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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Apr 18. 2022

다시 찾은 술친구 3번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에스컬레이터도 제끼고 마구 달렸다. 하필 내가 가는 길마다 계단이 한가득이라 땀이 송골송골 맺다.

간만에 멋을 직인다고 긴 머리를 풀어제낀 게 더 짐짝같이 느껴져서 잠시 멈춰서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질끈 말아 묵었다.

큰 길로 올라와서 시계를 보니 벌써 5시 10분이다.

5시 약속인데 벌써10분이 늦었다. 아직 뛰어도 5분은 더 가야할 거리인데... 늦었다, 늦었어.


를 만나면서 내가 늦은 적은 거의 없었던 거 같다. 내 기억으로는 늘 시계탑 앞에는 내가 먼저 도착했다. 족히 30분에서 1시간씩은 여사로 기다린 기억 있다. 항상 코리안타임처럼 10분은 기본으로 늦던 그녀였다. 그것을 몸이 기억하고 나는 시간맞춰 나서려다 빨래를 해결하고 출발도 될 거 같아서 오늘은 내가 지각을 해버렸다. 지하철탔다고 여유를 부리며, 너도 이제 슬슬 나서겠지 싶어서 톡을 보 그녀벌써 시내에 들어섰다 천천히 걸어 가볼께, 해서 잠시 당황스러웠다.

세월이 우리를 얼마나 멀리 가져다 놓은건지 너가 여유롭게 슬슬 걷고 내가 뜀박질 하는 날이 다있네, 그래. 노처녀와 삼남매 아주미로써 우리 삶의 변화모습이려나 생각하며 이번에는 살짝 빠르게 걸으며 숨을 고른다. 뛰지는 않은 척을 해보자.


15분 지각해서 들어선 이자카야. 역시, 그냥 있으리 없지. 혼자 레몬이 진한 이볼을 한잔 들이키고 있 그녀.

이게 얼마만이냐? 마스크를 쓰기 , 겨울에 마지막으로 보았으니 3, 4년은 족히 넘었겠구나.

작년에 보기로 약속을 정했다가 코로나때문에 취소하고 가만 생각해보니, 시 얘가 결혼을 거나 인생에 큰 전환기를 맞아서 연락 것 가 놓친 것은 아닐까?얼릉 다시 만남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벼르고 있는 와중에 엄마가 아프고 정신을 못 차리느라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 그래도 언젠가는 나는 너의 시간에 가서 닿을 거라는 믿음이 내 머리 속에 깜빡증을 허락하기로 했다.


아무튼 우리는 다시 만났다.

환하게 웃을 때 가로로 길게 늘어지는 눈 그대로고 긴 생머리를 귀가 가리도록 이마서부터 옆으로 딱 고정붙여 놓은 헤어스타일도 늘 그대로다. 갈라진 머리카락 끝을 톡톡 손으로 끊어내던 네 버릇이 떠오른다.

"너는 야, 늙지도 않냐?"하며 기분 좋은 말로 대화를 꺼내는 것도 여전하다.

다시 우리는 붉은 후레아치마를 입고 평화시장을 찔락거리고 돌아다니던 18세 소녀가 되었다.




"집은? 아직 반야월이야?"

"응. 나는 그 동네를 못 벗어나네."

"직장은? 계속 다니고?"

"응. 집, 회사, 집, 회사... 맹날 그래. 다른 데로 벗어나질 못 하네."

"...아직 혼자 살고?"

"어, 엄마랑 둘이 살지."

진짜로 궁금했던 것은 결혼 했냐? 였는데, 왠지 바로 직접적으로 물어보긴 그래서 돌려 돌려서 확인했다. 휴~ 왠지 다행이다. 40대 노처녀가 계속 싱글이라는 것이 다행이라는 게 말이 되려나 모르겠지만, 너의 결혼을 함께 하지 못 했을까 봐 왠지 불안 초조했었다.

리고 왠지 너만은 아직 해맑게 싱글의 세상을 누리고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란 지도 모르겠다.

27년 전에, 너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시집을 가버릴 것 같더니, 또 나는 늘 독신주의자라고 그렇게 떠들고 다니더니 참, 세상일이 하나도 제 마음 같지 않은 것이 나만 아주미가 되었다.

더 이상 나는 세상이 순수하지도 않고 험난한 일상 때가 찌들어 누군가의 해맑은 호의도 의심부터 하고 보는 야박한 40대가 되었는데 너만은 18세 그대로 해맑 순수한 일상을 지키며 살았음 싶은 것은 내 어이없는 욕심이겠지.


"자, 이거 선물." 하며 기다란 쇼핑백을 내민다.

"어마얏, 이게 머야" 하며 깜짝 놀라며 나도

"찌뽕~ 선물~" 하고 김작가의 책 내밀었다.

"내 친구 쭌, 알지? 걔가 작가가 되었어. 재밌드라. 읽어 봐. " 

"우와~ 맨날 술만 마시고 돌아다니는 애들인 줄 알았는데 이런 능력도 있었구나. 멋지다."

