여겨질 것이다.

책을 많이 읽기를, 공부를 잘 하기를, 현재에는 고3인 이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기를, 아이가 잘 되기를 기대하지 않 살리라.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엄마라니, 참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일같지만, 어설픈 나의 기대가 가져오는 강박증이 아이의 인생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그때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아이가 자라는 대로, 아이가 가는 방향대로 그저 지켜보 뒤에서 살살 따라가며 넘어지지 않기를 응원하는 길을 가자고 다짐을 한다.

잘 가고 있을 때는 무심하게 뒷짐지고 섰다가, 가끔 넘어질 때 오히려 내가 얼른 다시 일으켜 손잡아 주며 어디가 다치지는 않았는지, 상처는 잘 아물런지, 다시 나가갈 수 있겠는지 물어 보고 지켜봐주는 길을 걸을 것이다.



물론, 이 아이는 가끔 나에게 스스로 강박을 기대한다. 중학교시절에 시험기간에 나에게 무언가 자꾸 요구를 다. 시험을 잘 치면 폰을 바꿔달라든지, 포상금을 건다는지, 스스로 요구를 한다. 그러고서는 새벽녘까지 공부를 하고 수행평가를 준비하고 있는 아이가 쨘해서 어날엔가는

"시험 못 쳐도 엄마가 폰 바꿔주께. 너무 이렇게 용을 쓰지 마라." 고 했다. 그러자 이 아이가 오히려 나게,

"엄마, 나약하게 왜 이래?엄마도 알다시피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야. 나에게는 강한 엄마가 필요해."

"엄마가 무언가 이룰 수 있는 목표와 자극, 동기부여를 자꾸 주어야 해. 그러면 그것 가지고 싶은 욕심에서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생긴단 말이야. 약속된 목표달성하기 전에 절대로 못 해준다고 엄마는 단호해져야 한단 말이야. 알았어? 정신차려, 엄마." 는 아이를 보며 언제 이렇게 자라버렸는지 한참을 웃었다. 그래, 필요하다면 내가 너의 채찍이 기꺼이 되어주마.


이 아이에게는 늘 당근인 아빠랑 지금도, 어느 대학교이상까지 입학해야 서울에 근사한 방을 구해준다며 목표치를 걸어주어 살짝 잃어버린 학구열에 불을 지펴주기를 바라는 한때 책벌레였던 내 보물1호.

책을 좋아한다고 믿던 그때나, 나를 위해 책을 읽어 다던 그때나, 내말은 1도 안 들어먹히던 사춘기 시절이나, 완벽하다고 칭찬받던 내딸이 요즘은 영판 딴 사람이 되어서 늘 질질 흘리고 다니는 칠칠이가 되어도, 나는 언제나처럼 너를 너로써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말로는 아직도 어설프고 쑥쓰러워서 우쭈쭈거리기도 잘 하는 내마음을 글로 남겨라도 언젠가는 전달해 볼께. 나의 크니, 요정이, 꼴통시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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