서로 준비해 온 선물을 내밀며 조금 낯설기도 어색하기도 했다.


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가 서로를 애틋하게 챙기고 그런 뜰한 사이는 아니였다. 머랄까, 그냥 딱히 표현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 맞출 것 같은 친구랄까. 나도 그렇지만, 그녀 또한, 내색은  해도 어디선가는 서로한 번씩은 꼭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사이랄까. 머야?ㅋ

그런 우리가 세월이 흘러 서로를 챙겨주고 싶 확인하고 싶은 사이가 되었다.

"나 요즘 와인을 혼자서 알아가보려던 참인데, 야~ 완전 좋다. "

"나도 혼술을 홀짝거리다보이 입맛에 맞더라고, 너도 좋아할 거 같애서."

"혼자 홀짝거리지말고 인제 같이 홀짝거리자."



내가 어떤 사람이였 가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제는 일상속에서 나보다는 엄마, 아내로써 살아가는 시간이 더 많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잊어버릴 때가 많다. 오늘 그걸 기억해 주는 몇 안되는 그녀가 여기 있다. 


"너는 정말 밝은 아이였어. 언제나 씩씩하고."

내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놀라는 표정을 보내려니 그녀는,

"너 기억 안 나냐? 너 맨날, '나는 한양대갈꺼야.' 하며 큰소리치던거. 그때의 너는 진짜 뭐라도 해낼 거 같이 멋있었어. "

으잉? 내가? 십대 때의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참 소심하고 고민만하느라 사람도 쉬이 못 사귀고 마음 속에 담아 말은 잘 꺼내지도 못 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답답한 아이여서 이런 나와 교감을 하며 친하게 지내준 몇 안되는 친구 중에 하나가 너라는 사실이 나는 참 좋고 감사했었는데 그녀 먼저,

"니가 나랑 친구 해줘서 나는 너무 좋았어. 너는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데 나같이 평범한 애랑 친해서 얼마나 좋았다고." 

"야~ 너도 평범하진 않았어. 너랑 친해지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지는 아냐?"


18살에 그녀는 특이했다. 그녀는 자기가 평범한 아이랬지만 나에게 그녀는 확실히 튀었다. 자기의 얘기를 하기보다는 남의 얘기를 들어 주는 이상하게 그녀는 조용하지는 않았다. 보통 듣기만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과묵한 편인데, 그녀는  들어주는데과묵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다정다정한 서울말씨, 아니지, 정확하게는 대전말씨는 희안하게 크게 떠들지 않아도 내 귀에 콕콕 들어 박혔다. 수다스러운데도 가만히 들어보면 본인의 속내는 감추고서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교감하는 말을 더 많이 하던 특이한18세의 그녀였다.

그 시절에 우리들은 다들 자기 얘기와 자기 목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하는데 집중하던 나이였는데 그녀는 가만히 교감하는 수다로 오히려 집중하게 만들었다.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서 가끔은 도도하고 차가워 보이기도 했지만 가만히 얘기하다보면 따스함이 느껴지는 특이한 아이였다. 그런 그녀는 하나도 평범하지가 않았다.


그녀는 3학년이 되어 나와 다른 반이 되었을 때, 일부러 내 반을 지나갈 때나 복도에서 나와 마주치면 과하게 방가워하며 인사를 했단다. 내가 친구인 것 친구들에게 막 자랑 고 싶었단다.

누군가가 나와 친구였다는 사실을 자랑씩이나 하고 싶었다는 그 옛날 얘기에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다. 요즘처럼 나라는 사람의 존재 가치가 가정을 벗어나서는 아무짝에도 의미가 없을 것 같이 느껴지는 때에는 더더욱 감동적인 일이다.

가끔 이런 감정의 호사를 누려봐도 좋을 것 같다. 이제부터 나의 잃어버린 자존감과 힐링이 필요할 때는 너를 찾겠노라 다짐했다. 너는 이제부터 내 힐링담당, 술친구 3번이다. 단디 기억해야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홀로 있는 일상이 두려워 진다는 미야에게 다른 거는 모르겠지만 아플 때, 약은 꼭 내가 사들고 갈거라 약속했다. 나의 힐링 담당에게 그것쯤 못하겠냐? 나는 기꺼이 너의 약담당이 되겠어! 


아줌마인 나도 노처녀인 너도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친구가 필요다. 친구와 함께하는 일상이 진정한 홀로서기가 되려나는 모르겠지만 우리 둘은 친구찾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지금은 둘이서 시작하지만 하나둘 우리 세력을 늘려나가자며 무슨 조직이냐며 깔깔깔 웃었다.


마치 어릴 때 편먹기 놀이라도 하는 것 같이 든든하다. 그저 내 편이 있다는 사실에 게임에서 져도 신이 날 것 같았다. 어릴 적 놀이에는 이기고 지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뭉쳐다니는 것이 즐거웠었다. 

오늘도 우리는 뭉쳤고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결국에는 언니네 가게에서 작은 언니가 인제 너들 좀 집에 좀 가라며 가게 문을 닫을 때서야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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